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고구려의 전성기 -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왕성한 활동

시북(허지수) 2013. 3. 23. 11:38

 지난 이야기에 이어서, 고구려는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안 그래도 중국의 전연 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있는데, 밑에서는 백제 근초고왕이 계속해서 밀고 올라옵니다. 결국 371년 평양성에서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전사하는 참사를 겪어야 했습니다. 근초고왕은 이토록 강력했던 것입니다. 고구려는 지금 우왕좌왕에 멘붕상태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황입니다. 그 때, 고구려 역사의 위대한 군주로도 손꼽히는 "소수림왕"이 등장합니다. 무서울 정도로 현실적이라서, 그가 고구려를 다시 일으킨 과정을 보면 감탄마저 들 정도 입니다.

 

 이 상황에서, 섣불리 백제와 맞붙다가는 아예 고구려가 없어질 수도 있었겠지요. 소수림왕은 국력을 다시 모으는데 온힘을 쏟습니다. 착실히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쌓으면, 반드시 복수의 날은 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즉위 3년도 안 되어서, 내실에 아주 중요한 3가지를 하나 하나 처리합니다. 그는 율령을 반포 해서 국가 체제를 튼튼히 했고, 불교를 수용함 으로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읍니다. 그리고 고등교육기관인 태학 을 설립해서 인재를 키워나갑니다. 말하자면, 고구려 재건을 아주 현실적으로 이루어 가는 소수림왕. 마침내 5세기가 되어, 한국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만주 벌판 달리는 "광개토대왕"이 등장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 고구려 전성기 밑바탕을 살펴보면 절망의 국가에서, 고구려를 다시 다잡아 일으킨 소수림왕의 역할 역시 아주 중요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자, 이제 광개토대왕.

 

 패기넘치는 광개토대왕 의 생애는 그리 긴 편은 아닙니다. 18세에 즉위해 39세(추정)에 생을 마친 그가 중국, 일본에서도 호태왕으로 알려지면서, 이름을 날린 것을 보며, 한 거인의 생애를 천천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제일 먼저 고구려가 공격한 곳은 어딜까요? 선대의 원수 백제 아니겠어요. 20대 초반의 광개토대왕은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공격하며, 백제 아신왕의 항복까지 받아옵니다. (엄밀히 말해 광개토대왕은 점령,정복군주기 보다는, 영토를 넓히고, 위세를 크게 떨친 군주에 가깝습니다. 백제나 신라를 거의 식민지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하튼, 첫 번째로 백제가 이제 굴복하게 되었네요. 그리고 이제 만주 지방을 계속해서 공략해 고구려의 영토 안에 넣고, 막대한 철광이 있는 요동 지방을 손에 넣으며, 전성기를 달립니다. 6미터가 넘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는 광개토비를 보면, 왕의 패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당시 신라는 왜구의 꾸준한 침입으로 상당히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었는데 (거의 왜구 세력에게 먹힐 뻔 했다고도 합니다) 다급한 신라는 고구려에게 긴급 SOS를 보냅니다. 고구려가 한 번 출동하면, 그야말로 봐주는 것 없습니다. 고구려의 거의 킬빌급의 킬왜구 시리즈는 거침없이 밀고 내려갑니다. 왜구들은 소탕 되면서 신라는 살아날 수 있었고, 내친김에 금관가야(김해)까지 왜구를 좇아서 추격해 들어간 고구려는, 그 기세 덕분에 금관가야까지 쇠퇴시키는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장난아니지요? 광개토대왕 시절 고구려가 한 번 지나가면, 백제, 신라, 가야까지 뭐 그야말로 초토화 되는겁니다. 이후 한동안 신라는, 고구려의 도움 덕분에 살았으므로, 내정간섭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경주의 호우총 무덤에서는 광개토대왕을 기념하는 호우명 그릇 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뒤를 이은 장수왕은 중국 남북조시대에 양다리외교를 통해서, 바깥 중국을 잘 견제하고, 이제 본격적인 남진정책을 추진합니다. 봐주지 않고, 접수할 건 접수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지요. 평양으로 수도를 옮기고, 거침없이 남진하며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합니다. 백제의 개로왕은 고구려에게 당하며 전사합니다. 피의 복수극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고구려의 위세는 충주에 있는 중원 고구려비 까지 세울 만큼, 압도적이었습니다. 당시 지도를 살펴보면, 백제,가야,신라 모두 합해도, 고구려의 거대한 위치의 반도 안 됩니다. 광개토대왕, 장수왕이 누비던 5세기는 그야말로 고구려 전성 시대 입니다. 놀랍지 않나요? 1세기전, 그러니까 371년 고국원왕이 백제에 패하며 전사하던 그 슬픔과 아픔을 딛고서, 고구려는 이제 동북 아시아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인생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가장 슬픈 경험을 겪을 때,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며, 하나씩 해나갈 때, 다시금 꽃피는 시기가 올 수 있음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망했다고, 결코 망한게 아닙니다. 가장 소중해 보이는 것을 잃었다고 해도, 결코 인생이 끝난게 아닙니다. 그 때부터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수림왕이 하나씩 눈물을 삼키며 일으킨 제도들은, 마침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기에 이르러, 빛을 보게 된다는게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아주 가슴 뛰는 교훈 아니겠어요.

