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리뷰

시북(허지수) 2013. 8. 28. 16:09

 이제는 작가라고 불러야 겠지요. 손미나 누님의 신간 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를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읽기 쉽게 쓰는 매력 덕분에, 순식간에 끝장까지 도달해 버린 행복한 여행기 였습니다. 무엇보다 정직한 글쓰기를 추구했다는 점,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을 담았다는 게 특히 좋았습니다. 책에 소개된 신경숙 작가의 힘찬 표현, 열정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써보며 신나는 리뷰를 시작합니다.

 

 "소설의 경우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중에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열 명도 채 안 되고, 실제로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또 열명이 안 되지요. 그 적은 수에 낀다고 해도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장편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을 간절히 원하는가"

 

 저는 이 대목을 하루 종일 생각해볼만큼, 강력한 질문이었는데요. 평소 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게 있다면서 하나도 실행하지 않는가? 조금도 실행하지 않는가? 를 고민해 왔기 때문에, 더욱이 와닿았습니다. 결국 마음 먹은 것을 끝까지 해내는 사람은 겨우 0.01%에 불과한 건지도 모릅니다. 나의 바람? 그런 희망사항들은, 차라리 그냥 마음에만 묻어두다가,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합리화 시킨 후, 적당히 하루를 살아가는 것으로 타협해 버리지요. "그럴 시간이 어딨어!" 라고 변명해버리면, 과연 이대로 좋은 걸까요?

 

 저자 : 손미나 / 출판사 : 웅진지식하우스

 출간 : 2013년 07월 22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424쪽

 

 

 사실 하고 싶은게 있다는 것, 이루고 싶은게 있다는 것, 정말 소중한 감정입니다. 나는 슈퍼스타가 되겠어 같은 대단한 꿈이 아니더라도, 이번 주말에는 보고 싶었던 그 작품을 감상하겠어 같은 소소한 바람도 사실은 참 중요한 감정입니다. 손미나 누님은 인생의 전환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상을 너무 수평적으로만 보고 있었다는 것, 이제는 잠시 멈추어 서서 드릴로 땅속을 파고들듯 삶의 깊숙한 이면을 들여다볼 때가 되었다는 것" 이 지점에서 저는 주도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가 떠올랐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게 무슨 말인지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저는 청춘 시절에 나름대로 그럴싸한 "타인의 말, 타인의 시각"을 빌려와서 말하는데 상당히 능숙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지요. 좋은 친구란? "이슬처럼 곁에 있어서,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삶을 촉촉하게 만들어 주는 것" 이렇게 고대 현인들의 이야기를 빌려서 표현하기를 즐겨했습니다. 하루는 은사님이 참다 못해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음, 그 말도 좋은데, 정작 너의 생각은 뭔데? 타인의 등 뒤에 숨지 말고 네 정직한 생각을 말해줘!" 당황한 저는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깊이 있게 생각하고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후, 오래도록 저는 고민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개똥철학을 가지고, 열심히 이리저리 고민에 잠길 때가 있습니다. 좋게 포장한다면, 나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즘이야 좋은 친구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같이 밥먹고, 같이 영화보고, 생각을 나누는 사이." 라고 아주 현실적으로 표현합니다. 비록 별 거 아닌 모습이라도, 그런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는 여유를 조금은 가지게 된 셈입니다. 책에서는 다양한 프랑스 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들이 실려 있지만, 한국의 작가님들이 가지고 있는 분명한 자기 생각을 전해듣는 재미도 무척 특별했습니다. 다음은 김영하 작가의 돌직구!

 

 "바르고 단정한 생각들은 모두 버리고 진흙탕으로 뛰어들어야 해요. 이렇게 한 번 해봐요. 불도 끄고 전화도 끊고 몇 날 며칠을 그냥 침대에 누워 있어 봐요."

 

 이렇게 놀라운 도전을 해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나에게 말을 건다고 합니다. 이 순간, 며칠 전 보았던 하지현 선생님의 "잉여의 재발견" 이라는 대목이 겹쳐져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 선생님 왈, "한가로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의미나 목적의식, 효율성을 제쳐 두고 유람하듯이 시간을 보낼 때 새로운 창조와 혁신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요"

 

 이제 번뜩이는 영감을 언제 맛보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표현하렵니다. 뭐~ 그냥~ 잉여롭게 뒹굴다가도 '확' 하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놀랍고 황홀한 순간은 어디에서라도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제 경우, 무더운 여름날 지친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신나게 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아직 무엇인가 손대지도 않았음에도 마냥 들떠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그렇게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두세시간이 주는 기쁨이 좋기 때문입니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 후반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거실을 엿보는 즐거움도 참 컸습니다. 마치 공상 세계에 빠져 있는 청소년의 방 같다고 표현했는데, 온갖 장난감, 비디오 게임기와 대형 스크린, 수 많은 영화 DVD 등등... 저는 너무 동질감을 느껴서 자꾸만 웃음이 났는데, 저는 이런 철없는(?) 욕망이 참 좋습니다. 신나게 살고, 마음껏 상상하는 삶이란, 사실 얼마든지 가능한데도, 때때로 우리는 정해진 틀에 맞추느라 자신의 바람을 외면하고 사는게 아닌지, 최근 그런 반성이 정말 자주 들었습니다. 손미나 누님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언제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미치는 것을 두려워 말자!"

 

 리뷰의 마무리는 발상의 전환을 해주었던 대목을 소개합니다. 프랑스의 대안학교는 이제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느끼는가?" 다시 말해, 머리로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가슴으로 어떻게 느끼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생각을 말이나 글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어려울 수 있겠고, 더욱이 어딘지 모르게 거품이나 자랑이 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훨씬 스스로에게 정직한 영역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더욱 느낌을 잘 살려보자 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이 모습이 참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입을 맞추고, 같은 생각과 같은 느낌을 가진다는 건, 사실은 공포 영화에서나 봄직한 풍경입니다. 그런데 지난 날 저는 어느 기업의 주차장에 똑같이 제공된 검은색 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발을 맞춰왔고, 발전해 왔겠지요.

 

 그러나 앞으로는 노인들도 빨간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발랄한 사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마다 느낌이 다르고, 좋아하는 색이 다르고, 그 모습이 존중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남과 상관없이 내 속도로 인생길을 달리겠다는 소신과 철학" 그렇게 자기만의 삶을 즐겁게 누려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한없이 마음이 맑아져서 참 시원해집니다. 오늘 리뷰는 이쯤에서 짧막하게 마칩니다 :) 2013. 0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