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에는 천문이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아무래도 당시 사회 자체가, 농업이 중시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지요. 또 한가지 기억해야 하는 점은, 천문은 왕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왕은 하늘의 질서를 알고,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어서, 천문은 자세하게 기록되고 관리되는 편입니다. 천문 관련자료는 신라의 첨성대가 너무 유명합니다.
금속기술면을 살펴보면 백제의 칠지도를 기억한다면 좋겠습니다. 백제와 왜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두 나라가 친한 사이였다 정도로 이해한다면 무난하겠네요. 신라에는 수많은 금관을 만들 만큼, 금속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금뿐만 아니라 통일 신라에 오면 종기술도 대단했는데, 아주 오래된 상원사종과 성덕대왕신종 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힘껏 한 번 쳐보면, 어떤 소리가 날까 호기심이 생길만큼, 크기가 엄청납니다. (지금은 문화재 보존을 위해 타종행사도 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담으로 이 신종은 경덕왕이 아버지 선덕왕을 기리기 위해서 무려 30년의 세월을 공들여서 만들었고, 구리가 무려 12만근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큰 종이기도 합니다. 그럼 왜 이렇게 거대한 종을 만들었을까요? 종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좋겠네요. 종의 의미는 부처님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 소리가 크고, 멀리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라에 종들이 만들어 집니다. 역시 신라는 불교의 나라 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차돈이 정말 대단하긴 합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불교에 반대하던 신라 귀족들을 압도하면서, 법흥왕 때, 불교 공인의 큰 몫을 해냈으니...
여튼 경덕왕은 시험에 단골 초청되는 편이니, 그가 했던 녹읍 부활, 국학을 태학으로 변경, 불국사 건축, 성덕대왕신종까지, 몽땅 같이 묶어서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건축, 기술, 경제, 교육까지 두루 업적이 있어서, 국사 고대사 문제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우리나라는 인쇄의 강국이기도 합니다.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이 있습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입니다. 처음 들을 때는 정말 범접하기 힘든 난해한 이름이었는데, 익숙해진다는 것이 무서워서, 무구정...까지만 생각하면 뒤에는 자동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불쑥! 이건 이런 느낌입니다. 나무아... 까지만 생각하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되는 것과 같지요. 반복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국사 잘하는 비법? 수업에 대한 복습을 잘하면 됩니다. 그나저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얼마나 질이 좋았으면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꿔 말해, 신라인들이 이것을 제작하면서 온 마음과 정성을 쏟아부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지한 태도로 기록해 나가는 것은 분명한 힘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볍게 훓어보는 식의 공부만으로는 머리에 잘 남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머리가 아프다고 느껴지더라도 계속할 수 있는 진지한 열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자, 이제 고분을 살펴봅시다. 고분은 고대 문화사에 중요한 부분 이므로,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분의 형태는 돌무지 무덤 → 굴식돌방부덤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구려도, 백제도 마찬가지였지요. 우선 고구려부터 보면, 돌을 쌓는 형태의 돌무지 무덤 (대표적으로 장군총) 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어 갑니다. 굴식돌방무덤이 중요한데, 안에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입구도 있고, 누가봐도 무덤 같습니다. 여기서 마음 아픈 점이 하나 있습니다. 누가봐도 무덤이고, 입구를 알 수 있다면?
네, 도굴의 위험이 아주 큽니다. 그러다보니, 굴식돌방무덤의 부장품들은 대부분 도굴당해서 없습니다. 그래서 유독 고구려와 백제의 유물들이 귀합니다. 도굴 후, 이제 남아있는 것은 무덤에 그려진 벽화 뿐... 아아 ㅜㅜ. 한편, 요즘은 기법이 발달해서 벽화까지도 도굴해 간다고 하는데, 어휴. 여하튼 고구려의 돌방무덤인 무용총에서는 일상을 담은 풍속화가 발견되었습니다. 수렵하는 모습 같은 것을 그림으로 그려놓았지요. 또한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발견된 무덤에서는, 도교의 영향을 받은 사신도 도 벽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사신도에는 남주작, 백현무, 좌청룡, 우백호 라는 신성한 동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백제 역시도 초기에는 돌무지 무덤 이였고, 차츰 굴식돌방무덤 형태로 바뀝니다. 중요한 점은 백제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서 벽돌무덤도 등장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공주 송산리 7호분인 "무령왕릉" 은 아주 유명합니다. 일제시대에는 역사왜곡 및 각종 도굴이 자행되었는데, 그것을 버티고 무령왕릉은 1971년 기적적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장난 아니었지요. 고스란히 왕릉이 보존되어 있었고, 국보 9개와 다양한 유물들이 발견되는, 한국 고고학계의 전설적 사건 중 하나입니다. 백제에는 벽돌무덤이 있었음, 무령왕릉 대목은 꼭 체크해 두세요.
