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범죄와의 전쟁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3. 11:08

 전개감 좋고, 시나리오 사실적이며, 최민식과 하정우의 불꽃같은 연기투혼은 강렬하고, 범죄와의 전쟁은 근사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 였습니다. 더욱이 제가 부산에서만 30년 넘게 살아와서 그런지, 알아듣기 쉬운 사투리와 어린 시절의 풍경을 보는 듯한, 거리와 배경들도 상당히 훌륭했고요. 영화는 서두에서 모든 단체는 실화가 아닌 픽션이라고 힘주어 강조하는데,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연줄"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네요.

 

 OCN에서 방송할 때, 상단에 "부산 느와르"라고 재치있는 표현을 써놓았는데, 역시 느와르 장르 답게, 남자들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 입니다. 폭력을 넘어서,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오늘 리뷰를 접근해 본다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제목을 붙인다면, "권력이란 무엇인가?" 라는 셈이지요. 그렇다고, 저는 학문적으로 이야기할 역량은 전혀 없으므로, 다만 읽기 편하게, 권력이 가지는 몇 가지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 두 남자의 세계로 출발합시다.

 

 

 최익현은 권력에 빌붙어서, 자신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 잔인하고 엄격하게 말하자면 "기생충 같은 나쁜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밀수를 하는 놈이 나쁜놈일까요, 밀수를 알고도 눈감아주면서 뒷돈을 챙기는 놈이 나쁜놈일까요. 저는 후자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밀수를 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불법행위지만, 그걸 알고도 눈감는 것은 사회를 병들어가게 만드는 치명적 주범 중 하나니까요. 공적인 임무를, 사익을 위해서 달려들 때, 집단은 엉망진창이 되버립니다. 나쁜 최익현이 철퇴를 맞는 것은 더욱 씁쓸한데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부산 세관에 문제가 생겨서,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꼬리가 잘려나가야 합니다. 익현은 단지 식구가 적다는 이유로, 강제 퇴직 당하고 맙니다. 나쁜 놈들보다 더 무서운 "조직의 논리"는 대단한 반전입니다. 제대로 한 번 당한 이후로 익현은 이제 물불 가리지 않습니다. 2등이나, 하수인이 되면, 결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지옥같은 세상임을 최익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폼나게 살기 위해서는, 거물이 되어야 한다는, 익현의 끝없는 욕망이 영화 내내 아주 집요하게 펼쳐집니다.

 

 한편 건달 세계의 젊은 보스 형배는 일단 카리스마가 장난 아닙니다. 냉정하고, 차가워 보이는 그는, 결코 사람을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벌써 여러번 뒤통수를 맞았기에, 살아남기 위해서 일단 의심부터 하는 그의 매서운 눈매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그럼에도 형배는 익현에게 자꾸만 끌리게 됩니다. 자신을 위해서 몸바쳐 뛰어다니는 익현 앞에서, 마침내 형배는 "대부님, 사랑합니다"라고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을 의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요즘 이상하리만큼 냉정해진 듯 합니다. 이런, 정말 푸른 피가 흐르나봐요.

 

 영화는 단 한 번도 변함없이 하나의 룰을 따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사랑하는 친구고, 나에게 도움이 안 되면 그 때부터 원수고, 영원한 동지 따위는 없다." 이걸 제 나름대로 가혹하게 해석하면, 형배 입장에서는 익현의 행동이 그 누구보다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부님이 된 게 아닐까요? 처음부터 그 잘난(?) 대부님이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었다면, 형배에게 그는 지나가는 일반인B 처럼 느껴졌을테지요. 그 점이 저는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가치 있는 인간은 사랑 받는다" 라는 불편함이 영화 내내 이어지지요.

