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안녕 다정한 사람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7. 23:56

 소설가 김훈에서 부터, 젊은 피 장기하까지, 열 명의 여행기가 담겨 있는 책 "안녕 다정한 사람" 이야기 입니다. 사실 지인이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책이라면서 하도 흥미롭게 보고 있길래, 저도 관심을 가지고 늦게나마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에 등장하는 가수 이적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너무 감동적으로 읽었던 대목은 뜻밖에도 이병률 시인의 에스토니아 및 핀란드 여행기였는데, 정말 신선했습니다. 아,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싶었으니까요. 먼저 소개해보자면요.

 

 가령 이 동네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국적인 성가대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40여명이 합창 연습을 하는데요. 대회라면서, 놀랍게도 정작 지휘자는 "좋은 결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12월에 이렇게 모여서 연습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고마운 일이 아니냐" 라고 말할 뿐입니다. 이 엄청난 여유에 저는 경이로운 감정까지 듭니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별로 이상한 일도 아닐 겁니다. 북유럽, 그 중 핀란드의 경우 학교를 "기초학력수준에 미달하는 학생이 몇 명밖에 없다"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동네는 1등, 2등이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다 같이 모여서 일정 수준을 이루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고, 행복하다 라고 생각하는 가치관. 아, 이건 좀 부럽기도 하네요. 하하.

 

 저자 : 은희경,이명세,이병률,백영옥,김훈 등저 / 출판사 : 달

 출간 : 2012년 11월 09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356쪽

 

 

 게다가 핀란드 교육은 몸을 움직여 뇌를 열어놓으라는 의미에서 0교시나 1교시에 체육이나 놀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아직 준비되지도 않은 애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식주입을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저로써는 여전히 볼 때마다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수영을 하기 전에 준비운동을 해야 하듯이, 공부를 하기 전에도 먼저 몸을 움직인다는 발상은 충분히 한 번 음미해보면 좋겠다 싶었고요.

 

 현지의 화가에게 영감에 대해서 묻자, 쉰 살의 예술가가 답변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정말 달달했습니다. "신은 항상 보고 있어요. 그러면서 노력하고 바라는 이에게 영감도 주죠. 영감이란 건 무의식적으로 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주지는 않아요. 메마른 땅에 아무나 데려다놓았을 때 그 사람이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요. 누군가는 메마른 땅, 척박한 환경에서도 영감을 얻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갑니다. 노력하고 바라는 삶을 산다는게 얼마나 근사한 모습인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게으름에 취해서, 노력을 외면한다거나, 아예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으며, 그냥 덧없이 나이만 들어갈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럴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이게 뭐람, 이렇게 밀려오는 허무함이란!! 어쩌면, 냉정하게 비춰보면, 수확이 없는 건, 씨를 뿌리지 않았고, 물을 충분히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이 들자, 문득 부끄러워졌습니다. 다시 말해, 영감이란 노력하고 바라는 삶에 선물처럼 다가오는 셈입니다.

 

 한편 에스토니아의 수도 - 탈린의 어느 공원에서, 소년 소녀들이 모여 음료수 병에 알코올을 담아 당당히 마시며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 밝은 데서 감행하는 똘똘한 행동들은 완전 귀하게 보이며, 소박하고 당당하니 건강하다" 입니다. 음, 반대로 생각해보면, 확실히 어두침침한데서 자신들의 아지트를 만들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에 비한다면, 때로는 "존재함을 드러냄"이 더 유쾌하고 건강할 수 있겠구나 하는 역설적 상상도 듭니다. 밝은 일탈, 건강한 일탈도 있겠구나 싶었고요.

 

 뜬금없지만 책을 읽고난 후, 저는 잠을 자다가 "홍콩"에 다녀오는 꿈을 꾸었습니다. 물론 소설가 백영옥의 홍콩 여행기가 실려있긴 했지만, 왜 하필 아름다운 해변 대신에, 홍콩 이미지가 남아있었을까 싶어서, 저는 서둘러 홍콩 이야기를 다시 읽어내려 갑니다.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핑크 돌고래" 이야기 입니다. 핑크 돌고래처럼, 세상에 실재하지 않을 것 같은데, 정작 경이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저는 꿈에서라도 그 핑크 돌고래를 만나보고 싶었던 걸까요. 하하.

