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리뷰

시북(허지수) 2013. 9. 17. 12:59

 강신주 선생님의 글은 쓰라린 보약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달콤하게 포장되어 있지 않아서, 그대로 현실과 자신을 직면하게 해주고, 그렇게 제대로 일으켜 세우려는 의지가 가득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저자의 핵심키워드 두 개를 고른다면 정직함과 당당함으로 쓸 수 있을테고, 그 밑바탕에는 경쟁이나 이기심 대신,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영화가 재미 없었으면, 재미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힘, 저는 이게 참 좋았습니다.

 

 사람을 3대 4대 3으로 나눈다면, 언제나 내 편에 가까운 3에 대해서만 집착하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반대편인 3까지도 설득해 보려고 한다면 그것 역시도 지나친 오만함이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결국 중간의 4까지를 배려할 수 있는 따뜻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목은, 강신주 선생님이 그동안 자신의 세계관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위해서, 얼마나 오래도록 고민해 왔는가를 느끼게 합니다.

 

 저자 : 강신주,지승호 공저 / 출판사 : 시대의 창

 출간 : 2013년 05월 13일 / 가격 : 22,000원 / 페이지 : 600쪽

 

 

 의외로 별 거 아닌 대목에서 저는 큰 위로와 깨달음을 선물받았는데, 사람이라는게 하다보면 능숙해지는 측면이 있어서, 첫 번째 책이 형편없어 보일지라도, 한 다섯 권쯤 쓰게 되면, 괜찮은 책으로 구성되는 힘과 시야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작만 거창하게 떠들기 보다는, 일단 미약하게나마 출발하고, 계속 멈추지 않고 노력해 본다면, 그 나중은 한결 성숙한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점!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해야할 것은, 지나친 자괴감이 아니라, 오늘 좀 더 노력하는 태도가 훨씬 중요합니다.

 

 재밌는 대목도 있습니다. 나쁜 남자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강 선생님은, "노예니까, 상대방이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편하니까 그런 거에요." 라고 딱 잘라 이야기 해줍니다. 이건 정확하게 나쁜 정치가 인기를 끄는 이유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한 강 선생님은, 대체로 나쁜 남자들이 돈이 좀 있고, 어떤 자신감이 있다고 표현하셨는데, 나쁜 정치가 갖고 있는 특성과 딱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라,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쁜 남자에 당하지 않으려면~?

 

 "인간은 스스로가 굉장히 당당하고 자유로워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유롭다는 것은 자기가 스스로의 주인인 거잖아요. 스스로 자유로워야 자기를 긍정할 수 있고,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어요. 자유와 사랑은 결과적으로 같이 가는 거에요.(p.93)"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대해서, 결정권을 자꾸 남에게 미루고 떠넘기고 의지하려고 한다면, 곤란해 지는겁니다. "돈 좀 벌면 만나자" 라고 돈에 의지하는 순간, 우리가 어딘가의 노예가 될 수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볼만 합니다.

 

 도망갈 데가 있으면 안 되므로, 강력하게 기독교 비판을 하는 대목도 건강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물론, 저 역시 선생님께 아주 욕먹을 법한 기독교인이지만, 결국 예수의 정신이 사라지는 기독교, 어딘가에 의지해서 현실을 회피해버리는 종교가 되어서는 아주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현실을 망각하는 마취제로서 기능하기 보다는, 현실과 자신의 모습을 깨우칠 수 있는 길로 나가야 겠고요. 진리가 인간을 자유케 한다는 말에는 노예로 살기를 거부해야 함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을 살지 못하게 하고, 오늘만 참고 견디세요 라고 말하는 종교, 그래서 힘든 이를 달래고 위로하는 모습으로 위장된 오늘날 종교를 보고 만약 예수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당장 오늘 하루를 정신차리고 당당히 살아! 끝까지 정직하게 타인을 사랑하며 살아!" 라고 역설하지 않았을까 싶고요.

 

 "자본주의의 핵심은 종교성에 있어서,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다는 점" 이토록 뿌리 깊은 물신 신앙!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빡세게 고생하면 나중에 편하다" 라면서 끝없이 고생만 하다가 어느 날 죽음 앞에 서게 되는 것! 그 고생의 열매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기쁨과 안락함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지점까지, 우리는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을 끝없이 희생시키며, 늦게까지도 돈과 맞바꾸는 시간들, 그렇게 우리는 자유와 행복과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놓고 삶이 팍팍해지니 어쩔 수 없었어 라고 꼭 정당화까지 시켜놓고, 위로받을 곳, 힐링이 되는 지점을 찾아다니고... 확실히 안쓰러운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강신주 선생님의 이 대목은 제게 큰 떨림을 주었습니다. "원리를 맞다고 하는 경우, 창조한 것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진짜 아버지가 하나님 아버지라고 생각한다면, 전 세계가 다 가족인 거잖아요. 그렇다면 누구를 더 아껴야겠어요. 불우한 동생과 가난하고 다리 부러진 동생을 돌봐줘야 아버지가 좋아하실 거잖아요. 그게 기독교 정신이고 기독교의 파괴력인데, 그런데 그런 거 안 하잖아요." 오늘날 교회가 몰락하는 이유를 정말 탁월하게 담아냈습니다. 중요한 걸 내비두고, 쓸데없는 건물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이건 기독교가 아니고 개XX가 되는 놀림감이 되고 말았지요.

 

 자본주의 비판은 계속 되는데, 유교 자본주의를 언급한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가족이라는 논리로, 화려한 겉모습은 어떻든 간에 기득권을 공고히 하는 이데올로기" 라는 날선 이야기도 마음을 파고들어 옵니다. 우리가 남이 아니므로, 무한 충성을 요구하고, 궁극적으로 무한 착취 상태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비슷한 회사가족주의가 있는 일본은 오너가 다 책임지고, 90도로 사과하며, 말단병사의 똥구멍이라도 핥으려고 하는 것에 비해서, 우리는 사과 조차도 비서관 시켜서 하고, 아예 "내가 뭘 잘못했는데! 싫으면 나가라!" 며 적반하장으로 돌변한다는 모습이 있어서, 많이 슬프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니까, 한 배에 탔으므로, 내부고발자를 가차 없이 먼저 비난부터 해버리는 조폭 같은 문화, 그래서 패거리 속에 들어야 안심하는 모습, 이걸 깰 수 있는 강력한 개인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자기 개성으로 살아가는 삶, 방랑자가 되더라도 할 말을 할 수 있는 삶" 이 대목은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결국 의식의 각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유롭게 입으면 나도 그 때 자유에 동참하겠다고 하는데,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각자가 힘들더라도 먼저 하는 것, 그게 다수가 될 수 있을 때, 문화는 바뀌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소유가 늘어났다고 해서 진보했다고 착각하지 말고, 그 끝에 "자발적 복종"상태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되묻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강신주 선생님의 이야기는 보약과 같습니다. 쓰라린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부터 다시 삶을 바라보게 하는 것!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정직하게 내가 원하던 삶을 살아가는 것. 그 용기와 자유를 누구보다 응원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고통의 폭을 외면하려고 하지 말자, 오히려 고통의 폭을 절박하게 느껴보고,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해볼 힘을 길러본다면, 정말로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종하는 삶에서 벗어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 그런 고민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면, 강신주 선생님의 순수하고 맑은 정신을 만나본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리뷰는 이쯤에서 마칩니다. / 2013. 0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