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투 브라더스 (Two Brothers, 2004) 리뷰

시북(허지수) 2013. 4. 18. 19:33

 동물을 사랑한다면, 고양이과를 좋아한다면, 강력 추천 투 브라더스 입니다. 사람에 대한 실망감으로,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힐링 무비 투 브라더스 권합니다. 호랑이 가족이 보여주는 따뜻한 모습에 저절로 위로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 요즘 누군가가 재치 있게 표현한 이런 댓글이 큰 공감을 얻고 있더군요. "매일 매일이 충격과 공포다, 황당한 멘붕 대한민국." 짐승만도 못한 일부의 패륜적 인간들이 쉬지 않고 등장하고 있으니, 그들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어쨌든 저는 사람이야말로 서로 아끼고 보듬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살아야 100년을 넘기기 어렵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하루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몇 끼 안 되며, 심지어 수만권의 책이 있다한들 집중해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권씩, 한 권씩 입니다. 그럼에도 그릇된 욕망에 눈 멀어서, 나부터, 나만 잘살자 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마음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혹여 이 더러운 세상에서, 나도 더럽게 살아야지 라고 마음 먹는다면, 한 번만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가 진흙탕이 된다면, 결국 아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꼬마 소년 라울은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대담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작은 소년의 맑은 시선을 통해서, 세상을 바꿔나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 투 브라더스의 매력은 상당히 중립적이라는 점이 포근합니다. 자연이 위대하고, 인간이 초라하다 식으로 떠들지 않습니다. 반대로 인간이야말로 만물의 영장이며, 자연과 동식물은 지배받는다는 식으로 폭력적으로 접근하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전적으로 관객에게 맡깁니다. 굶주린 호랑이는 위협적이라서, 사람을 공격하고, 할퀴며, 끔찍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고, 우회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호랑이는 상품가치가 있어서, 10만 마리가 넘게 있었으나, 지금은 5천마리도 남아있지 않다고 잔혹한 숫자를 보여줍니다. 선악의 구분을 하지 않는 태도, 다만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태도, 이 점이 참 인상적입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전체관람가인데, 역시나 스토리 라인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호랑이 형제가 인간에 의해서 생포되었다가, 공교롭게도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를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담겨 있는 의미 만큼은, 어른들이 보아도 충분히 영감을 줄 수 있는 대목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영화 초반 상아의 가격이 떨어지고, 고대 석상의 가격이 치솟자, 요즘 대세인 고대 석상을 더 채굴하기 위해서, 대규모 인력이 작업하러 들어가는 모습은 압권입니다. 네, 솔직히 말하자면, 돈만 된다면, 황금만 있다면, 사람들은 원정대를 파견해서 지옥에라도 들어가서 악마와도 싸울 것입니다.

 

 호랑이네 식구들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장면이 아름다운데, 꼬마 호랑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뛰어노는 모습은 마치 "파라다이스"를 연상하게 합니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늘 그렇듯이 "탐욕"입니다. 석상을 채굴하러 온 대규모의 인력들은, 주변에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고, 본격적 호랑이 사냥에 나섭니다. 총을 들고 있는 인간을 막아낼 수 있는 동물은 이제 거의 없지 않을까요. 제 아무리 호랑이가 빠르고 강력해도, 기술로 무장한 사람을 이기진 못합니다. 호랑이는 쓰러지고, 꼬마 호랑이들은 각각 어딘가로 팔려나갑니다. 한 녀석은 서커스단으로, 한 녀석은 고위 행정관의 집으로... 피할 수 없는 생이별이지요.

