리뷰[Review]/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2006)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0. 04:40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상당히 무서우면서도, 가슴 아픈 다중적인 느낌의 영화 입니다. 아프리카의 모습을 정밀하게 보여주는데,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파괴할 수 있고, 짓밟을 수 있는지, 매우 사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영화 입니다. 아프리카는 낙원이 될 수 있다는 영화 속 대사는, 풍부한 자원 보다 인간의 선택이 훨씬 더 중요함을 정중히 말해주는 듯 합니다. 간단히 말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누군가가 독점하면 지옥이 펼쳐지고, 적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누군가와 나누기 시작하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값비싸며, 아름답고, 마음을 사로잡는 다이아몬드, 이렇듯 변하지 않는 굳건한 보석들은 영원한 사랑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거금이 투자되기도 하는, 비극적 물질 입니다. 왜냐하면 희귀하기 때문이지요. 헬렌 켈러 같은 현인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한 번 반짝이는 보석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에 미쳐갈 수 있습니다. 보석뿐만 아니라, 가방에도, 특정 한정품에도, 참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쩌면 욕망함으로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영화는 수십억의 가치, 어쩌면 수백억의 가치가 될 수 있는, 핑크 다이아몬드를 찾기 위한 모험이 숨가쁘게 진행됩니다. 제작비가 1억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로, 긴장감과 함께, 무서운 현실묘사가 일품이지요. 특히 소년병들이 총을 들고, 인간병기화 되어가는 장면은 압도적으로 마음을 파고듭니다. 사람은 계속해서 선한 행동들을 추구하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 있는지, 잔인하게 와닿는 장면들은, 진한 여운이 남습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특히 솔로몬과 그의 아들이 보여주는 부자지간의 애정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솔로몬의 아들은 영화에서 RUF라는 조직에 끌려가면서, 총을 들게 되고, 소년병이 되고, 그 중에서도 꼬마 대장이 되어가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생각으로 머리를 채우게 됩니다. 그가 심심할 때, 또래집단의 아이들과 도박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징적입니다. 아버지를 그리워한다거나,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다거나, 이런 것들이 모두 제거된 채, 눈 앞의 쾌락과 힘만을 생각하게 되는 아들. 마침내 두 사람이 재회했을 때, 그의 아들은 감격 대신에, 당신 따위 필요 없다며 막말을 퍼붓습니다.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비슷한 장면들이 오버랩 됩니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혈기 왕성한 일부 아이들은 "모두 다 때려 부숴버리고 싶다"며 섬뜩한 말들을 던집니다.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경쟁만을 생각하다보면, 정작 마음이 황폐해질 수 있습니다. 남을 밟고 가도록 교육받게 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에 대해서는 막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이게 현실이라며, 힘세고 능력있는 자들만 살아남는다고, 강조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불지옥이 펼쳐지는게 아닐까요.

 

 감동적인 것은 솔로몬의 한결같은 아들 사랑입니다. 주인공 대니 아처가 다이아몬드에 미쳐 있다면, 솔로몬은 지금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미쳐 있습니다. 굉장히 대조적인 모습이지요. 한쪽은 무엇인가를 가지기 위해서 미쳐있고, 한쪽은 누군가를 살려내기 위해서 미쳐 있습니다. 전자가 광인처럼 보인다면, 후자는 가끔 성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미친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무엇에게 미쳐있을 것인가. 미치도록 꿈과 사람을 향해서 달려가는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자인 메디 보웬도 매력적이고 정말 뛰어난 인물입니다.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 이자율에 대해서 떠드는게 너무 싫어서, 이 곳 아프리카로 왔다는 메디는 글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과 열정으로 가득차 있는 젊은 기자 입니다. 어떻게든 대니 아처에게 달라 붙어서, 정보를 캐내려고 하고, 사실을 수집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또 다시 비슷한 생각이 지나갑니다. "욕망 그 자체가 나쁜게 아니라, 검은 욕망이 나쁜 것이다." 라는 생각이지요. 검은 욕망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총을 주면서 목적을 이루려는 흑심, 인간을 노예로 다루며 자신을 부자로 만들고 싶은 욕망, 약한 자들은 다 죽여버리면서 힘을 과시하려는 행동 등이 되겠지요.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는, 이런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끝없이 헌신하는 사람들의 선한 욕망도 있습니다. 보통은 고생을 자처하는 힘든 삶이고, 그 보수나 대가도 열악할 때도 있으며, 달콤함 대신에 씁쓸함을 맛보기로 결단한 놀라운 사람들. 이런 소수의 사람들이 힘껏 밀고가는 행동들이 실제로 조금씩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 깨달음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저는 무욕의 삶보다는, 세상을 바꿀만한 욕망으로 가득차는게 더 나아보입니다. 환호받는 한 개인의 영웅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바꾸고 싶은 용기 있는 작은 행동들이 모이다보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는 셈입니다.

 

 저는 주인공 대니 아처를 보면, 복잡한 심정이 드는데, 어쩌면 그는 다이아몬드에 미쳐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커다란 한 건을 통해서, 삶을 완벽히 바꿔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라도 이 지옥에서 탈출하겠다는, 일종의 변신 티켓이랄까요. 그래서 그의 집착을 저는 도저히 비판적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판받아야 하는 것은, 인간을 도구로서 이용하는 집단들이어야 합니다.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무기상인과 RUF같은 조직, 피묻은 보석이라도 일단 세탁해서 팔아치우는 사회구조. 이런 구조적 문제로 인해서, 결국 사회적으로 열악한 사람부터 희생된다는 것이 가슴 아프게 잘 묘사되고 있는 슬픈 영화가 블러드 다이아몬드 입니다.

 

 돈만되면, 무슨 일이라도 해버리는, 거대한 자본집단은 여전히 지금도 존재합니다. 검은 돈은 여전히 세탁해서 돌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누군가 (특히 거대집단) 에게 돈을 받는 순간, 우리는 그들을 비판적으로 대할 수 없는, 이른바 종속관계가 될 위험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다이아몬드는 권력과 가치를 의미합니다. 영화에서 너무 잘 보여주잖아요. 그걸 솔로몬 같은 사람이 가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렵고, 지독한 일인지. 구조를 튼튼하게 짜놓았기에, 상류층은 좋은 것들을 먼저 누리고, 가난한 약자들은 그 뒷감당을 하고 있는 현실. 세계가 일정부분 이렇게 돌아가고 있음을, 에드워드 즈윅 감독이 상업영화를 통해서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해답의 힌트를 찾는다면, 기득권을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을 경계하고, 자제하는 노력들이 뒷받침 된다면, 보다 나은 세상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로서 정착시키고, 위반하는 경우 강력한 제제를 가한다면,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을 막을 수 있겠지요. 한 개인으로서는 사익만큼 공익도 함께 생각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이익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피눈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을 하지 않는 행동. 이런 식으로 총을 내려 놓는 행위가, 결국 사회를 건강하게 해주는게 아닐까 싶네요. 지옥도 사람들이 힘을 합치면 유토피아를 향해갈 수 있고, 좋은 세상도 몇몇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지옥으로 변해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주는 명작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 였습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