 

 여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겠지요, 저는 여행기를 읽으면서, 어딘가 멀리 떠난다는 행위를 통해,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광경을 마음에 담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핑크 돌고래를 만나며 신성한 기분이 들고, 혹자는 정말 보고 싶었던 공연을 보면서 창조적인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또한 소설가 김훈은 열대밀림을 관찰하며, 자연은 "작용으로 가득차서 늘 바쁘고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라고 표현하고, 무력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임을 말합니다. 저 먼 곳의 원전사고나, 가까운 곳 강의 녹조 현상을 생각해보면, 자연 위에 서려던 인간이 오히려 "역공"을 당하고 있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운 환초의 낙원, 미크로네시아는 2차대전 막바지에 지옥으로 돌변하는데, 낙원과 지옥이 본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는 김훈의 통찰은 대단한 무게가 느껴집니다. 천혜의 좋은 지형은, 훌륭한 해군기지로 알맞았고, 그래서 2차대전 말기 일본은 이곳에 연합함대 사령부 모항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미해군의 대규모 폭격. 일본 군함 39척이 침몰해 갔고, 죽은 군인들의 시체가 바다를 뒤엎습니다. 물고기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몇 년동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훗날 일본인들은 이 곳에 조형물을 세우고 난세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써놓았지만, 결국 희생자들의 죽음을 "헌신으로 미화" 했고, 가해자들은 그 뻔뻔스런 단어 뒤에 숨어 있었다는 김훈의 표현은 정곡을 푹 찌릅니다.

 

 정말 예쁜 울트라마린블루 해안, 그리고 바다 깊숙한 곳 군함의 잔해, 뻔뻔한 합리화로 죽음의 미화 작업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느낌들이 부조리하게 함께 담겨 있는 것이 미크로네시아가 가진 하나의 진실이라니, 문득 마음 한 켠이 서늘해집니다. 인간과 세계의 야만성은 그렇게 전개되었고, 어쩐지 "인간의 욕망도 덧없음"을 알려주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결국 바다를 물들이는 것은 정교한 군함이 아니고, 저마다 무늬가 다른, 하늘의 별보다도 더 다양한 생김새의, 발랄한 물고기 였고요.

 

 지금까지 두서없이 밝은 이야기와 어두운 이야기를 함께 소개했습니다. 리뷰를 마치며, 결국 인공적이고 만들어진 것은 무력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은 하늘을 날고, 바다 속을 잠행하지만, 결코 새들의 자유로움과 물고기의 다양함을 따라가진 못하겠지요. 대부분 정해진 곳을 향해서 움직이는 인공도구에 비해서, 살아있는 것들은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것도 차이라면 차이겠고요.

 

 우리의 정신이 인공물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당당하게 행동해 나간다면, 그것만큼 시원한 일이 있을까 싶네요. 화학조미료로 음식을 감칠맛 있게 위장할 수 있지만, 이것이 건강에 해로운 것은 뻔한 일이지요. 마찬가지로 인위적 세계나 만들어진 세계 속에서 즐겁게 산다고 위장할 수 있지만, 그런 자기합리화가 "자아"를 병들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가수 이적은 "가상현실이 현실과 행복하게 끌어안는 장면을, 우리는 어쩌면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라고 흥미롭게 썼습니다. 만들어진 과거, 위장된 현실을 볼 때가 많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는 과거의 부정이나 파괴 대신에, 리터치를 고안해 내고, 완전히 새로운 장면을 창조하며, 상상이 현실을 껴안기도 합니다.

 

 요즘은 진실이 천대받기에, 억지로 스토리를 만들고, 조작된 스토리를 말하고, 볼품없는 진실은 바라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누가 진실을 알겠냐 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나고보면 결국 스스로가 진실 위에 서 있을 때, 비로소 웃음이 찾아오는 듯 합니다. 가면만 쓰고 살다가는, 진짜 나는 숨을 쉬지 못할테니까요. 늦게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어디일까, 질문을 던지고 숨을 내쉬어보는 생생함을 되찾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인생은 심심하다고 투덜대기 보다는 생생하다고 감동하는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