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조선의 주도세력 탐구, 관학파 vs 사학파

시북(허지수) 2013. 4. 29. 21:22

 한국사 이야기도 어느새 반환점을 넘어가고 있네요. 대망(?)의 조선시대로 들어왔습니다. 공기가 조금 고려와 다른 것 같나요? 하하, 조선시대는 임진왜란(1592)를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당연히 조선 전기부터 꼼꼼하게 살펴봐야 겠지요. 조선 전기의 주도 세력은 누가 있었을까요? 15세기는 관학파(=훈구파)가 있고요, 16세기는 사학파(=사림파)가 주도 를 해나갑니다. 따라서 이번 문서에서는 집중적으로 15세기 관학파와 16세기 사학파를 정리해 봅시다. 익숙해질 때까지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게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조선은 어떻게 건국될까요? 고려말 친원파 권문세족을 떠올려봅시다. 세습되는 음서제와 엄청난 대농장을 소유하던 썩은 지배층들 말이에요. 그리고, 권문세족들과 대립하던 신진사대부가 있습니다. 이들은 권문세족과는 성격이 완전히 달랐지요. 신진사대부는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던 실력파였고, 또한 중소지주 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권문세족처럼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고 있으면, 변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역사의 커다란 변화들은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들, 낮은 위치의 사람들, 변방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자, 사건의 발단은 고려 말기, 요동 정벌을 주장한 최영 장군이었지요. 최영은 아무래도 친원파와 가까웠고, 떠오르는 명나라 눈치 따위는 볼 필요가 없으며, 요동을 정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신진사대부 세력은 생각이 한참 달랐습니다. 권문세족을 비롯한 원나라 세력들을 모두 몰아내고, 차라리 신흥 강국 명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이 부패에 눈먼 고려라는 나라를 갈아엎어버릴 수도 있다고 마음 먹기 시작합니다. 신진사대부는 신흥무인세력들과 손잡았고, 마침내 역성혁명을 꿈꾸고 성공시키게 됩니다.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가다가, 도중에 위화도에서 회군하면서, 정권에 반기 를 듭니다. 그리고 급진 개혁파와 손잡고,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계획합니다. 최영을 제거해 버렸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 하는데 성공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친원파의 경제적 기반을 빼앗아 오는거지요. 신진사대부들은 과전법을 실시하면서, 경제적 개혁을 단행 합니다. 이제 땅은 세습될 수 없었습니다, 관리가 죽으면 그 땅은 고스란히 국가에 반납되었지요. 마침내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권문세족은 역사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부의 자동 대물림을 그렇게나 좋아하던 음서제와 대농장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결국 언젠가 사라질 뿐입니다!

 

 새로운 국가를 이끌려면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이데올로기라고도 표현합니다. 신진사대부들은 성리학을 기반 으로 하고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성리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구체적으로 좀 더 살펴볼까요. 우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노선을 중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관학파 (후에 훈구파) 라고 부릅니다. 관학파들은 역성혁명을 주도하던 강경한 이들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개국공신인 혁명파 정도전 같은 사람이 있겠고요. 이제 조선에서 구 고려 왕족들은 삼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15세기는 바야흐로 공신들의 관학파 시대 라고 볼 수 있겠고요.

 

 그런데! 성리학을 실용이 아닌 "진리"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사학 (=사림파) 사람들 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신하가 왕을 바꿀 수 없으며, 충성으로 섬겨야 한다고 주장한 정몽주 같은 사람이 있겠네요. 이들은 조선건국에 참여하기 보다는, 오히려 중앙에서 멀어지며 의도적으로 낙향해 버립니다. 그리고 무엇을 했을까요? 후세를 도모하기 위해서 철저하게 준비해 나갑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16세기로 가면, 이들 사림파가 조선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흥미진진하지요. 어떻게 이들은 주도권을 쥘 수 있었는가?

 

 약 100년간의 사림파 세력 확장기를 탐구해 봅시다. 이들은 향촌의 유향소를 통해서 여론을 장악합니다. 서원에서 인재를 양성해 나갑니다. 향약으로 농민들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실력을 어느정도 키우자, 15세기부터는 관직에 진출하며, 관학파를 비판하면서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언론기능이 있는 조선 3사까지 장악하면서 관학파와 대립하게 됩니다. 사림파들의 진출이 장난 아니었고, 이러다보니 중앙(관학파)에서는 경계심을 가득 높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뭐야, 보자보자 하니 사림들 이거 이거 이거...!!!" 무려 4차례에 걸쳐서 사화. 즉, 사림이 화를 입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대세가 역전되며, 정권이 사림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앞서 간단히 정리한 것처럼, 15세기 관학파 → 16세기 사학파 의 흐름 을 일단 기억해 두는게 중요합니다.

