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리뷰

시북(허지수) 2013. 3. 29. 12:10

 저는 이따금씩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곤 합니다. 한참 젊은(?) 나이인 30대에 벌써 부터 무슨 죽음 타령인가 싶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저는 죽음을 가깝게 생각하는 편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표현되었듯이, 결국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둘째로, 결국 죽을 것이라면,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저는 그 쓸데없는 집착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예컨대 블로그에 광고를 다는 문제를 언급해 보자면, 저는 본문 하단에 구글 광고를 살짝 넣었을 뿐인데, 수년이 흐르자 도메인 비용정도는 매년 벌 수 있었습니다. 적은 금액이지만, 좋아하는 도메인을 거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어서 즐거웠지요. 그런데 어느날 스마트폰 환경에서는 광고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겠다 싶어서, 뒤늦게야 광고를 걷어냅니다. 무척 후회스러운 일이었지요. 어차피 죽을 인생이라면, 아주 작은 푼돈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었던 셈입니다. 오히려, 매일 매일 어떻게 콘텐츠를 채워나갈까를 고민했어야 옳았지요. 스스로 보기에도 가끔은 속물이나 위선자 같았습니다. 저는 고개를 떨구며 반성하면서, 오늘은 이참에 미리 애드박스까지 걷어내봅니다.

 

 자, 그런데 "오늘 살아갈 이유" 책의 저자 위지안은 실제로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말기암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안타깝게도 서른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확히 지금 제 나이와 거의 똑같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목소리를 블로그에 하나 둘 싣었고, 그 이야기들이 이렇게 책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참으로 좋아해서, 저는 마음이 무너질 때, 혹은 스스로가 방황한다 싶을 때마다, 무겁게 펼쳐들곤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성이란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매일매일 지속되는 사소함에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나는 알지 못했다." 이 짧은 이야기가, 제 마음을 계속해서 울립니다. 거창함 대신에 사소함을 추구해야 한다고 귓가에 속삭입니다. 위만 쳐다보려고 하고, 거창한 무엇인가를 바라는 욕망이 피어날 때마다, 위지안의 마지막 이야기들은 저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더 살펴봅시다.

 

 저자 : 위지안 / 이현아 옮김 / 출판사 : 예담

 출간 : 2011년 12월 20일 / 가격 : 12,900원 / 페이지 : 312쪽

 

 

 그녀의 인생은 치열함이었고, 30대에 대학교수가 될만큼,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져서, 말기암 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위지안에게 일어났습니다. 그 절망 속에서도, 위지안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며, 마지막까지 암과 싸우고 투쟁하겠노라고 선언합니다. 암세포가 몸을 망가뜨리고, 육체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종국에는 말할 힘 조차 빼앗아 가겠지만, 그 정신만은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했다는 점에서, 저는 마음 깊이 존경심이 듭니다. 죽기 직전 까지도 힘을 내서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틈만 나면 적당히 안주하려고 하고, 나아가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불평만 한다면, 어쩐지 그런 삶은 조금 창피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삶의 끝에서 전하는 그녀의 독백을 하나 더 들어봅니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보다, 곁에 있는 이의 손을 한 번 더 잡아보는 것이 훨씬 값진 일이라는 것을" 이 뻔한 이야기가 무서운 진실이었다고 그녀는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서야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아이를 품에 안고서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전력질주"라는 말을 많이 듣고, 또 좋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경기에서 대충 설렁설렁 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저게 뭐야 라는 생각도 합니다. 좋아하는 야구를 생각해본다면, 실책하는 모습이 참 안타깝고, 전력으로 뛰면서 수비하는 모습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런데 위지안은 전력질주보다 더 중요한게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몇 번이나, 아니 수십번은 넘게 생각해 보면서, 저는 부모님과의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고, 동생을 보다 더 잘 챙기고, 사랑하는 친구들과 기회가 닿는대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성공보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음을 저는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강조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 좀 더 살펴봅시다.

 

 "시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이냐 였다. (중략) 나보다 더 긴 시간을 살아갈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라고. 시간이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기회라고." 먹먹한 말이지요. 서양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시간이다. 라고까지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생을, 아니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고민해 봐야겠지요. 저는 나름대로 개인적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유보다 경험을 추구하는 삶"이지요. 무엇인가를 사모으기 보다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기원 역시도 어쩌면 죽음 입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도 달려있지 않습니다. 위지안의 말처럼, "죽기 전까지 세상을 손톱 만큼이라도 좀 더 나은 세계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책 중반의 결정타는 아래의 한 대목입니다.

 

 "나중에 더 많은 미소를 짓고 싶다면 지금 삶의 매 순간을 가득가득 채우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았든." 짧게 요약하면, 지금 충실한 삶을 살아갈 때, 웃음은 저절로 찾아오는 거 아닐까요? 바꿔 말해, 무언가 재밌는 일 없나 하면서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새 인생은 저물어 갈 것입니다. 지금 순간에 집중하며 오늘을 기쁜 추억으로 만들어 갈 때, 우리의 삶은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행복이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소소한 즐거움도 우리 곁을 맴돌고 있을 것입니다. 이걸 바라볼 수 있느냐, 아니면 가볍게 외면한 채 끝없이 더 자극적이고 충동적인 재밌는 일을 찾아다닐 것인가, 이게 갈림길이 아닐까요.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오늘 순간을 열정으로 채울 수 있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당연히 더 많은 미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위지안은 성취의 절반이 책 덕분이었노라고 독백합니다. 그러면서 한 권의 책에 온전히 하루를 바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찾기도 쉽지 않다고 단언합니다. 그러고보면, 저 역시도 장점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단점투성이의 인간이지만, 책을 손에 놓지 않았던 것이, 나중에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번 읽어두었던 내용들은 가끔 절묘하게 튀어나올 때가 있었고, 여러가지 사건들을 좀 더 다양한 각도들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한참 미흡하기 때문에, 중년이 되어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삶을 누릴 수 있는 우리에게는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테니까요.

 

 그녀은 행동으로 이런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적어도 엄마는 겁쟁이가 아니라고, 그러니 너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이것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고통과 싸우며 즐겁게 살아가는 선택. 어린 시절 저는 병마로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잠을 이루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삶의 불공평함에 대해서도 탓해보기도 했습니다. 할 수 있는게 없구나, 화장실도 혼자 못 가구나 하면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기가 있었기에 저는 루쉰의 이 문장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은 비참한 인생을 똑바로 쳐다보며,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외면하지 않는다. 슬프지만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루쉰)" 삶이 비참하고, 비루하고, 심지어 피가 나는 고통의 연속일지라도, 외면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함은 발견될 수 있다고 루쉰은 고함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가혹한 시간을 만난다 하더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고, 다시 고개를 들어서 살아갈 수 있기를 저는 강렬하게 바랍니다. 왜냐하면 산다는 것은,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비록 제아무리 비참한 일이 가득할지라도, 한편으로는 위지안의 말처럼 여전히 "어지러울 정도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삶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서,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될 때라도, 우리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면서, 다시 한 번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잔혹한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며, 오늘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슬픔과 고통이 함께 하는 인생의 길이고, 살아갈 이유가 보이지 않더라도, 지금 조금 더 힘을 내고, 지금 조금 더 용기를 내어서, 작은 변화와 더 나은 일상을 추구해 나간다면, 서서히 안개가 사라져서 아름다운 무엇인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 2013. 03.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