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도둑들 (The Thieves, 2012)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16. 00:38

 시원하고 눈이 즐거운 액션 영화 도둑들에 대하여 리뷰를 남겨볼까 합니다. 물론, 아니! 신나는 오락영화에 굳이 리뷰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서도, 느낀 바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꽤나 달콤한 리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엄청나게 비싼, 수백억이 나가는 다이아몬드 하나를 놓고서, 잘 나가는 도둑들이 펼치는 이야기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데다가, 무지막하게 강력한 악역의 존재감, 또 팀내에서도 서로 간의 불신과 회복이 절묘하게 들어가 있어서, 즐기는 영화로서는 그야말로 충분히 A급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이기도 하고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비싼 물건은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수백억 짜리 다이아몬드의 소재지가 파악된다고 해도, 이걸 턴다는 건, 불가능을 향한 도전입니다. 그래서 도둑들의 대장격인 마카오박은 다양한 인물들과 함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나갑니다. 각자의 임무가 정해지고, 저마다 또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다이아몬드가 닿을 듯 말 듯 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영화 풍경 속으로 들어가봅니다.

 

 

 처음에 흥미로웠던 대목은, 강력한 목표 하나가 있으면, 참 잘 뭉쳐서 열심히 뛰는구나! 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스갯 유머지만, 공격적인 외계인이 출현하면, 전 세계가 하나로 뭉치고 힘을 모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도둑들은 각자의 전공분야를 치열하게 살리면서 거사를 추진해 나가는데요. 일본인 위장술을 쓰면서 정말로 사랑에 빠지는 중년의 "씹던껌"이 보여주는, 뜨겁고 달콤한 열정은 나름대로 감동적이기 까지 합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그렇게나 꽃피지 않던 애정의 바람이, 뒤늦게 불어닥치면서 "씹던껌"은 가슴 뛰는 쫄깃한 하루를 생생하게 맞이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잘생긴 미중년 첸과, 씹던껌의 초 낭만적 로맨스는 비극으로 끝나지만, 누가 봐도 참 멋진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도둑들에선, 가장 순수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나버린다는 것! 결국 앞으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전개가, 속이고 속는 장면들로 얽혀들어 갑니다. 어쨌든 초반의 하이라이트로는, 역시 첸의 훌륭한 포스를 칭찬하고 싶습니다. 첸 식의 표현을 빌린다면, 지금까지 힘든 하루를 견뎌왔다면, 바로 오늘 10년치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라며, 쿨함의 극치인 대사를 던지고 있습니다. 이건 정말 좋은 태도입니다. "당신 오늘 힘들었지, 내가 오늘 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를 위해 노력할께." 바꿔쓰니 확실히 좀 느끼함이 묻어나는데, 어쨌든;;; 이런 태도야 말로, 참 매력적인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는 중반부터 마카오박이 얼마나 영리한 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다이아몬드를 털다가, 지금 몽땅 다 잡혀들어가게 생겼고, (특히 여성들의 로망인 수현군은 폼잡다가 제대로 잡혀들어가는 굴욕을 당하고 맙니다. 조연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어필하려는 모습은 상당히 귀엽고 인상적이었고요) 재주는 도둑들이 부리고, 열매는 대장이 챙겨가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처럼 마카오박이 그려집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서서히 밝혀지지만 마카오박은 단지 다이아몬드만 원한게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나쁜놈 웨이홍을 만나고, 어렵게 복수를 펼쳐나가는 긴장감 넘치는 구도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접근해 본다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당하면서 살아왔음에도 꾸준히 목표를 새롭게 세우고,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마카오박의 패기와 근성에도 상당히 감탄하게 됩니다. 인생의 쓴맛 앞에서도, 나 아직 죽지 않았음을 철저히 보여주는 마카오박의 끈질긴 노력이 참 인상적이었네요.