 

 누가 정치적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의 모습은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치는 광범위하게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칩니다. 조선의 첫 문서에서 관학파와 사학파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이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조선 전기의 많은 모습들을 보다 쉽게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특징을 살펴보도록 합니다.

 

 15세기 집권여당이라고 볼 수 있는 관학파(훈구파)는 어떤 사람들인가요? 성균관 출신이었고, 강한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추구합니다. 국가 초기의 모습들처럼, 자주적이고, 개혁적인 성향도 있습니다. 기술을 중요하게 여겼고, 단군을 뿌리로 삼습니다. 또한 문학적소양(=사장)을 강조합니다. 음, 어쩌면 아직까지는 자유분방한 고려의 느낌이 살짝 묻어있고, 남아있습니다. 다른 사상에도 관대한 편입니다. 다만 한가지 충격적(?)인 것은, 아니 뭐 당연한 거겠지만, 관학파는 서서히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기득권 세력이 되어갑니다. 조선의 공신과 충신들은 이제 훈구파로 불리며 각종 경제적 이익을 독점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이구, 이 사람들아... 많이 가지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 알잖아요. 오래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장 관학파를 비판하는 세력들도 생겨나겠죠?

 

 여기에, 당시 야당이라고 볼 수 있는 사학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관학파와는 성격이 참 많이도 다릅니다. 견제와 비판을 계속해 나갔지요. 사학파는 서원 출신이었고, 향촌자치와 왕도정치를 주장합니다. (※왕도정치는 신하들과 함께 태평성세를 만들자는 의미로서, 신하들의 비중이 큰 정치를 말합니다) 또한 사학파는 원칙을 아주 중시하는데, 그러다보니 보수적이고 사대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성리학이란 질서를 정말 강조하는데, 큰 것과 작은 것의 질서도 확고합니다. 중국을 중시하고, 스스로를 소 중화(작은 중국)라고 여기는 편이지요. 중국의 문화를 우월하게 다루었으며, (중국의 성인이 다스렸던) 기자 조선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16세기 사학파가 마침내 집권 에 성공하고, 주류가 되자 사회 분위기가 확실히 바뀝니다. 기술은 이제 경시되고, 유교 경전(경학)은 중시됩니다. 타사상은 탄압 되기 시작하는데, 국가제사를 담당하는 소격서의 경우 폐지되어 버립니다. 참, 그리고 사학파는 중소지주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처음에는 낙향해서 조용히 지내기를 소망하던 사람들이었지요. 그런데 앞서 본것처럼 관학파가 점점 부패해가면서 대토지를 소유해 나가자, 지방의 사학파들은 점점 피해가 커질 수 밖에 없었고, 점차 중앙을 강력 비판하게 되어가지요. (※물론 16세기에 이르러 사림들이 집권세력이 되면, 역시나 대지주가 되어가는 것은... 그 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여하튼, 다음 문서에서는 태조부터 살펴보면서, 조선이 하나씩 자리잡아가는 과정들을 봅시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생각보다 많다는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치 상황에 따라 경제, 사회, 문화는 굉장한 영향을 받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고요. 집권하는 당이 무엇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질은 상당히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가령, 대기업을 밀어준다면, (삶의 질과는 별로 상관없이) 대기업이 잘 될 것이고, 강을 공사한다면, (역시 삶의 질과는 별로 상관없이) 공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잘 되겠지요. 그래서 21세기가 조금 더 흐르면, 계층간의 분열과 함께 세대 간의 분열도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오늘의 영감은 - 과연 인간 정신은 발전하는가? 라는 꽤 무거운 질문입니다. 문필업에 종사하는 유시민은 저서에서, 인간의 욕심이 수천년전에 비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그러므로 탐욕을 막기 위해서, 시스템을 제대로 보완해 나가지 않으면 국가가 엉망이 되고, 인간이 얼마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음을 경고했습니다. 다르게 말해, 지금 시대 사람일지라도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지배자가 되어 시간여행을 간다면, 거대한 땅을 즐기며, 사람을 짓밟는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즉 폭군과 막돼먹은 지배층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아주 곰곰이 생각했는데, 인간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시 성인이 나와서, 멋진 지도자가 나와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벗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 저마다 가지고 있는 "의식과 생각"이 중요하며, 어떤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서 "지나친 탐욕"을 막아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며, 법이 확실하고 올바르게 사용되어서 정의가 구현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도 가끔 눈을 감고 한 번쯤 생각해 봅시다. 지금 세상은 누구를 위한 세상인가? 악당이 잘 먹고 잘 사는게 누구 책임인가?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양날의 검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몰라라 하며, 침묵으로 정신적 노예를 자처한다면, 우리가 칼의 역면을 스스로 꽂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모두가 투표하고, 참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그 검이 정면으로 사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기득권은 거의 항상,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부패를 향해 움직이기 쉽습니다. 이걸 막아낼 역량은 결국 시민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