 

 이제 추가로 가야에 대해서 살짝 살펴보면, 벼농사와 철기가 발달해서, 수준 높은 문화와 상당한 경제력을 자랑했습니다. 3세기 경에는 금관 가야를 중심으로 한 연맹이었는데, 살펴본 바대로 광개토대왕의 위풍에 그 세력이 축소되었고, 이후에는 상당히 위치가 올라간 대가야가 후기 연맹이 됩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중앙집권에 실패했던 가야는, 힘의 논리에서 약했기 때문에, 신라에 흡수되고 맙니다. 물론 문화적으로는 신라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요, 한편 가야에는 무역 등을 하는 왜인들도 많이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담으로 제 어린시절에는 임나일본부설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가야관련 문제로 간혹 등장했고요) 일본 학자의 주장으로, 가야에 왜국 통치기구가 설치되었다는 설이었는데요. 2010년이 되어서야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임나일본부"는 그 존재가 없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개정판 최신 교과서에는 이제 이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이네요. 주변국들의 우기기식 논리는 결국 진실이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

 

 아 그렇게 볼 때, 고구려의 패기에서 알 수 있는데, 가령 우리나라가 타국으로부터 침략은 당했어도, 결코 타국을 침략하지는 않았다 라는 시선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국가에서의 정복 행위와 전쟁은 일상적으로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고구려가 전성기를 달리며 북방의 거대한 지역을 손에 넣은 것은, 그들 입장에서는 침략으로도 느낄 수 있겠지요. 우리 입장에서야 당연히 자랑스러운 위상이겠지만요. 고대 국가들은 힘이 곧 정의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처럼 적극적으로 역사를 해석하며, 원래 만주땅도 한국땅이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충분히 근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분단과 북한의 거의 몰락해 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북한은 돈 때문에 자신들의 항구까지 중국에 빌려주는 사태까지 왔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고 미국의 영향력도 상당한, 우리는 계속해서 지혜로우면서도 평화로운 해결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후대에 중국에서 일컫던 동방예의지국 같은 나라 이름보다는, 6미터짜리 비를 세울 수 있는 강인한 고구려가 상당히 와닿습니다. 훗날 7세기 경을 생각해본다면, 100만명의 중국 수나라의 군대 앞에서도, 30만명의 양제 별동대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으며, 고구려는 시까지 써 보내는 여유를 자랑하며 큰 승리를 거둡니다. 수나라를 참패시킨 살수대첩은 사관학교에서까지 배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고구려 사람들은 그토록 영민하면서도, 패기넘치는 나라였습니다. 민족의 보디가드였다 라는 평가를 받는 고구려에 비한다면, 지금의 북한 지역은 여러가지로 참 슬픈 시대가 아닐까 싶네요.

 

 여담으로, 고구려의 추락 탈출기와 전성기를 같이 생각해보면서, 위기에 빠졌을 때,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잠깐, 371년으로 돌아가봅시다. 당장 달려나가서 백제 이 XXX들아, 하면서 복수하러 뛰어들어가는 것이 감정적으로는 가장 솔직합니다. 하지만 승산이 없어보이기에, 고구려는 매우 "현실적인"선택을 합니다. 실력부터 쌓아가자 라는 셈이지요. 저는 경쟁과는 별개로, "실력"이라는 것이 요즘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실력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꾸준한 정성과 노력, 치열한 준비 없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 실력입니다.

 

 힘든 순간에 마냥 슬퍼하기 보다는, 뼈아플지라도 현실을 마주 보기를. 오늘 더 준비하고 힘을 쏟지 않으면, 저절로 좋아지는 내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보기를. 아픔 속에서 지혜를 얻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소박하게 응원합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