 

 대도는 아니었다지만, 뽀빠이, 예니콜 등의 작은 도둑들 역시, 배신 속에서도, 쉽사리 포기하지 않으려는 근성이 있습니다. 한 명씩 살펴보면, 끝까지 다이아몬드를 움켜 쥐다가, 뒤늦게 깨져버린 현실을 알아차리는 뽀빠이의 처량한 신세는 "남을 괴롭혀놓고, 자기가 잘 될리 없다"는 권선징악 교훈에도 잘 들어맞습니다.

 

 뽀빠이는 영화 초반 콧수염을 멋내느라 붙였다가, 마카오박에게 곧바로 간파당하기도 하는데요. 그 정도로 눈치 빠르고 영리한 마카오박이 진품 다이아몬드를 발 밑에 두고도 몰랐다?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러므로 뽀빠이의 가장 큰 실수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보려고 했다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게 분명 진짜일꺼라는 확신은 참 어리석다는 것을 재치 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믿고 싶은 판타지 대신에, 현실적 판단을 내리는 것,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는, 늘씬한데다가,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예니콜! 한편, 정작 극중에서, 카지노 호텔 관리인이 미모의 예니콜을 놔두고, 요즘 대세인 수현군(!)을 덮치려 한다는 건, 그 반전이 신나게 유쾌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예니콜도, 앞서 언급한 뽀빠이와 거의 마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행복의 주인공이 결국 자기가 될 것이라는 안일한 착각",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 이 아가씨(?) 인생을 불운하게 만든게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나는 잘 될꺼야 라고 긍정하고 격려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세상이 나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갈꺼라고 착각해서는 참 곤란합니다. 솔직히 미모만큼은 예니콜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돌아갔다고 생각되는데요, 여하튼, 생각을 깊게 하지 않았고, 적당한 문구에 기대버리려는 습관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다는게 재밌었네요. "뭐, 일단 이렇게 결정해 놓으면, 어떻게든 잘 되겠지..." 라고 안일함에 기대며, 생각하기를 그만둬 버린다면, 어쩌면 훗날에 제대로 뒷목잡을 수 있습니다!!!

 

 의외로 제일 복받은 여성은, 팹시가 아닐까 합니다. 영화 첫 장면으로 잠깐 돌아가보면, 팹시는 다른 도둑들에 비해, 동료애 혹은 애정이 뛰어났습니다. 마카오박이 다친 것을 알자, 자신이 감옥에 들어갈 위험을 무릅쓰고 필사적으로 동료를 찾았고, 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깊은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물론 단순히 동료애 라기 보다는 애정의 감정으로도 읽을 수 있는데, 여하튼, 팹시의 진심어린 행동에 반한(!) 마카오박이, 영화 중반부터 끝까지 그녀를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이렇게 보면, 어쩌면 도둑들은 A급 오락영화로 위장한, 속 깊은 애정영화 인지도 모릅니다. 하하.

 

 이제 이쯤에서 리뷰를 정리하고 마칠까 합니다. 해마다 증가하는 사기사건에, 가까운 친구에게 조차 금전 문제로 트러블이 일어나기 쉬운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삶의 원칙을 한 번 생각해 둔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 나만이 마치 좋은 기회에 올라타 있다고 생각된다면, 때때로 엄격히 현실에 비춰보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욕심을 주체하지 못할 때,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집착할 때, 오히려 못된 타인에게 이용당할 수 있음을, 혹은 지름신에 의해 곤란을 겪을 수 있음을 생각해 볼 필요도 있겠고요. 마카오박처럼, 눈앞의 달콤함 보다는, 좀 더 멀리 생각하고 행동하는 여유로움이 있을 때,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영화 최후반 마카오박은 팹시를 눈앞에 두고서도, 정적 웨이홍의 낌새를 알아차리며, 팹시를 외면하는 차가운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냉정함이 결국 그와 그녀를 웃게 만들었지요. 마지막이 즐거우려면, 현실을 엄격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마카오박은 불가능해 보이던 도둑질을, 그 꿈을 이루었네요. 지금까지 신나게 달리는 영화 도둑들 이야기 였습니다.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