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잘 사는 집단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로얄 패밀리 였고요. 호화로운 집을 거닐면서 생활을 즐기던 집단 입니다. 이들은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너희들을 잘 보살펴 줄테니, 우리를 잘 섬기고, 말을 잘 듣도록 해." 그리고, 마침내 위기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음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는 잔인한 시간이 왔습니다. 재빠른 로얄 패밀리들은 나부터 일단 살아야지 하면서, 짐을 싸고, 제 갈 길을 떠납니다. 오늘은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한 명의 이름 없는 백성 입장이 되어서 임진왜란의 장면을 눈물로 들여다볼까 합니다. 지배층들의 위선이 폭로되는 불편한 진실 앞에서, 겸허한 태도로 천천히 본편으로 떠나봅시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주장하면서 시작됩니다. 도요토미가 정명가도를 주장하면서 조선을 맹공해 옵니다. "우리가 명나라를 치려고 하는데 길을 열어주게" 입니다. 이렇게 황당한 이야기에 당연히 조선은 거절하고, 이제 본격적인 조선과 일본의 전쟁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조총이라는 혁신적인 무기를 앞세우며 거세게 밀고 올라오지요.
조총은 본디 한 번 쏘고 나면, 다시 장전하는데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하고, 따라서 얼핏 비효율적인 무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 대 개인에서는 그랬다지만, 조직적인 전술이 동원되면서 조총이 무서운 파괴력을 자랑하게 됩니다. 1열이 쏘고, 2열이 쏘고, 3열이 쏘고, 다시 1열이 쏘고... 이런 식으로 총알이 날아오니 육지에서는 상대하기가 너무나 벅찬 일본이었습니다. 게다가 일본은 전국시대를 종식시키며, 정신력까지 전투욕망으로 불타고 있었으니, 무기도, 자세도,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200년이나 평화와 안정을 누리던 조선이 밀리기 시작합니다.
한마디로 초반에는 싸움이 안 됩니다. 부산이 무너지고, 엄청난 기세로 충주까지 무너집니다. 이어서 수도 한양이 점령됩니다. 평양과 함경도까지 침입해 들어오고 있는데... 그야말로 "참패" 입니다. 우리가 선명하게 바라봐야 할 것은, 과연 조선의 지배층들이 이 당시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나? 라는 거대한 질문입니다. 끝까지 싸우며, 백성들을 지키려고 했나요? 전혀요. 일단 도망가자며, 서둘러 피신하고, 살 길을 찾아서 후다닥 짐싸버립니다.
헐? 백성들이 볼 때, 이같은 태도는 황당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조선은 어떤 나라였습니까? 성리학의 나라 라면서요? 지배층이 마치 부모와 같이 아랫 사람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야 한다면서요? 성리학이 그토록 강조하던 충과 질서는, 처참한 현실 앞에서 "가짜, 위선" 이었음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만 작동했을 뿐, 위기 앞에서 지배층이 행동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너무나 졸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지배층의 권위와 그 실상이 무엇이었는지, 임진왜란을 통해서 명백하게 폭로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점을 기준으로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세상이 바뀌어 버린 겁니다. 왜란을 계기로 조선의 양반의 모습도 달라지고, 사회가 변합니다. 조선 후기에는 백성들의 문화가 꽃피며, 양반은 풍자의 대상으로 추락해 나갑니다. 왜란을 통해 지배층이 보여주었던 가식과 허위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뭐? 민본정치? 이게 무슨, 백성을 위한 정치냐! 소수를 위한 특권의 정치였구만!
백성들은 분노합니다. 기층 민중들이 경복궁을 불태워버렸다는 역사적 장면들은 아주 엄중한 진실을 이야기 합니다. 침략의 야욕을 불태우는 도요토미 패거리가 나쁜 것은 당연하고, 거기에 전혀 맞서지 않고 백성들을 버리고 가는 지배층 또한 만만치 않게 황당한 집단이었음을 바라보며, 이제 백성들이 절규하며 항의하고 있습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당시 왕자들은 함경도를 향해서 피난을 가버리는데, (왕족은 대를 잇기 위해서 선조는 북서끝 의주로, 왕자들은 북동끝 함경도 길주 쪽으로 이동). 분노한 함경도 사람들은 왕족을 잡아서, 아예 일본에게 갖다줘버립니다. 가식의 지배층들 따위 너네들 맘대로 하라는 셈입니다. 선조의 경우는 명나라를 향해서 원군요청을 하면서 열심히 이동하지요.
개인적 여담을 보태면 - 여기서 질문을 던져봄직 합니다. 대체 조선의 백성들은 왜 그랬을까요? 그야말로 막장으로 치닫는 역사 한복판에 서서 본다면, 그만큼 억눌리고 고생만 하던 백성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배신감"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땀흘려 일하고, 세금을 바치고, 지배층의 생활을 떠받들면서 살아왔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랏님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그들이 "위대한 인물이나 성인군자"가 아니라, "나부터 살고보자는 소인배" 였으니... 조선의 생명력이 사실상 끝나가고 있습니다. 거의 문닫을 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상황이 극복되어 가는지 보고 있으면, 또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광화문 광장의 그 분이 등장합니다. 학자 류성룡이 평하기를.
"이순신은 백 번 싸운 장군으로서 한 손으로 친히 무너지는 하늘을 붙든 사람이었다"
무너지는 하늘 앞에서도 겸허히 국가를 위해서 싸우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수군과 의병이 왜와 맞서서 싸워나가는 가슴 설레는 모습 을 우리는 다음 문서에서 살펴봅시다. 배경을 좀 더 이해해 놓고가자면, 우리도 밀리지 않는 기술은 충분히 갖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게 화포라 할 수 있지요. 배에 포를 안정적으로 장착시키는 기술이 있었지요. 고화력으로 정확하게 날아가는 포는 정말 장난 아닙니다. 이순신의 전술과 조선의 화포가 이후 얼마나 엄청난 활약을 하는지 다음 문서에서 살펴볼 수 있겠지요. 비록 육지에서는 조총부대에 밀리더라도, 수군에서는 조선이 더 강하면 강했습니다!
오늘의 영감 - 역사를 이끄는 주역들은 누구입니까? 단언컨대 이순신과 곽재우 같은 장군들이 보여주는 진짜 충(忠)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며, 싸우고, 저항하며, 피흘려온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지금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귀족들은 충의 껍데기만 쓰면서, 사람들을 입맛대로 조종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선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행동을 할 때, 무엇이 진정한 국익을 위함인지 생각해보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곽재우나 이순신 같은 사람들은 권력에 아부하며 살 바에, 아프더라도 올바른 말을 하면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실천하는 것을 충(忠)이라고 여겼습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운다면, 우리는 과연 이순신 같은 겸허함이 있는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나만 살면 그만 이라는 초라한 가치관의 끝판대장이 당시 조선 지배층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이 땅과 이 나라 백성들은 반드시 지켜내겠다 라는 가치관으로 무장한 "멋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비슷한 현실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태도로 살아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언제나 사회를 바로 잡아나가는 것은, 깨어 있는 사람들이 모여 나갈 때 입니다. 잔인한 역사적 현실 앞에서, 오직 그것만을 깊게 생각할 뿐입니다. 한 번 뿐인 인생이라면,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에 결코 주눅들거나 절망하지 말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