 

 네, 이것은 일정부분 사회가 돌아가는 진실 중 하나입니다. 일을 잘해야 예쁨 받고,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 모습에 반한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조금도 어정쩡하지 않은, 익현의 들이대는 모습과, 직감적인 계산이 끝나면 가차없이 돌진하는 형배는 쿵짝이 절묘하게 잘 맞습니다. 그렇게 전직 공무원과 젊은 건달 보스는, 손발을 맞추면서 좋은 시절을 보냅니다. 부산 바닥에서는 그야말로 밤의 대통령처럼 군림하는 이들의 모습은, 멋(?)과 씁쓸함을 함께 가져다 줍니다.

 

 이제부터 가장 재밌는 지점이 등장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환경의 한계를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익현은 공무원의 환경, 전화번호부의 환경에 속해 있습니다. 자칭 10억짜리 수첩, 로비 전화로 문제를 해결하던 그는 언제나 계산과 이익으로 현실을 대합니다. 그러다보니 건달세계의 반대파 김판호까지도 "적대세력"이 아니라, "이용하는세력"으로 바라보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건달의 룰을 넘어서서, 김판호를 만나서 협상을 펼치며, 주먹 대신 이익으로 인간들을 움직여 보려고 했던게 큰 화근이 되었지요. 조직의 형배는 그 때부터 대부님과 애증의 관계가 되고 맙니다. 형배 입장에서는 "자신의 얼굴에 먹칠한 대부님"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셈입니다.

 

 익현은 권력관계에서 1인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1인자가 되고 싶어했고, 스스로 잘나간다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었지요, 그의 기생관계는 숙주가 그를 버리면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부산 식으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마 까불지 마라" 혹은 "나대지 마라" 정도가 되겠지요. 익현은 "뻥인생"에 가까웠던 셈입니다. 실제로 들어 있는 것은 없으면서, 마치 껍데기 총으로 인간을 협박하는 기술, 아마 그 분야에서는 확실히 손꼽히는 실력자이긴 했습니다. 하하. 허세와 위선을 두껍게 칠한 그는, 사회 주류층까지도 농락하는 큰 배짱을 보여줍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그는 잔머리만이 "살아있네" 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이 잔머리가 이긴다는 것이 더욱 멋진 역설이 됩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계산에 능하고, 아부를 좋아하며, 이익관계에 매몰되어 있는지 영화는 아주 현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는게 아닐까요. 의리에 차 있던 형배가 최후에 배신감과 절망으로 부들부들 분노하는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한국식, 혹은 부산식 느와르를 이렇게 멋지게 표현하다니, 그 씁쓸한 내용과는 별개로 참 멋진 영화 였습니다. 1등이 되려면, 기계처럼 공부하라, 1인자가 되려면, 인간의 마음부터 버려라, 내 코가 석자요, 나부터 살아야지 라는 민망함이 가득한 우리 사회의 어느 한 지점을, 이토록 패기 넘치게 그리고 있는 영화를 저는 좀처럼 보지 못했습니다. 간만에 평점 쓰자면, 저는 주저 없이 별 5개! 하하. 남자들 영화 좋아한다면 추천입니다.

 

 이제 리뷰 마무리. 영화는 하정우의 강렬한 대사 한 마디와 함께 막을 내립니다. 남을 밟고서 이루어낸 성공은 그렇습니다. 존경은 커녕, 사람들의 아부와 비난 둘 중에 하나를 받게 됩니다. 게다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끝없는 정교한 반칙들을 사용해 나갑니다. 이걸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저는 행복한 인생이란, 결국 얼마나 떳떳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려면 다 이런식으로 하는거야" 라고 타협에 한 번 물들어 가면, 그 뒤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지요.

 

 돈 싫어하는 사람 처음 봤다는 그 정신나간(!) 검사는, 정작 자신의 출세 욕망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이처럼 언제나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유혹해 들어오는 것이, "인간공략법"이자, 나쁜 사람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지요. 욕망을 버리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폼나게 살고 싶은 환상, 남위에 서고 싶은 환상, 꿩먹고 알먹는 환상, 남을 내뜻대로 조종하는 환상, 이런 것들에서 자유로워 진다면, 우리는 좀 더 좋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는, 좋은 놈들 전성시대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끝.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