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정치파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약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려 시대 입니다. 918년에 막을 열어 1392년까지, 이 긴 세월을 한 번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구분을 통해서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게 좋겠지요. 우선, 고려를 이끌고 있었던 주도세력을 중요하게 살펴본다면, 역사적 흐름을 파악하기 좋습니다. 이 시점, 고려의 주역은 누구인가? 그 주체들을 따라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호족+6두품에서 고려는 출발하게 되었고, 이후 중앙을 차지하던 호족들은 문벌귀족이 됩니다. 그리고, 1170년을 기점으로 무신정변이 일어나, 무신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는데,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징기츠칸의 위세" 원나라가 쳐들어오면서, 친원파인 권문세족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이들은 훗날 신진사대부 세력의 비판을 받게 되는데, 특히 혁명적 신진사대부들이 고려를 갈아 엎고서, 조선을 건국하게 됩니다. 저야 이런 구분이 익숙하지만, 헛갈린다면, 일단 화살표라도 꼭꼭 기억해둡시다. 이후 하나씩 살펴보겠지만, 고려의 지배층 흐름은 이렇습니다. 호족 → 문벌귀족 → 무신 → 권문세족 → 신진사대부
역사는 가만히 보면, 차별을 받고, 억눌린 사람들이, 변화를 준비하고, 다른 세상의 깃발을 내걸기 시작하면, 힘차게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좁게 본다면, 지배 계층들이 역사를 이끌고 가는 것 같지만, 넓게 바라본다면, 차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지방에 있던 호족과, 신분 차별을 받던 6두품, 그러니까 통일신라의 변방세력이, 고려의 핵심이 되는 것 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훗날 중심부에 있던, 욕망으로 흔들리던 고려 권문세족을 엎어버리고, 성리학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내건 신진사대부들이 조선의 주역이 된다는 것도 똑같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높은 사람들에게 아부만 하면서 살기 보다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꿈꾸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재밌게 표현하자면, 고려의 중심 세력은 윗 문단의 빨간색으로 강조된 화살표, 5단 변화와 같지만, 지방에게만 초점을 분명하게 맞춰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이 아닌 지방에 있던 호족들은 문벌귀족이 되지 못했고, 지방의 향리가 됩니다. 이들은 훗날 성리학을 수용하면서 업그레이드 되었고, 신진 사대부의 간판을 내걸고, 권문세족을 가차없이 몰아붙입니다. 사대부들은 온건파와 혁명파로 나뉘었는데, 혁명파 사대부들이 조선을 세우지요. 기득권이 상대적으로 없는 사람들이 변화에 더 잘 준비되어 있으며, 그 의지 역시도 강하다는 게 인상적이지요. 많이 가질 수록,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에는 가난을 부끄러이 여기는 묘한 사회 풍조까지 만연하지만, "기득권이 없기 때문에 더욱 자유로운 꿈을 상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역사는 약자를 짓밟고 자신들끼리만 웃고 떠드는 집단에 대해서, 언제나 철퇴를 날리는 듯 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 태조 왕건이 918년 국호를 고려 라고 하며, 세력 기반을 옮겨와, 송악(개성)을 수도로 하였고, 새 시대를 성큼 내딛습니다. 천년왕국이었던 신라는 935년 항복하고, 이듬해 936년 견훤이 내세웠던 후백제가 멸망합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는 막을 내렸고, 태조에 의해 자주적 통일을 완성했습니다. 이제부터 왕건의 고민을 따라가 봅시다. 통일 신라 천년의 세월을 끝냈는데, 새로운 시대가 되어서 중요한 방향들은 과연 무엇 이 있을까요?
태조는 혼란을 수습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는데 중점 을 둡니다. 지지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문제 입니다. 오늘날은 저마다 "복지"구호를 내걸었다면, 고려 초에는 "세금문제의 정리"를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태조는 1/10세로 세금을 정리하면서, 민생을 돌봅니다. 가벼운 세금으로 인해서, 백성들이 하루 빨리 안정을 찾아야, 국가기반이 튼튼해 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흑창을 설치해서, 빈민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백성들 입장에서는 좀 더 살만해 졌다고 생각합니다. 살기 힘들 때는 바꿔야 한다는 것, 불판은 한 번씩 뒤집어 줘야 새카맣게 타지 않는다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대목입니다. (예컨대 삶이 나아지지 않음에도 계속 한 곳에 몰빵하고 있다면 그는 바보이거나 정신적 노예인 셈입니다.)
