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상업의 발달을 살펴보는 문서입니다. 우선 복습겸 해서, 조선 전기의 상인들을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들이 있었을까요. 국가에서 허가를 받은 후, 장사를 하는 관허 상인들이 있었지요. 관허 상인에는 - 종로에서 활동하던 시전상인, 또 장시가 열리면 장사하는 보부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리학의 나라 조선이었기에 "검약"을 중시했고, "자급자족형 경제"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상업 발달은 상대적으로 빠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파는 행위가 별로 활성화 되지 않았고요. 여기까지가 조선 전기의 풍경이라면요.
양란을 거치며 조선 후기가 되면, 생산력이 대폭 증가하고~ 농민층도 분화되잖아요. 생산력이 늘어났기에, 잉여물도 많이 생기고, 이제 농민들은 내다팔기 위해서 농사를 짓기도 하고요. 자연히 거래가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천천히 생각해봅시다. 내가 지금 돈을 잔뜩 마련했어요. 그런데 정작 살 물건이 없다면, 곤란하겠죠.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의 발전이라고 함은,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상업을 바라보는 생각이 달라지고, 상업에 변화가 있음 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상품들을 교환해주는 "매개체", 중간다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바로 주도적인 상인들이 활발히 나타난다는 거지요! 확 줄여 말하자면, 가치 중립적 말인데 - "이제 돈이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간다랄까요.
변화를 살펴봅시다. 조선 후기의 관허상인들도 변화를 맞이합니다, 시전상인들은 이제 물건을 더 팔기 위해서 경쟁을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왜냐고요? 지금 누구나 다 종로에 들어와서 물건을 팔아대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하하. 이 사람도 팔고, 저 사람도 팔고. 그래서 국가는 이참에 아예 시전상인들에게 파격적 혜택을 줍니다. 금난전권을 줘서, 아무나 와서 물건을 팔지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또한 육의전이라고 해서 국가가 일부 상점들을 대놓고 밀어주기도 하고요. 시전상인들은 독점권을 얻자, 당연히 정치자금을 밀어주었겠고요 >.<)! 정치와 장사의 공생관계랄까~
조선 후기가 되면, 처음에는 쌀과 옷감 등이 화폐기능을 하게 되었고, 교환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쌀로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물건을 팔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보부상 이라고 부르는데, 조선 후기가 되면 점점 증가하기 시작합니다. 지방에서 장시가 활성화 되다보니, 어떤 보부상들은 "ㄱ마을"에서 열심히 물건 팔다가, 며칠 후 "ㄴ마을"로 옮겨서 팔고, 이런 식으로 연속적으로 물건을 팔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후반이 되면, 장시가 전국에 1,000개나 되었다고 하니, 대단한 장사 활성화지요. 그래서 어떤 지역에는 거의 상설시장처럼 장이 매일 열리기도 합니다. 조선 후기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장시 발달!
한편, 조선 후기에는 또 한 집단의 "대형" 관허상인들이 등장합니다. 대동법과 직접 관련이 있는데요, 바로 특산품을 대거 구입하는 큰 손, "공인"의 등장입니다. 공인이 전국을 누비며 많은 물품을 휙휙 구매하였고, 이것은 상업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여하튼 이들 모두는 국가에서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는 관허상인들이고요.
그리고, 관허상만 있는게 아닙니다! 사적으로 물품을 파는 "사상(私商)"들도 각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합니다. 다양한 사상들이 있었습니다. 규모가 큰 거상이 있는가 하면, 아주 작은 규모의 영세상인(=난전)도 있었습니다. 상업이 활발해지며, 객주(중개업)와 여각(숙박업)이라는 상인도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면, 배에서 물품이 왕창 들어오면, 그 물품들을 소비자에게 연결해주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을 객주라고 합니다. 아, 오늘날로 치면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옥X, Gㅁ켓, 2번가, 같은 일들이 중개업이지요. 연결해주고 돈버는 일!
