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신분제의 동요 2편 - 누구나 양반, 그리고 향전!

시북(허지수) 2013. 9. 6. 16:31

 지난 문서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양반층이 분화되었고, 중인들이 신분상승 운동을 했다는 것을 살펴보았었지요. 그렇다면 이제 상민들, 이른바 일반 백성들의 경우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요? 우선 상민계층에서는 성공한 사람 - 경영형 부농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농사를 더 이상 짓지 못하는 농민들은, 어쩔 수 없이 노동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임노동자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조선 후기 사회, 전반적으로 "돈"이 중시 되는 경향이 있잖아요. 이런 시대에 큰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상민계층"에 등장했다는 겁니다! 이들이야말로 새로운 지위를 누리는 힘있는 계층이 될 수 있었고, 정부도 이들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를 들고 옵니다. 네, 납속책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속삭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돈이 급히 필요해, 그러니 돈 좀 내시오, 신분(혜택)을 줄께!!!"

 

 그러므로 경영형 부농들은 신분제를 흔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런 파격적인 변화는 소설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소설 양반전"에서는 부자가 한 번 양반이 되어보겠다고 이리저리 겪는 에피소드들이 들어있습니다. (※덧붙여 양반전은 조선 후기 정조 때, 박지원이 지었지요. 딱 맞아떨어지는 시기 아니겠어요.)

 

 어쨌든, 이들이 양반되는 방법은 뭐가 있었을까요? 먼저, 합법적인 방법을 살펴볼까요. 납속책으로 돈을 딱 내고, 이름을 딱 적으면~ 양반!!! 그런데, 이런 방법만 있는 건 아닙니다. 불법적인 방법도 등장합니다. "족보 위조!" 혹은 "족보 매입!"이 있습니다.

 

 위조야 뭐 거의 사기기술에 가깝다지만, 매입은요? 누가 그 좋은 양반 자리를 내다 판단 말인가요? 그런데, 이제 하루하루 힘겨운 잔반(몰락양반)들이 있잖아요. 이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 하는 수 없이 양반 족보를 팔자, 부농은 이제 자연스레 양반으로 신분 상승입니다! 소수였던 양반이었으나, 이제 "거의 누구나 양반"인 사회로 변해갔고, 그 흔적은 요즘에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령, 가벼운 접촉사고가 나면 언성을 높이면 등장하는 단골대사 "아니! 이 양반이!!!" 어, 그런데 과연 상대방이 양반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요? 사실은 조선 후기부터 누구나 양반이 되었으니까요. 하하.)

 

 음, 그리고, 납속책은 초기에는 비싸서 아무나 살 수 없었지만, 점점 가치가 내려가다보니, 나중에는 부농이 아니라, 심지어 임노동자도 신분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입장에서는 재정을 꾸준히 확보하는게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할인(!)해서라도 계속 팔아나갈 수 밖에 없었고요. 이쯤되면 거의 신분제 무너지기 직전! 이라고 봐야겠지요. 이렇게 중인과 상민까지도 대부분 양반층으로 진입해 갔습니다. 끝으로 이제 천민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여기서 잠깐, 재밌는 딜레마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문서에서 우리는 양반에게는 역이 면제된다는 특권이 있었음을 보았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인구의 대다수가 양반이 되어버리면, 역은...? 대체 역은...? 누가 짊어진단 말이에요...? 골치 아프던 정부는 천민, 특히 노비의 지위를 올려줍니다. 어떻게든 천민 계층의 지위를 올려서 상민으로 만들어야 했고, 이를 통해 역을 부담하고 세금을 납부하도록 유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파격적인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사례를 보면, 국가에서 관리하는 공노비는 해방 시켜버립니다~ 1801년에 있었던 일인데, 무려 6만여명의 공노비가 지금부터 상민이 되었습니다! 혜택은 또 있습니다! 오래도록 내려온 일천즉천법도 포기해 버립니다. (일천즉천은 부모 중 한 쪽이 천민이면, 아이는 무조건 천민이라는 법이었지요.) 이제는 법이 종모법으로 바뀌며, 어머니쪽 신분을 따르도록 해버립니다. 즉 이제 아빠-천민, 엄마-양인 이면, 아이는 천민이 아니고! 양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민에게는 신분세탁(?) 최후의 수단도 있습니다. 그냥 도망가기도 합니다 (...)

