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고려의 대외 관계 2부 - 원나라가 남기고 간 비참함

시북(허지수) 2013. 4. 16. 23:51

 거란과의 전쟁을 무사히 끝냈다고 했지만, 국제정세는 변하기 마련이지요. 12세기 여진세력이 강력해 지면서, 고려는 조금씩 고생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여진은 말을 타고 공격하는 기병들이 강력했는데, 보병 위주로 편성되어 있는 고려군이 고전했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 때 윤관의 주도로 대여진 특수부대 "별무반"이 조직됩니다. 여진을 정벌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집니다. 고려의 기상, 역시 만만찮다니까요. 별무반은 신보, 신기, 항마군으로 구성되었는데, 오늘날로 치면 보병, 기병, 승병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윤관의 별무반은 천리장성을 넘어, 여진에게 선제공격을 날리며, 동북 지역을 추가로 획득! 동북 9성을 축조하고 호기롭게 출발했습니다. (후에 여진이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했고, 관리상의 어려움이 발생하자, 동북 9성은 다시 여진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12세기 중반 여진족이 세운 "강력한 황제국가 금나라가 등장"하자, 국제정세는 완전히 급변합니다. 금나라는 지금의 중국 북부지역을 손에 넣었고, 거란의 요나라를 멸망시킵니다. 땅크기만 고려의 3배는 족히 넘을 겁니다. 그런데 12세기 중반은 자~알 나가던 고려 문벌귀족의 시대, 이자겸, 김부식 등은 보수적이었고, 전쟁을 피하고 싶었지요. 미련없이 고려의 지배층은 금나라와 사대관계를 맺습니다. 북진 정책은 전격 중단 되었고, 묘청, 정지상 등 서경파가 금국을 정벌할 수 있다며 패기롭게 주장했지만, 이 서경 천도 운동은, 김부식에 의해 제압당합니다. 이후 고려의 대외 관계는 사대와 굴욕을 맛보는 슬픈 날들이 시작됩니다. (물론 금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대외적 평화까지는 좋았다지만, 역사에서 부정적 선례를 자꾸 만들면 어떻게 되는지 오늘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특히 이때부터 지배층들이 보여주는 패륜적 행태는 눈뜨고 보기 괴롭습니다.)

 

 자, 여기서 잠깐. 그러면 중국의 반을 차지했던 강국 금나라는 대체 왜 갑자기 망한걸까요? 13세기가 되면 이 지역에 폭풍이 몰아치니, 그 이름 두려운 몽골 제국의 등장입니다. 1206년, 역사 상 가장 넓은 땅을 지배했던 칭기즈칸의 몽골(원)은 오랜 숙적 금나라를 멸망시키면서, 계속해서 서진하며 정복을 추진합니다. 1279년 원나라의 땅덩어리는 뭐, 유라시아를 뒤덮을 만큼 막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별로 원나라가 좋은 추억이 아닙니다. 몽골은 서진만 했던 게 아니라, 동쪽으로도 계속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12세기 중반 (=1170) 무신정변이 일어났고, 13세기부터 몽골이 쳐들어 오자, 최씨정권 최우는 전설적 몽고 기마부대를 대비해서, 수도를 강화도로 천도하며 항전태세에 돌입 합니다. 강화도의 물살은 거세기 때문에, 여기까지는 함부로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판단했던 셈입니다. 오랜기간 싸우면서 살아남아야 했으므로, 강화도를 적극적으로 간척하고, 성도 쌓으며,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합니다. 긍정적인 측면은 딱 여기까지 였습니다... 조금 슬프더라도, 이제부터 분명하게 보도록 합시다.

 

 왕실은 피신(?)해 갔다고 친다면, 한반도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쩌라고요ㅜ_ㅜ? 민중들이 잡초처럼 들고 일어나서 대몽 항쟁을 필사적으로 펼칩니다. 양반들이 성을 버리고 도망치자, 노비군과 천민들이 힘을 합쳐서 몽고군을 물리쳤다는 고려 역사는 눈물 없이 보기 어려운 명장면 입니다. 몽골은 계속해서 침입해 들어왔는데, 이 과정에서 신라시절의 거대유산 황룡사 9층 목탑이 불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초조 대장경, 속장경 등 여러 문화 유산이 불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당연히 우리에게는 친절한 몽골이 아니었고, 공포의 몽골이었습니다. 싸우고, 또 싸우고, 계속 싸우고... 놀랍게도 고려의 민중들은 이처럼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대몽항쟁 을 해나갑니다. 그런데?