거상은 주요 지역에서 많은 활동을 했습니다. 의주에 만상, 평양에 유상, 개성에 송상(개성상인), 서울에 경강상인, 부산에 내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 많고, 물건 오고 가는 큰 지역에서는, 장사로 부를 쌓아나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개성에 있는 송상(개성상인)은 체크해둘만 합니다. 이들은 중개무역을 하면서 굉장한 부를 축적합니다. 인삼으로도 유명했고요. 심지어 송상은 전국에 일종의 체인점까지 둘 정도로 규모가 장난 아니게 컸습니다. 상호단결하며, 이익에 밝기로 유명한, 커다란 상인집단이 있었다는걸 꼭꼭 염두해 두어요~
국내에서 상업이 이렇게 발달하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대외 무역도 발달해 나갑니다. 더 재밌는 것은, 공적으로 인정받는 공무역(=개시) 뿐만 아니라, 몰래 하는 밀무역(=후시)도 규모가 아주 커지기 시작합니다. 후시, 그러니까 밀수를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이게 쉽지 않았습니다. 너무 많은 물품들이 계속 오고가자, 정부도 결국 어느정도 밀무역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보니 뭔가 자꾸 왔다갔다 하는게 느껴지나요. 그렇습니다. 어쨌든 계속해서 "교환!" 되고 있습니다. 장시가 많이 열리고, 보부상 뿐만 아니라, 이제 중개업자도 등장하고, 밀무역을 하는 상인집단도 생기고, 이름만 살짝 다르지 요즘의 모습과 비슷한 측면도 많습니다. 아, 그리고 교환에 필요한 화폐! 즉 조선 후기가 되면 "돈이 중요해지는구나!" 를 알 수 있습니다.
가령 조선 전기만 해도 장사로 큰 돈을 번다는게 양반들에게 "욕먹기 쉬운 행동, 사기꾼 같은 짓, 속이는 행위" 로 비춰진다면, 조선 후기는 많이 다릅니다. 이제 양반들까지도 이 "돈의 맛"을 알게 되고, "쩐"을 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 까짓껏 큰 돈을 만져야지! 라는 가치관의 변화는 생각보다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를테면, 관허상인들은 국가를 통치하는 이들에게 정치자금을 대주기 시작했고, 그러므로 권력집단이 일단 집권을 하고 있으면 부까지 달달하게 따라붙습니다. 그러다보니, 달콤한 권력을 더욱 놓기 싫어지고, 자꾸만 "영원한 집권"을 욕망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귀찮은 붕당 보다는, 일당 전제화 나아가 세도 정치로까지 변질되는 거지요. 계속 권력을 쥐고 있어야, 짭짤한 돈맛을 누릴 수 있던 겁니다. 즉 정치과 경제는 맞물려 들어가는 측면이 있다는 거! 이렇게 권력집단과 상인집단이 쿵짝을 맞추고 있다보니, 밀무역도 "에이 눈감아주지 뭐, 허락해주지 뭐" 라고 느슨해 질 수 밖에 없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아무래도 권력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과감히 밀어주는 집단을 외면하는 정책은 쓰기 힘듭니다. 오히려 감싸안거나, 지켜주려고 하지요.
끝으로, 이제 조선 후기로 오면 포구가 활성화 되는데, 서울의 경강상인들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렇게, 배를 이용해 상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선상"이라고 부릅니다. 즉, 각 지역의 포구들은 상업이 활발해 지고, 상업의 중심지 역할도 한다는 겁니다. 이렇듯 조선 전기에 비한다면 엄청나게 장사가 활발해지자, 드디어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합니다.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지금 배에서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 물건들이 내려지고 있는데, "우와~ 이거 옷감 몇개로 살 수 있어요?"라고 물어보며, 몇 kg의 쌀과 옷감을 들고 다닌다면, (물론 교환 자체는 가능하겠지만) 일단 많이 불편하잖아요. 그러다보니, 마침내! 상평통보 등의 동전 유통이 활성화 되기 시작합니다!
한편 이 무렵 "전황"이라는 웃지 못할 사태도 발생합니다. 부자들이 이제 창고에다가 굳이 쌀이나 옷감을 쌓을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이들은 많은 돈을 쌓아놓고서 유통시키지 않았습니다. 어휴, 그래서 돈이 씨가 말라버립니다. 예를 들어 정부에서 돈을 찍어내자, 곧 양반들의 창고에 쌓여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뭐가 문제였을까요? 조선 후기로 가면 조세의 금납화라고 해서 돈으로 세금을 내는데요. 아니, 낼 돈이 없어! 시중에 돈이 없어요!!! 돈이 귀해져서, 구하기가 힘들어지니, 좀 비참한 상황이 일어납니다.
