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월드워Z (World War Z,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1. 21:33

 화려한 블록버스터 좀비영화 월드워Z 이야기 입니다.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시나리오 전개가 맛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긴장감을 유지시키면서 이야기를 단숨에 끌고가는 속도감도 상당히 좋고요. 개인적으로는, 2013년 개봉된 외화 중에서 월드워는 기대 이상의 감동과 영감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특유의 가족 중시, 영웅적 개인이 표현되고 있지만, 뭐 괜시리 비극적으로 그릴 필요는 없겠지요. 약간씩 유머코드도 담겨 있고, 인류의 엄청난 위기 속에서도, 재치 있는 장면들과 통찰력 있는 대사들이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브래드 피트는 세월을 잊은 채 참 멋지네요. 하하.

 

 기본 스토리라인은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적의 좀비가 출현했다!" 입니다. 죽지도 않고, 끝없이 도시들을 습격하면서, 세계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합니다. 총도 통하지 않고, 대책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는 게 중요합니다. 땅에 좀비가 가득해서, 사람들을 덮친 다면, 대체 인류는 어디로 피해야 하나요? 비현실적인 질문으로 느껴진다면, 조금 바꿔쓰면 현실감이 느껴질까요?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알 수 없는 전염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죽어간다거나, 초강도의 지진으로 원전이 연이어 터진다면, 당장 우리도 피난을 검토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흥미롭게도 바다 위에 떠 있는 엄청난 크기의 군함에 많은 사람들이 피신함으로서 시간을 벌어보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좀비는 바다를 향해 수영하기는 곤란하군요! 게다가 이스라엘 같은 나라는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서, 장벽을 엄청나게 웅장하게 세워버립니다. 빌딩만큼 높이 장벽을 쌓아놓았으니, 일단 이곳도 안심입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큰일인데요. 이제 대륙의 주인이 좀비가 되었고, 인류가 반격을 해서 되찾아야 할텐데, 무적의 좀비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영화는 초반, 중반까지도 계속 좀비에게서 도망치고, 일단 살아야 한다는 장면들을 비춰줍니다. 주인공 제리의 명대사는 굉장히 강렬했습니다. "움직이는게 사는거야!"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결국 더 위험해 진다고 간파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리는 끝없이 움직이고, 돌아다니고, 답을 찾아 나섭니다.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한국의 평택 미군기지까지 오고, 초토화된 세계에서 해법을 찾고자 험한 고생은 다 합니다.

 

 통렬하게도 힌트는 "관찰"에서 나왔습니다. 좀비가 모든 사람들을 공격해야 할터인데, 가끔 가다가 무엇인가에 홀린 것처럼 누군가를 피해가는 묘한 장면을 주인공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 같은 경험을 하다보니 "무엇인가 이상한데... 왜 그런걸까?" 라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역시 "현장"에 생생한 힌트가 있다고, 새삼스레 놀랐습니다. 현장을 외면한채, 머리로만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들은 한계를 맞이할 수 있음도 같이 느껴볼 수 있었고요.

 

 왜냐하면 거대한 장벽을 세웠던 이스라엘은, 마치 선택받은 국가인냥 기쁨에 도취되어 있다가, 좀비들의 인간탑 작전에 한순간 무너지면서, 그대로 초토화 되어버리니까요. 이 정도나 노력했는데, 역시 우리는 탁월해! 라고 자뻑하다가 그냥 게임 끝나버리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현실을 만만하게 보거나, 우습게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재밌게 쓰자면, 영리하게 뛰는 인간 위에, 거의 하늘까지도 넘나드는 슈퍼 좀비가 있기 마련입니다!

 

 한편 해답을 고민하던 제리는 엄청난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좀비는 병걸린 사람은 피해간다고 확신하게 된 거지요. 물론 좀 병이 깊어야 하겠고요 :) 예컨대 우리 인간도 상한 음식은 먹지 않잖아요. 쳐다보기도 싫어하고요. 좀비도 마찬가지라는 거지요. 꽤 놀라웠습니다. 그래서 제리는 스스로 독한 병균을 투입함으로서, 좀비들의 표적이 되지 않는 "특수한 인간"이 되고자 합니다.

 

 저는 계속해서 이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진짜 힘은 오직 위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조금 다른 측면으로 본다면,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든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힘든 선택을 감당해야 하는 불굴의 태도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제리는 이 위험하고 어려운 선택을 짜릿하게 해냅니다. 위험을 감수해야만 미래를 향해 걸어갈 수 있다는 대목이 깊은 인상을 남겼네요.

 

 많은 경우,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지대 안에 머무르려고 합니다. 불확실한 선택에 비한다면, 현실에 안주하면 잠깐의 보장은 어느정도 될테니까요. 그러나,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위험에 대처하는 힘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즉 안전지대 바깥으로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만한 용기를 가질 수 있는가?" 라고 질문을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반면, "바깥은 위험하다고! 지금 편하면 그만이지!" 결국 그렇게 자신만의 벽을 쌓다보면, 이게 정말 곤란하지 않나 싶고요.

 

 영화는 스스로 병든 인간으로 위장하는 기술을 터득한 인류의 통쾌한 역전승으로 마무리 됩니다. 또한 인류의 지적 유산과 예리한 통찰력이 거둔 승리이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가진 아이디어가 정말로 그토록 막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여전히 혹자들은 "인류는 소수의 탁월한 영감을 가진 사람들이 이끈다"고 보는 시점도 있습니다. 상상하는 것들을 현실로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이 보여주는 놀라움이지요. 저는 지금도 간혹 어디에서나 원하는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니, 이미 유비쿼터스 세상 안에 발을 담그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 인류의 많은 정보들이 공간에 쌓여가고 있겠구나 우려하기도 하고요. "누가, 무엇을, 얼마나, 검색하는지" 우리는 벌써 분석되고 있으며, 또한 이 정보들을 토대로 계속해서 마케팅과 광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살게 될테니까요.)

 

 이제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어쩌면 영화 속 제리 처럼, 관찰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며, 지나치게 위험에 뛰어드는 무모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파울로 코엘료의 글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다면,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말을 다르게 써보면, 제리에게 딱 어울릴 말이 되겠지요. "어제의 처참한 모습이, 오늘도 계속 된다면, 나는 잘못 살고 있는 건지도 몰라, 나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움직이겠어."

 

 2천억이 들어간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변화"의 영감을 얻어내려고 한다면 무리수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리는 보기 드물게 멋진 포스를 보여주었고, 태연하게 당당히 좀비를 향해 걸어오는 장면이 소름 돋을 만큼 선명했습니다. 그 당당함의 원천은 "가능성을 시험해 보는 태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을 이루어 보려는 끈기"를 갖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의 변화와 당당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월드워Z 이야기 였습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