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007 스카이폴 (SKYFALL,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5. 5. 23:51

 007 50주년 기념작품인 스카이폴 이야기 입니다. 제임스 본드의 강력한 임무의지와 헌신적인 열정이 인상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명작이지요. 이 영화는 두 가지 질문을 제게 던져주었습니다. 온힘을 다해서 조직을 위해서 노력했을 때, 결과가 좋지 못했다면, 다시금 조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근본적 동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둘째로, 화려하고 편안한 삶을 버리고, 스스로 속박되는 삶을 선택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의 인생을 과연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복잡하거나, 철학적인 접근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막 써내가는 리뷰에 당연히 그럴만한 필력도 없고요. 하하. 스카이폴은 "국장이라 할 수 있는 M"이 훈련으로 낳았던 두 아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한 명은 이제 육체가 한계점에 닿아가고 있는 본드 였고, 나머지 한 명은 M을 향해 적대적으로 돌아선 실바 입니다. 영화의 전반전은 최강의 악당 실바를 좇아서 추격을 펼치는 장면이 박력 넘치게 펼쳐집니다.

 

 

 요즘 액션 영화의 트렌드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이하드4.0 이나 007스카이폴, 혹은 아이언맨3 까지도, 악역을 자처하는 인물들이 대단히 현명하고 지능적입니다. "내가 끝판대장이다"라고 당당히 떠드는 태도는 구식이 되었습니다. 영화 역시도 사회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현대 사회가 그만큼 복잡해졌고, 숨기 쉬운 시대가 되었음을 상징하는 듯 느껴집니다. 과거에는 내가 아는 누군가, 혹은 안면 있는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할 위험이 있었다면, 현대에는 내가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장난질에 속아 넘어가는 순간, 익명의 인간에게 테러당하는 사회니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아, 물론 아군도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신기술 몇 개쯤은 보유하고 있습니다. 소유자를 인식해서 총이 작동된다거나, GPS로 위치를 추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정보를 통제하고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수 많은 CCTV가 사생활을 밀착 추적할 수 있음을 스카이폴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다면, 이런 일반적 사실들은 당연히 적들도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정보를 역이용하는 장면도 나타납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생활이 편리한 사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안전한 사회가 된 것은 아니다"

 

 본드는 베테랑 답게, 총을 맞아가면서까지, 계속해서 임무를 위해 노력하지만, 비참한 실패의 순간도 맛보았습니다. 조직은 그를 사망처리 하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본드는 죽음 직전에서 간신히 살아나자마자, 곧장 M국장에게 찾아가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편안한 삶을 버리고, 불편을 자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당하고 잠이 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또는, 미완수된 과제를 남기고 물러서는 건 자존감이 용납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요. 무엇보다 그는 "007" 이니까요. 007이 한 번 추락했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고, 영화는 멋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단순명료함"이 왜 그토록 좋은지요. 둘러가면서 변명해보고, 온갖 명분을 갖다붙이는 피곤한 모습들에 비한다면, 스카이폴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게 "솔직"합니다. 본드는 지금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하는 셈입니다. "나 아직 안 끝났소, 다시 출발하게 어서 챙겨주시오" 게다가 노년이 된 M 역시도 곧장 화답하며, 수치를 간단히 무시해버리며, 007에게 신뢰를 보냅니다. 이 장면이 참 깊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사람을 과연 숫자 몇 개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 옳은 방식인가?

 

 스카이폴은 시스템 보다는 인간중심의 결정들이 더 정확할 수 있음을 간파해냅니다. 기계가 확정한 낮은 가능성 보다, 인간이 직감한 높은 가능성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오랜 경험이 축적된 판단력은 결코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젊은 열정이 패기롭게 현실에 맞설 수 있다면, 숙련된 호흡은 지혜롭게 현실을 맞서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실패들이, 길게 봤을 때, 절대적으로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M이 "한 번 실패하고, 재도전하는 본드"를 누구보다 강하게 신뢰했다고도 생각합니다. 인간은 다시 태어날수록, 더욱 강해진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요. 만약 잠깐의 사고로 손이라도 다치게 된다면,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일상 조차도 축복으로 느껴볼 수 있게 됩니다. 자, 얼른 영화로 돌아갑시다. 과연 본드는 M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낼까요?

 

 아뿔싸, 악역 실바도 전직 요원 출신 답게,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약점이 있었는데, 실바는 스스로의 손으로 어머니 격인 M을 쉽게 쏠 수 없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M을 증오하는 듯 비춰지긴 하지만, 사실은 애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영화는 실바의 과거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지금의 본드처럼, M에 대한 충성스러운 신뢰로 함께하던 뛰어난 요원이었니까요. 실바는 긴 시간동안 세상에서 아마 유일하게 자신을 신뢰하고 보살펴줬을 M을 가볍게 대하지 못했다는게 한 편으로는 살짝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만약 비극적 작전실패의 추락이 없었다면, 실바 역시 지금까지도 M이 깊이 아끼는 남자였을테고요.

 

 그렇게 보면, 스스로 구속된 삶을 선택하는 제임스 본드의 선택이 정말이지 놀랍고 대단합니다. 솔직히 그동안의 화려한 공적들에 비춰본다면, 이제 후임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호화로운 은퇴 이후를 즐겨도 충분할텐데 말이에요. 아마도 이것 역시 본드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겠지요. 자기가 있어야할 자리를 아는 사람은, 그 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축복으로 여길 겁니다. 본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가장 편안하고 즐겁고,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은, 편안한 저택에서의 평화로운 순간이 아니라, 긴장감 있는 현장 한복판이 "그가 살아가는 공간"이었던 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이 "진짜 나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이런 사치는 사회적으로 계속해서 유혹되고 있는 가치관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내 모습은 어디에 서 있을 때, 가장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고찰해본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에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하고 계속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할 수록, 우리의 삶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내가 이것을 하면서 살아가야 겠다고 확신했을 때, 그 분야에서 탁월한 모습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을 만큼, 힘껏, 한없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단언컨대 그런 인생이야말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근사하고 행복한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 2013. 0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