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도니 브래스코 (Donnie Brasco, 1997)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18. 15:10

 도니 브래스코는 상당히 이색적인 마피아 영화입니다. 총들고 치고 박고 싸우는 장면은 별로 없으며, 화려한 액션 장면도 전혀 없습니다. 그 대신 정중한 인간관계 묘사가 그야말로 탁월해서, 두 사람의 엄청난 열연을 보고 있으면, 그 분위기에 빨려들어가는 마피아 영화 입니다. 도니 브래스코 처럼, 형사가 신분을 위장해서 조직 세계에 발을 담근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개봉된 한국영화 신세계도 있고, 또한 무간도 시리즈도 있겠지요. 저는 이 작품 도니 브래스코 역시 비할데 없는 특유의 느낌을 주는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흥행수입도 1억2천만 달러 이상을 올린, 성공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마피아 조직에서 30년간 활동했지만, 중간 보스도 되지 못한 레프티 (알 파치노 분), 그리고 이제 위험한 위장 잠입 임무를 맡은 도니 (조니 뎁 분) 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철저하게 인물 중심의 시선을 따라가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바꿔 말해, 이 영화에서는 마피아의 최종보스가 누군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FBI가 정의롭게 그려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영화 도니 브래스코를 보고 있으면, 그들만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뿐입니다.

 

 

 철학자 비트켄슈타인은, 후년에 언어의 "사용"에 대해 주목했습니다. 그 단어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보라는 뜻입니다. 언어는 세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르게 사용될 때가 상당합니다. 10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마뻐탔는데 맛폰에 있는 교카가 안 되더라. 빡쳐갖고 내려서, 코 꺼냈는대 따개가 없네, 아놔." 고백하자면, 처음 들었을 때 이해하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 한국말을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마을버스를 탔어요. 들고 있는 스마트폰에 교통카드가 들어 있었는데, 작동이 안 되서 내렸지요. 황당하고, 짜증나서, 담배나 한 대 태우려는데, 라이터가 없네요. 하아."

 

 반대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세금과 증여문제에 대해서, 혹은 괜찮은 매물에 대해서, 또는 이자율과 금리, 비과세 혜택과 공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10대들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용돈이나 좀 달라고 할지도 모르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합니다. 마피아 세계에는, 마피아의 룰이 있고, 언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한 번 배워보자면 대략 이렇습니다. 지갑은 가지고 다니지 않으며, 돈은 말아서 포켓에 넣습니다. 마피아의 윗사람이 "내 사람"이라고 말하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 책임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이리하여, 도니는 지금 레프티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게 결코 단순하지 않은데, 그리하여 도니가 잘못을 저지르게 되면, 레프티도 그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 사람(예:도니)이 실수했으므로, 당연히 그를 쓴 나도(예:레프티) 잘못이라는 마피아식의 명쾌한 논리지요. 이 세계에서는, 당연히 사람을 함부로 쓸 수가 없습니다. 부하가 실수하면, 내 목숨도 끝나니까요.

 

 영화는 시작부터 레프티가 철저하게 도니를 의심하고 조사해보는 장면에서 출발합니다. 처음에는 저 사람 너무 의심이 많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뒷조사들이 매우 당연한, 즉 마피아 세계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도니가 내 사람이 되었으므로, 레프티는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것까지 알려주고, 세심하게 챙겨줍니다. 레프티 입장에서도, 믿음직한 내 사람이 생겨서, 많이 기뻐하는 은은한 감정까지 엿볼 수 있습니다. 감정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절제된 알 파치노의 진한 연기력은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마피아는 가족이라는 레프티의 말은 정말 묘한 곳에서 드러납니다. 도니가 좋지 못한 일을 겪자마자, 마피아 집단은 하나가 되어서, 도니에게 불쾌한 감정을 주었던 사람을 흠씬 두들겨 패줍니다. 우리 식구는 건들지 마라는 이들이 보여주는 의리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프티는 도니를 거의 아들처럼, 아니, 어쩌면 친아들 이상으로 사랑하고 보살펴 줍니다. 요리를 해주는 것에서 출발해서, 나중에는 마피아의 거물이 되기를 바라며, 뒤에서 조용히 밀어주는 레프티의 마음은 따뜻한 진심이 느껴집니다.