 

 그동안 최씨정권은 세금을 계속 뜯어가면서, 강화도에서 연회를 즐깁니다. 본토의 백성들이 피흘리며 쓰러져가는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은데, 이것이 고려 역사의 한 장면이니, 얼마나 비통합니까. 비참한 민중들의 원망은 점점 극에 달해갔고, 어쩌면 무능하면서 권세만 있는 자를 경멸하는 분위기까지 조성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몽골의 지배를 받는게 낫겠다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나도, 자기 밥그릇만 끝까지 챙기는 졸렬한 지배층은, 결국 마지막 집권자 최의가 측근에게 암살당합니다. 무신정권은 이렇게 막장으로 막을 내립니다. 문신들은 몽고와 굴욕적 강화(평화조약)를 맺었고, 고려는 실질적 원간섭기에 들어갑니다. 새로운 지배층인 "친원파 권문세족"이 등장하고요.

 

 아, 참! 가끔 삼별초 문제가 등장하기도 하는데, 무신 정권의 사병 기구였던 삼별초 (배중손이 이끕니다) 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또 진도에서 제주(탐라)까지 중심지를 옮기면서 끝까지 대몽 항쟁을 펼쳤다 고 합니다. 결국 진압되고 말았지만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삼별초의 일부는 일본 오키나와까지 갔다는 이야기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이 도망칠 때, 백성들이 싸운다. 슬프긴 해도 정말 멋지지요. 왕실이 앞장서서 피신부터 갈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_-;)

 

 이제 원간섭기를 살펴봐야 겠네요. 사실 이 때는 일제강점기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고려의 깃발은 내려가지 않았지만, 거의 준식민지에 가까웠고, 내정이 크게 간섭 받아서, 많은 직위들이 격하됩니다. 비참하고 슬픈 시대로 들어가봅시다. 나라가 힘이 없으면, 얼마나 민중들의 삶이 피폐해 지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일단 고려의 영토가 축소되었습니다. 원나라는 동녕부(평양), 탐라총관부(제주), 쌍성총관부(철령이북지역)를 가져갔습니다. 중국처럼 2성 6부가 있다는 것을 비웃으며, 관제가 전격 개편됩니다. 2성 6부는, 첨의부와 4부가 되었고, 중추원은 밀직사로 변경됩니다. 명칭들이 죄다 격하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원나라 총독인 "다루가치"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고려는 굴욕의 날들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때 영향이 얼마나 강했던지... 지금까지도 흔적이 남아 있다니까요. 치(=사람)가 붙는 언어들, 예를 들어, 벼슬아치, 장사치, 동냥아치, 훗날 파생된 양아치... 이런 말들이 몽골언어계 흔적이라고 합니다. 단어끝에 치가 붙은 것은 경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참으로 싫었겠지요. 원간섭기에는 몽골풍 언어, 의복, 이름 따위가 유행했고, 고려 왕족들은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충자 돌림의 왕족들이 되어야 했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합니까? 백성들은 더욱 끔찍한 나날이고, 가혹합니다.

 

 고려 여자들은 공녀로 원나라로 끌려갔는데, 부모와 생이별해서 타국으로 간다는 그 비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이때부터 고려에는 조혼 풍습까지 생겨납니다. 빨리 딸을 결혼시켜서,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해야 했으니까요. 어린 나이에 결혼이라니, 여성으로서도 얼마나 고통이겠습니까.

 

 남자들은요? 역시나 지옥의 고생길이 펼쳐집니다. 원나라에 바친다는 명목으로 각종 공물 내느라, 더욱 가혹하게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수도 개경에 "정동행성"이 설치됨으로서, 일본 정벌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끔찍하게도 고려-몽골 연합군은 두 차례의 일본 정벌 시도가 태풍을 만나면서 실패하고 말았는데, 사망자 숫자만 수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게다가 기후 외적으로도, 당연히 일본이 그렇게 만만하게 정벌되지는 않았을테고요) 일본 정벌을 준비하기 위한 물자(식량)와 배들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고려에서 다 뜯어간 것입니다. 고려의 국력은 나날이 떨어져갔고, 게다가...