기본적으로 무덤은 보수적입니다. 그 형태나 문화가 그리 자주 변하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묘비를 하트모양으로 세울 수 있을까요? 화장해서 우주에다가 뿌리는 별먼지장례 같은 문화를 해볼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심지어 무덤의 형태를 보고, 어떤 계통의 민족이며, 어떤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지도 역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때, 초기 고구려와 백제는 문화적으로는 비슷한 계통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요.
신라는 역시 조금 문화가 달랐습니다. 돌무지 덧널 무덤의 형태 였는데, 동산처럼 만드는 무덤 형태였습니다. 입구 없어요~ 벽화 없어요~ 도굴도 쉽지가 않아요. 이런 무덤을 도굴하려면 적어도 포크레인 같은 것을 들고 와서 파야 하는데, 그러므로 과거에는 상대적으로 신라무덤들 도굴이 힘들었겠지요. 이런 문화적 차이 때문에, 신라 유물들이 많아졌다는 것이 참 신기한 대목입니다. 대표적 덧널 무덤은 천마총 이 있습니다. 한편 천마총에서 발견된 그림 "천마도"가 있는데, 이건 벽화가 아닙니다. 낚이면 안 되요! 말의 안장에 그려져 있었고요! 벽화 아닙니다! 꼭 보면 벽화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틀리라고 문제 내는 샘들이 가끔 있습니다. (천마총에는 벽화 천마도가 그려져 있다, 이런 지문에 낚이면 안 됩니다!)
어쨌든 신라도 시간이 흘러서 굴식돌방무덤으로 바뀌게 되었고요, 통일신라로 오면 불교식 풍습인 화장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발해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서, 발해의 문왕 둘째딸 정혜공주묘에서는 굴식돌방무덤 형태였고, 고구려 양식인 모줄임천장의 구조였습니다. 한편, 재밌게도 넷째딸 정효공주묘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데, 전형적인 중국스타일, 지하묘에 벽돌을 사용한 형태도 있습니다. 발해는 고분까지도 고구려 영향, 중국 영향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게 재밌습니다. 보통은 고구려 양식의 정혜공주묘 까지만 기억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문서는 건축물 이야기로 정리하고, 아 이제 길었던 고대 이야기가 끝나가네요 :) - 아래부터는 여담 입니다 -
문화라는게 알고 가면 재밌고, 여러가지 사연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꾸어 생각해보면, 현대문화에는 대표적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외국 사람들 책에는 이런 재밌는 농담이 있습니다. 30세기 사람들의 역사책에 써 있기를, 21세기 사람들은 "네모신"을 숭배하며, 거의 모든 집에 네모신을 모시고 있었고, 네모신의 크기는 32인치, 42인치가 많더라... 그만큼 현대 문화에서는 TV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상외로 높은 듯 합니다. 검색어를 점령하는 것도 TV와 연결되어 있는 단어들도 많고요. 오늘 저녁 다음의 검색어는 야구 중계들이고, 네이버의 검색어는 인기게임 LOL 중계들이네요, 또 음악방송 하면 또 관련 검색어들이 올라가고... 정말로 네모신이 숭배되고 있는걸까요. 하하.
오늘의 영감은 문화 없이 살 수 없다 라는 지점으로 잡아보면 좋을 듯 합니다. 예술 등의 문화가 없다면, 삶의 영역이 먹고, 자고, 일하고, 먹고, 자고, 일하고... 한마디로 일상의 힘을 잃어갑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미국작가 메리 로버츠 라인하르트는, 과거에 아버지가 권총자살, 어머니가 쇼크로 하반신불수가 되어 이후 사망하고, 남편은 주식실패로 빚지고... 애는 3명에... 그 때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로맨스를 쓰고, 모험을 쓰고, 그런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새로운 활기를 얻고,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인세를 가장 많이 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지요.)
고대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먹고, 자고의 반복이라면, 그 얼마나 허무하고 괴로운 인생이었을까요. 그렇기에 사람들이 모여 온 마음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아부으며, 목판 인쇄물을 남겼는지도 모릅니다. 가끔은 제약이 있을 때, 그 덕분에 더욱 강한 에너지와 완성도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 저는 항상 놀랍습니다.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고민하고, 찾아나갈 수 있는 근성을 발휘해 보기를" 열심히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