왕건이 고민스러운 것은, "통합" 이었습니다. 이게 오늘날까지도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자 생각해 봅시다. 고려를 세운 건 왕건이 맞지만, 혼자서 다 했을까요? 절대로 그럴리 없습니다. 왕건은 호족세력과 6두품을 등에 업고서 고려의 태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힘이 아닌, 연합 집단에 가깝습니다. 왕권이 약하고, 아무래도 개국 공신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이들을 잘 보듬는게 최우선 과제이기도 합니다. (※여담 : 이 문제의 해법은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때로는 왕권이 강할 때 아예 피의 숙청을 해버릴 때도 있습니다 -_-;;;)
요즘에도 대통령이 되면, 보통 공신들에게 역할에 따라 자리를 나눠줍니다. 낙하산이라고 욕하는 이 시스템이 과거에도 볼 수 있는 모습이었지요. 태조는 역분전을 통해서 땅을 나눠주고, 사성제도를 통해 공신들을 왕족으로 만들어 줍니다. (불만이 적도록) 명예와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누리게 했던 셈입니다. 또한 적극적인 정략 결혼도 하는데, 왕건의 부인은 무려 29명. 주요 지역별로 부인이 다 있습니다. 이처럼, 호족들에게 확실하게 보상함으로서, 고려는 어느 정도 출발이 안정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고민할 주제! 낙하산 문제는 여전히 풀기 힘든 매듭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을 만들겠다며, 킹메이커로 두발 벗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에게 나중에 무엇을 해줄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적절한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정치는 저절로 사람이 오염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수 많은 보상이 오고 가는 공간에서, 오늘도 사회적 약자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정치인들에게 저는 힘찬 응원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태조 왕건이 신흥국의 왕인데, 아무리 아직은 왕권이 약하다지만, 호족들에게 모든 것을 다 퍼줄 수는 없습니다. 사심관, 기인제도를 통해서 견제도 확실하게 해나갑니다. 사심관은 벼슬과 함께 책임을 함께 주었던 제도인데, 특정 지역을 다스리게 하여서, 잘못이 일어나면 책임을 추궁하는 제도입니다. 반란이 일어나거나 문제가 크게 생기면 너도 봐주지 않고 끝장이여! 라고 못박음으로서, 지방 세력을 어느 정도 관리 및 경계를 할 수 있습니다. 기인제도는 대놓고 "지방 호족의 자제들을 인질"로 수도 송악으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보통은 정많은 사람들이니, 이렇게 해놓으면 지방에서 함부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겠지요. 관리들을 경계하기 위해서, 정계, 계백료서를 반포하고, 훈요10조라는 원칙들을 글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국가를 새롭게 세우고 나니, 정말 할 일이 많았습니다.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도 아주 중요 합니다. (시험 단골 코스입니다.) 평양의 이름을 서경으로 바꾸고, 이곳을 전진 기지로 삼아서, 힘차게 북쪽으로 진격합니다. 발해 유민을 포용하면서, 상당히 영토가 확장됩니다. 청천강~ 영흥만까지가 고려의 북쪽 경계가 되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말이에요. 카리스마 태조 왕건이 나름대로 위엄도 있고, 안정화도 이룬 것 같은데... 정작! 왕건이 죽고 나서, 그 때부터 심각한 소용돌이가 일어납니다.
보세요. 부인이 29명, 당연히 왕자도 많았겠지요. 태조 사후, 치열한 왕위 쟁탈전이 시작 됩니다. 심지어 고려 2대왕 혜종은 즉위 3년만에 왕위싸움에 희생자가 되었고, 흉흉해져 가는 왕권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이럴 때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강력한 결단력과 거침없는 행동으로, 이 사태를 바로 잡지 못한다면, 어쩌면 고려가 당장 주저앉을 지도 모릅니다. 마침내 아주 매력적인 인물 고려 4대왕, 광종이 등장합니다. 당태종의 정관정요를 읽으면서까지, 실력을 쌓은 광종의 숨막히는 개혁들!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다음 문서에서 살펴봅시다. 아니면 60초 후에 찾아......(농담입니다)
오늘의 영감은 리더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실현하는 것은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욕심이 과도하게 들어가면, 오히려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으며, 그렇다고 경계심을 풀어버리면, 마구잡이로 날뛰는 사람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 "나만의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간의 힌트를 찾는다면, "타인을 끝없이 괴롭히는 리더", "답을 내리지 못하는 리더"는 힘들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잘못된 방향으로 밀어붙인다면 그것도 "비참한" 모습이겠고요. 이래저래 좋은 리더는 보기 드뭅니다. 리더는 타고나는 지, 교육을 통해서 완성되는 지, 그것 역시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무엇인가 고민하고 시도해 나갈 때, 또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갈 때, 좋은 리더의 출발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역사와 인생이, 서로 닮은 부분이 만약에 있다면, 우리의 삶이 가진 것을 움켜쥔 채로 변화를 거부하면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편하자고 남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을,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이 "다~ 괜찮다, 행복한 세상이 올꺼야~" 라고 말만 하고 있다면, 우리 인생은 변화 앞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나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듣기 싫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용기가 있기를 조심스럽게 바랍니다. 누군가 해주겠지 라면서 기다리고만 있는 사람은,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없을테니까요.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