세금을 내려면, 갖고 있는 현물을 팔아서라도 일단은 돈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화폐가치는 올라가고, 물가(물건가치)는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경제용어로 디플레이션이라고도 하는데, 어쨌든, 돈 없는 사람들 지금 난감합니다 -_-... 이제 쌀을 두배, 세배로 갖다바쳐서라도, 돈을 구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어쩌란 말인가요! 전황으로 인해 일부 부자들(및 지방관청)은 악덕 고리대금업까지 해가며 막대한 부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부자왈, 음, 돈 말이지? 별 수 없군, 내가 돈 좀 급히 빌려줄께, 대신 이자율은 39%알지? 싫으면 말든가~)
실제로 경제학에서도 물가가 계속 오르는 인플레이션보다, 더 무서운게, 이와 같이 물가가 계속 떨어지며, 돈이 유통되지 않는 (→경기 침체), 디플레이션이 더 위험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른바 최악의 끝판대장 디플레이션 이지요. 결과적으로 디플레이션이 되면, 투자가 얼어붙고, 실업이 늘어납니다. 이것만 봐도 엄청난 치명타! 그래서 때때로 경제 위기 때 보면, 돈을 시중에다가 그야말로 엄청나게 풀어대는 경우를 보게 되고요. 아궁, 인플레니 디플레니, 복잡한 소리는 치우고, 어쨌든 전황이 일어날 만큼, 이제 화폐가 유통되기 시작했구나! 부자들이 창고에 돈을 쌓는 "트렌드의 변화"가 있구나! 라고 이해해도 충분하겠네요. 하하. 한 줄 정리 - 전황은 돈이 돌지 않아서, 물가가 떨어지고, 돈이 귀해지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조선 후기 경제사도 이제 끝나가네요. 다음 문서에서 계속됩니다~ 아래부터는 여담입니다.
오늘의 영감은 - 올해 초부터 제가 꽤 유심히 관찰하는 게 하나 있는데, 개인금고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겁니다. 은행에 이제 돈을 맡겨도 이자도 별로 높지 않고, 게다가 돈을 숨겨놓고, 나 돈 없다고 우기면 충분히 탈세할 수도 있기 때문에, 고액자산가들이 꾸준히 개인금고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들의 최대 관심사가 돈을 잘 감추는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복잡한 심경이 듭니다. 자연히 고액화폐 이를테면 5만원권 유통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고 합니다. 그 돈들은 차곡차곡 누군가의 금고로~
이달 초에는 가능성은 높지 않다지만 한국도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보았습니다. 가계 소비가 줄고, 기업 투자가 줄고, 수요가 점점 부족해지면서, 실업자는 계속 늘어나는 상황. 이미 장기간 디플레이션 상황인 일본은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금고에 돈을 쌓아두고, "돈을 빌려줄테니, 이자는 39.99%" 하는 사람들은 저절로 부자가 되어가고, 생활을 위해서 저마다 빚을 안고 있는 가계 부채는 계속해서 올라가겠지요.
예나 지금이나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고생하는 계층은 어디일까를 생각해보면 분명합니다. 우리가 외환위기 크리를 맞고, 지금의 많은 중년세대들이 내려 앉고, 거리로 내몰린데다가, 이를 명분으로 해서 "노동자가 살려면 우선 기업이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 유연성이 확대돼야 한다" 는 취지로, 점점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되어 갔습니다. 실제로 2000~10년까지 기업소득은 매년 16% 가까운 성장을 해왔고요. 모 자동차 회사는 12년만에 영업이익이 1.3조에서 8.4조가 되었습니다. 이병훈 교수님은 서늘하게 표현했습니다. "외국에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인데, 우리나라에선 덫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다란 기업은 확실히 이제 살아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과연 노동자들은 살아났는지 주변을 살펴볼수록 전혀 모르겠습니다. 특히 비정규직이나 파견노동자 분들은 일하면서 생활고를 겪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마음 아픈일이지요.
계층이동이 날로 어려워지고, 사다리가 걷어차이고, 한 번 덫에 걸리면 헤어나오기 어려운 사회구조. 그래서 강자가 절대로 손해볼 일이 없는 구조. 오랜기간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은, 오늘날 정의롭지 못한 세력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역외 탈세가 세계 3위 (860조원) 에 해당하는 대국. 그렇게나 부가 많았던 한국, 그런데도 자살 공화국이 되고, 돈 때문에 패륜적 일들이 거의 매일 반복되는 모습. 결국 사회구조가 불평등하면, 약자들이 "갑"에게 계속 시달리는 것은 자명합니다. 돈이 신성해질수록, 사람이 미쳐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구조에 "문제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깊숙한 부패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맑고 강직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희망을 얻습니다. 청렴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간다면 좋겠습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아주 살기 힘든 세상이 되고 있음을 이해합니다. 그래도 끝까지 꼭꼭 힘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