 

 왜냐하면, 이제 알거든요. 누구나 어느 정도 돈을 마련하고 납속책만 사게 되면, 양반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이쯤되면 신분제가 말그대로 뒤죽박죽이 되버렸는데요.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구체적 현장도 살펴봐야겠지요. 누구나 양반이 되었다는 건, 심각한 갈등을 담고 있다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여기 조선의 한 마을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예전에는 그래도 평화롭게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마을의 양반이나 향리 말을 사람들이 어느정도 잘 따르며, 이른바 성리학적인 예의도 찾아볼 수 있겠고요. "안녕하신가요, 양반 어르신!"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양반들의 권위는 밑바닥을 치고 있고, 너나 나나 "이 양반이!!!" 라며 싸우기도 하고, 부농들은 돈이 좀 있다보니 목에 힘을 주기도 하고... 마을은 이제 질서 대신에 충돌이 불가피해 집니다. 기품 있던 오래된(!) 양반들은 "구향"으로 불리는데, 지금 아무나 양반이 되고 있으니 정말 답답할 노릇입니다. 예전에는 꼬박꼬박 인사도 받고, 존경도 받고, 했겠지만... 요즘은 뭐~!!! "밥을 잘 먹고 다닙니까?" 라고 형편이 말이 아닌 잔반까지 있으니까요.

 

 한편, 납속책 등으로 새롭게 양반이 된 "신향" 들은 (요즘말로 최신 스포츠카를 타고 와서는, 살아있네~ 하면서~) 어쨌든 어깨에 딱 힘주면서, 새로운 신분을 즐기고 있는거 아니겠어요. 이러니까, 구향들이 볼 때, 이건 정말 "세상이 망해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갈등의 행태를 보여주고 있는 역사적 사료들도 참 많이 남아있고요.

 

 결국, 구향과 신향들이 정면으로 맞붙는 "향전(시골전쟁)" 까지 펼쳐집니다. 누가 마을의 통치자인지 확실하게 정해보자는 권력 투쟁이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시골에서 저게 뭔가 싶고, 상당히 풍자스럽게 보이겠지만, 당시 사람들로서는, 굉장히 진지했던 과도기적 고통이랄까요. 다시 말해, 구향들은 그야말로 세상이 심각하게 걱정스러웠고, 신향들은 돈도 없는 (그리고 이제 권력을 쥘 수도 없는) 향촌의 구세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거지요.

 

 자, 본격 향전의 실체까지 들어가 봅시다. 향촌의 지배구조부터 파악해 봅시다. 일단 중앙에서 파견되어 들어온 "수령(사또)"이 있습니다. 수령은 외부에서 왔으므로 향촌의 실제 속사정 까지는 완전히 알기 어려웠고, 수령을 보좌하는 "향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수령은 마을의 힘있는 "사족(양반)"을 감시하기도 했고요. 한마디로 서로를 감시하거나, 보좌하는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었는데요. 조선 후기는 이 균형이 흔들립니다.

 

 사족은 예로부터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몇 가지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향안(양반리스트), 향청(향촌관리), 향약(농민통제) 등을 통해서 마을의 어른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세상은 변했고, 새롭게 굴러들어오는 양반이 있습니다. 새로운 양반, 경영형 부농! 힘있는 신향의 등장입니다!

 

 냉정히 본다면, 경영형 부농 (신향) 입장에서는 호화롭게 살기까지, 마지막 관문이 몇 개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이제 향안(양반리스트)에다 이름을 올리고, 향청을 관리한다면, 앞으로는 부와 명예를 함께 누리는 호화로운 양반생활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이런 팽팽한 힘겨루기 상황에서, 사족(구향)과 부농(신향)이 싸운다면, 당연히 향촌을 담당하고 있는 수령이 나서서 중재를 하든, 뜯어말리든, 판결을 내리든 해야 할텐데요. 여기서 정말 흥미롭게도(!) 부농들이, 수령에게 "돈"을 찔러넣으며 강력한 로비를 해버립니다. 그러면 수령은 누구편이 되었을까요? 바로 부농들의 입장을 대변해 버리는겁니다!

 

 돈 받은 수령은 온갖 잡기술(!)을 보여줍니다. 뭐요? 향안? 양반리스트? 뭐 까짓꺼 불태워버리지!

 

 헐...!!! 그리고 새로 양반리스트 만든다며, 이제 거기에 부농들의 이름을 쏙~ 넣어줍니다.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부농과 수령, 그리고 향리까지 모두 한통속이 되버립니다. 오래도록 향촌을 지배해왔던 사족들은 이제 완전히 새됬어... 입장이 난처해지고 맙니다. 게다가 중앙에 아는 사람도 없고, 권력다툼에서 밀려나 버린 상황에서, 사족들은 안타깝게 무너져 갑니다. "돈" 앞에 구 양반 권력은 끝장나는 거 아니겠어요. 정조 때 개혁한다고, 향약까지 수령이 통제하게 되면서, 사족들은 가지고 있던 기반을 지금 다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제 향전의 결론 입니다. 수령(+향리)의 권한이 쑥쑥 올라가고요. 사족(지방 양반)의 권위는 슝~ 추락합니다.