 

 원나라에 빌붙어서 "멋진 세상"이라며 부를 축척하는 지배층 "권문세족"이 등장합니다. 일제강점기로 치면 친일파의 득세지요. 권력에 기생하면서 백성들을 우습게 아는 일부 정신나간 지배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이들은 도평의사사 라는 귀족 회의기구를 통해서 막대한 권력을 행사했고, 음서제와 대농장을 통해서 엄청난 땅을 다스립니다. 대지주들이 가진 농장이 얼마나 넓었는지, 산과 산을 경계로, 강과 강을 경계로, 몇몇 사람이 독차지 하는 겁니다. 정방으로 인사권까지 장악했으니, 친원파의 천국입니다. 신난다며, 원나라 문화를 즐기면서 몽골 스타일도 유행합니다. 한쪽에서는 농민들이 권문세족과 원나라에 시달리느라 이중 부담을 짊어져야 했고, 한쪽에서는 대지주들이 미친듯이 부를 쌓는 것. 이걸 우리는 모순이라고 합니다. 네, 분명 망하는 길이라고도 합니다. 이대로 조금 더 가면 고려가 끝나버릴 분위기 마저 느껴집니다.

 

 역사에 영원한 강자가 없다는 것은 자명한 진실입니다. 고려와 전쟁을 치루었던 강대국 요나라(거란)도 결국 망했고, 뒤이어 일어나 중국 절반을 차지했던 금나라(여진)도 망했고, 유라시아를 완전히 삼킬 듯 위세가 높았던 원나라(몽골)도 서서히 힘이 떨어져 갑니다. 아직입니다. 이대로 고려가 끝장날 수 없습니다. 14세기 중반, 고려는 공민왕이 강력하게 개혁을 내세우면서, 무너져가는 국가를 온힘을 다해서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지긋지긋한 핵심 친원파를 숙청하고, 반원(反元)자주를 내세우면서, 고려를 일으키려 하는데... 공민왕과 신진사대부의 활약, 다음 문서에서 계속! -아래부터는 개인적 잡문입니다 -

 

 오늘은 조금 장문입니다. 소박한(?) 영감입니다. - 쓰면서도 자꾸 슬퍼져서, 몇 차례나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한 때는 징기스칸의 성공비결을 배우는 등 실용적인 시각이 유행하기도 했었지요. 정직히 말해, 우리는 승자의 시선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데 익숙합니다. 가지지 못한 자들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본다는 것은, 인기도 없을 뿐더러, 괴롭기까지 합니다. 한 국가가 자주적인 기술이 없고, 자주적인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 수 많은 약자들이 휩쓸려 나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술 강국이 결국 잘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 "커다란 힘에는, 항상 그만큼의 커다란 책임이 따라 온다는 것" 이 말은 어쩌면 멋진 말이 아니라, 냉정한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힘을 가졌을 때, 그것을 자신들만의 호화파티로 다 써버린다면, 힘이 없는 사람들은 보호 받지 못한 채, 피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사회가 붕괴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도, 힘있는 자가 졸렬한 모습을 연이어 보여줄 때, 게다가 개혁마저 실패했을 때, 국가는 멸망으로 진행되어 나갑니다. 힘없는 백성을 보호하고, 돌보는 대신에, 그들에게 이중의 수탈과,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순간, 그 나라의 힘은 초라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고군분투하면서 노력하는 사람들의 땀을 간단히 도둑질 하는 게 용인되기 시작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이 저는 자꾸만 무섭게 느껴집니다.

 

 힘있는 권문세족이 폭력 수단까지 동원해서, 토지를 빼앗는 데 사력을 다하며, 대지주의 천국을 만들어 갈 때, 사람들의 괴로움은 절정에 달했다는 사실. 이것이 소수의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좀 더 많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가면서,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남기고, 사람들을 부품으로 처리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 보여서, 너무 슬펐던 것 같습니다. 2005년 기준입니다만, 상위 10%가 98.3%의 토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땅이 없는 이유는? 나머지 90% 이기 때문입니다. 2000~2010년 사이에 기업소득은 매년 16%의 눈부신 성장을 했지만, 가계소득은 매년 2.4% 성장했습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삶이 열악해지는 결정적 이유입니다. 2008년 이후에는 양극화에 속도까지 붙었다고 합니다. 살아갈 수 있는 길과 올바른 기술에 투자하고, 불로소득에 대한 대안들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리석은 지배층과 나만 살자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가득차는 순간, 대한민국은 더욱 곤란해질테고, 역시나 약자들부터 계속해서 목숨 끊을 것입니다. 슬픕니다. 우리 모두가 바꿔나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