 

 한편 도니의 개인적 삶은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예쁜 딸내미의 성찬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아내와는 이혼 바로 직전까지 와있습니다. 하지만 도중에 일을 그만두고 이탈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도니는 워낙 위험한 세계에 속해 있어서,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 모르는 아찔한 순간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잠입해 있던 FBI 동료는 정체를 의심받아서, 도니가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둡니다. 그럼에도 도니는 여기서 도망칠 수가 없습니다. 도망치는 순간, 레프티가 책임을 지고, 바로 동료집단 마피아에 의해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돈도 제대로 대주지 못하는 FBI보다, 자신의 진심을 따뜻하게 전해주는 레프티가 더 좋아서 일수도 있습니다. 도니를 그토록 아껴주는 레프티를 배신할 바에는, 차라리 FBI를 배신할지도 모릅니다. 그 묘한 긴장감도 중반부터 아주 팽팽하게 흘러갑니다. 솔직히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어요. 가족을 위해서, FBI를 위해서, 목숨 걸고 뛰어다녔지만, 정작 그들은 도니의 삶을 제대로 알아주지도 못합니다. 마피아 세계의 진짜 레프티는 가짜 도니에게 애정을 표시하는데, FBI 세계의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은, 진짜 조(=도니)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습니다.

 

 FBI와 가족에게 위로받지 못한 영혼 도니는, 마침내 마피아 레프티를 위해서 3억에 달하는 거금을 준비하며, 그의 못다한 꿈을 이루어 주고 싶어합니다. 여기까지가 너무 정성스럽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지만, 엄격할 정도의 심리적 묘사가 참 좋습니다. 남자의 무너져가고 흔들리는 마음을, 철저히 남자의 시선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남자들 세계의 영화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레프티를 차분히 봅시다. 마약에 빠져서 병원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아들, 가난하고 빚진 자신의 삶, 그 허무함을 위로해주는 정말 믿음직한 도니가 있어서 그는 지금의 삶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도니를 봅시다. 가족과 조직은 그를 몰라주지만, 마피아 세계와 레프티가 있어서, 그는 따뜻하게 기댈 곳이 있습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사람의 선택을 결코 쉽게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두 사람의 우정이랄까, 정이랄까, 유대랄까, 그 표현하기 어려운 "인연의 깊음"이 잔잔하게 깔려 있습니다. 못다한 레프티의 마지막 대사는 눈물나게 슬픕니다. "나는 네가 누구라도 상관없어, 나는 너와 있던 그 시간들이 좋았어."

 

 영화를 마치며 저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질문은 안도현 시인의 시에서 빌려오고 싶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너와 있어서 좋았어" 라는 말을 듣는다면, 그 관계는 참 멋진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비극적인 총성과 함께 마무리 됩니다.

 

 진실을 조금 조사해봤는데, 이 마무리는, 극적인 연출이라고 본다면 좋겠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화에서는 레프티가 FBI에게 체포되어서, 1994년 형무소에서 병사했다고 합니다. 한편, 실제 마피아 세계에서는 도니 때문에 조직이 엉망이 되었기에, 윗선인 소니 블랙은 숙청되었다고 합니다. 도니에게 현상금이 걸린 것도 실화였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결코 하나가 아님을 알려줍니다. 말하자면, 마피아 이면서도 FBI로 동시에 살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영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떤 문으로 들어갈 것인가 를 고민하고, 선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지, 어떤 세계를 원하는지 고민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 세계관이 다른 사람이 만나더라도, 얼마든지 깊은 인연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기쁨이나 따뜻함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행복한 인생일 것입니다.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