 

 서커스단에서는 가혹하게 호랑이가 길들여 지는데, 나중에 이 녀석이 나이가 들고, 쇠약해 지면 어떻게 되는지까지도 알 수 있습니다. 돈의 원리는 참 씁쓸하게 작동되는데, 필요가 있을 때는 적당히 먹이도 주고, 열심히 훈련시키다가, 시간이 흘러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처리해 버립니다. 아, 제가 비정규직, 계약직 이야기 하는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동법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혹하고 슬퍼서, 꼬마 호랑이처럼 절망감으로 무력해 지는 기분까지 듭니다. 탈출할 수 없고, 빠져나올 수 없는 공간 앞에서, 아기 호랑이는 노예화 되어갑니다.

 

 한편 고위 행정관의 집으로 끌려갔던 녀석은 "상가"라는 이름도 붙어서,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소년 라울과 함께 잠들기도 하고, 아이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습니다. 하지만 상가는 언제까지나 좋은 시절을 보내지 못합니다. 호랑이 새끼는, 어릴 때나 귀엽지, 점점 문제를 일으키자, 좇겨나는 신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라울이 그토록 함께 지내고 싶어하지만, 아이는 힘이 없습니다. 상가는 이제 더 가혹한 곳으로 끌려가서, 두려움과 훈련 속에서, 왕실이 키우는 호랑이로 성장해 나갑니다. 자, 이쯤오면 알 수 있습니다. 있을 곳을 떠나서, 이상한 곳에 있게 된다면, 결코 행복한 일상을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뼛속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작은 물고기가 등장하는 장면은 짧지만 인상적입니다. 물고기가 어항 속에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구두 속에 있어야 할까요, 물고기의 자유는 넓은 강과 바다 속에서 찾아지는 셈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시선을 조금 다르게 옮겨서, 사람의 가능성에 대하여 고민해 본다면 한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능성을 어항 속에서 한정시켜야 할까요? 물고기가 어항 속에서 보는 세상이 진실일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프레임(생각의 틀)을 강요받습니다.

 

 대표적인 것 두 세개만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실패하고 떨어지는 경험이 과연 인생 최악의 순간인가요? 가난한 사람은 좋은 것을 가지면 안 되나요? 반드시 주어진 환경에 맞춰가면서 살아야 하나요? 우리는 길들여 지고 있습니다. 성공해야만 하고, 그래야만 좋은 것을 가지고, 그러면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순응하는 태도. 놀라울 정도로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태도.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다른 생각을 가져보려고 한다면, 우리는 자신만의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상식으로 통하는 많은 것들도, 처음에는 이상한 생각일 수도 있었습니다!

 

 자본은, 절대로 작은 것으로는 기뻐하고 행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짐으로서 더 멋져보이라고 말합니다.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옛날 것과 지난 것 보다는, 새로 나온 무엇을 아름답게 치장하기에 바쁩니다. 한마디로 끝없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없어도 되는 것들을 손에 넣기 위해서 애쓰고 고민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홧김에 지름신이 온다면, 최소한 딱 하루만이라도 더 인내심을 가져봅시다. 사소한 태도변화가 삶을 더 즐겁고 중요한 쪽으로 이끌지도 모릅니다 :)

 

 영화의 메시지는 고뇌하는 왕족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강한 척 하지 않고도 존경을 받을 수 있기를..." 이걸 바꿔 써보면 이렇습니다. "돈 많은 척 하지 않고도, 사람 대우를 받을 수 있기를..."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구조적 프레임을 깨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평등한 대우를 할 수 있도록 시선부터 바꾸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진상이니 저리가" 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니?" 라는 따뜻한 배려와 친절함이 필요합니다.

 

 리뷰를 마치며, 호랑이 형제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족이었습니다. 불길을 함께 뛰어들어가면서, 어려운 순간을 이겨내도록 서로 돕는 동족의 아름다움은 거의 "경이"에 가깝습니다. 우리도 응당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힘든 순간일지라도, 같이 살아보자 라고 손길을 건네며, 힘내서 계속해서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마침내 투 브라더스가 만난 것은, 감동적이고 눈부신 미래 였습니다. 욕망에 물든 인간들이 제아무리 날뛰어도, 정신 차리고 뚜벅뚜벅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 2013. 0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