 

 향촌이 이렇게까지 확 변하다보니, 당하던 사족은 마지막 카드를 꺼내듭니다. 뭐가 있었을까요? 다소 애처로운 풍경들이 몇몇 있습니다. 첫째, 내가 진짜 오래된 전통있는 양반이다!!! 라며,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나 사우, 서원을 직접 대거 설치합니다. 자연히 사당과 서원이 계속 늘어납니다. 마지막 지방 양반들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겠네요. 둘째, 족보의 학문 - 보학이 발달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전통 있는 족보라며, 이 내용을 가르치고, 외우도록 지시하는거지요. 우리는 공명첩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반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필사적 노력이지요! 끝으로, 이 무렵부터 마침내 동성촌(같은 성씨의 마을)도 늘어납니다. 사족끼리라도 어떻게든 뭉쳐서 살아야만, 좀 더 힘을 낼 수 있다는 안타까운 풍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뿌리와 혈통이 강조되다보니, 가족제도에서 가부장적인 모습이 발달합니다, 남성중심의 제도로 변해가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매번 족보가 어쩌구 족보타령을 하다보니, 장남이 중시되고, 여자가 외면받는 구조였지요. 17세기 이후부터는, 재산상속까지 장남위주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제사도 이제 돌아가면서 하지 않고, 장남이 관리하게 되었고요.

 

 호적까지도 남자를 우선으로 기록합니다. 고려시대~조선전기까지 호적은 나이순으로 등재되었는데, 이것까지 흔들리고 변해버릴만큼, 신분제 동요가 낳은 씁쓸한 풍경입니다. 심지어 집안에 딸만 있으면, 양자를 받아들이고, 이 사람을 통해 혈통을 잇게하고, 재산을 줘버리는 기막힌 풍경도 발생하고요. 즉 불평등하고, 여성차별적인 모습으로 변해간다랄까요. 가부장제의 일반화는, 급기야 남존여비를 합리화 하는 씁쓸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오늘날 집안의 기둥은 얼마든지 여자가 될 수 있으며, 또한 물론 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등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거!)

 

 여기까지 사회의 변화를 정리해 봅시다. 경제적 변화가 일어났고, 사회의 신분제가 거세게 흔들립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마을의 질서가 달라지고 향전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정조 사후 세도정치로 들어가면, 수령과 향리의 강화된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사라지고, 지방 양반이 꾸준히 약화되었습니다.

 

 견제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하잖아요. 이후, 수령과 향리에 의한 매관매직과 부패로 인해, 민생이 엉망이 되어가고, 조선 말이 되면 이른바 "민란의 모습"들이 펼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분제가 흔들리자, 심지어 가족제도까지 가부장적인 경향으로 가더라 까지 파악해 둔다면 되겠습니다. 여기까지 큰 진통을 살펴보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다 과정 아니겠어요. 갈등을 겪고, 모순이 폭발하고, 그렇게 굴러가면서, 또 다른 개혁이 촉발되고, 그렇게 사회는 변해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 후기 사회사는 다음 문서에서도 계속됩니다~

 

 오늘의 영감 - 이번 문서는 중간중간 자꾸 생각을 유도하는 대목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잠깐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20세기 중반 미국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로자 파크스의 작은 행동에서 촉발해서, 마침내 인종차별을 법적으로는 없애버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요 인물 중 하나인 마틴 루서 킹의 생각은 거기서 좀 더 나아갑니다.

 

"우리의 투쟁은, 진정한 평등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곧, 경제적 평등을 뜻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흑인과 백인이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불평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인종차별 없이 식당에서 그저 밥이나 먹을 수 있게 된다고 달라질 게 무언가? 우리에게 여전히 밥값이 없다면 말이다"

 

 확실히 우리는 많이 발전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게 얼마나 많은지를 보라는 조언도 많습니다. 좋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음, 이번 문서를 정리하면서 저는 이 말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과거의 상류층이 신분적인 귀족이었다면, 그리고 20세기의 상류층이 부를 가진 사람이었다면, 앞으로 21세기의 상류층은 문화 콘텐츠가 풍부한 사람, 문화체험이 다양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고민해 본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비싸지는 생필품으로 지출을 소모하느라, 간신히 삶을 버텨나간다면, 자연스럽게 계층간 문화 격차가 커지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서로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기묘한 모순이 발생할 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사회적 신분은 모두가 평등해졌고, 오늘날까지 경제적 평등은 계속해서 추구되고 있으며, 나아가 앞으로는 문화적 평등의 길도 추구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사람의 욕망은 그렇게 괴물같음에도, 사회가 발전하고 변화해 나갈 수 있다는 게 문득 너무 놀랍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신분제가 붕괴하기까지 격렬한 전쟁 같은 일이 있었듯이, 우리가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기를 희망해 봅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