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0. 17. 19:22

 영화 화이를 보았습니다.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습니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절친한 동생녀석과 장시간 토론을 펼쳤습니다. 덕분에 이번 리뷰는 색다르게 써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가장 일반적인 시점인 주인공 화이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화이는 다섯 명의 아버지에 의해서 키워진 인간 입니다. 아빠가 다섯? 하여간, 화이에겐 현실이 조금 이상하긴 해도,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려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고교생이 된 화이는 큰 거부감 없이 삶을 받아들여 갔고, 다섯 명 아버지의 애정을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화이의 삶을 외부적 관점에서 행복이라 부르긴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그 나름대로는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총쏘는 실력은 엄청나고, 운전기술은 가히 환상적입니다. 다만, 말로 표현하는 의사소통 기술은 높지 않은데, 영화 초반 소변을 보고 있는 한 아버지를 툭 밀치는 "화이식 애정표현"이 그러합니다. 뭐, 여기까지는 꽤 평이하고 익숙하다면, 중반부터 영화는 손에 땀을 쥐는 강력한 전개감을 펼쳐나갑니다. 화이가, "질문"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진실이 다가오기 시작했으니까요!

 

 

 화이를 대하는 방식은 아버지마다 달랐습니다. 아빠 진성은, 외국으로 녀석을 보내, 화이가 손에 더러움을 묻히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빠 석태는 완전히 다르게 생각합니다. 화이가 누구보다 강해지고, 괴물이 되어서, 눌리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눈앞에 괴물이 보인다는 화이에게, 석태는 괴물이 있으면 똑바로 맞서보라고 가르치며, 화이를 거세게 몰아붙입니다. 그렇게 화이는 범죄에 가까워져 갑니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저는 화이가 평범하게 사는 것을 소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또래 여학생과 담소를 나누고, 주말 데이트를 즐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다시 말해 화이는 행복한 삶이 가능한, 가능성의 존재입니다. 화이에게,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죽이고, 더러움을 묻히며 괴물로 살아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분명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계속 엄격하게 요구하는 석태 앞에서, 화이는 마침내 제 손에 피를 묻혀가며, 한참을 혼돈 속에 괴로워 하게 됩니다. 영화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 괴물이 되어야 하는가?

 

 한 번 보면, 쾅하고 뇌리에 박혀서, 잘 잊혀지지 않는 니체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화 화이는, 이 질문을 넘어서 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아버지 석태의 삶은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뭐, 괴물? 내가 극단적으로 더러워지면, 괴물 따위는 보이지도 않아!

 

 자, 여기서,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어보며, 석태의 이야기로 잠깐 들어가볼까 합니다. 아빠 석태는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컸습니다. 거기서 그는 세상의 부조리를 두 눈으로 선명하게 목격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인처럼 살아가면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게다가 예쁜 아가씨까지 사귀어 갑니다. 그런데 나는 대체 이게 뭔가? 싶었던 겁니다. 그의 삶은 초라한데서 그치지 않고, 밤마다 혹은 혼자 있을 때마다 괴물에 대한 불안감으로 시달립니다. 그래서, 종교에도 매달려 보았습니다. 치열하게 기도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제가 석태라면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분명 저 행복한 친구에게는 신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신이 나에게는 뭐람? 신이라, 참 웃기는 양반일세. 안 그래요?"

 

 그 후, 석태는 완전히 비도덕적인 사람이 되었고, 그 후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나를 괴롭히던 괴물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세상 모든 것이 가볍게 여겨질 뿐, 그 어떤 상황에서도 표정의 동요가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런 석태에게 "화이"라는 존재야 말로,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이 녀석을 키우다보니, 키가 요만큼씩 쑥 자라고, 못하는 것도 없고, 머리도 똑똑한데...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화이도 괴물을 보고 괴로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빠는 이미 괴물을 없애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강해지면 됩니다. 그렇게 석태는 화이에게 각성을 요구합니다. 괴물을 삼키면 된다, 그렇게 괴물이 되면 간단하잖아!

 

 영화가 후반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석태의 진한 "부성애"의 모습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석태는, 좋아하던 여인에게 버림 받고, 그토록 아끼던 화이에게 버림 받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석태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더러운 삶을 살아왔지만, 그에게는 화이만 곁에 있다면, 아들만 곁에 있다면, 충분히 살아갈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석태는 화이를 끝끝내 쏘지 못합니다. 화이를 없애버리고, 혼자서 괴물로 살아가봐야, 아무런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화이의 존재는, 아빠들에게 기쁨과 설레임을 줍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아이는, 부모의 기쁨과 설레임입니다. 저는 이 건강한 시선이 참 깊숙하게 와닿았습니다. 성서의 표현을 빌린다면,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누가복음-공동번역)"

 

 석태는 화이에게 자유로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괴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몇 번이나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이제 괴물이 보여? 보이냐고?" 돌이켜보면, 아빠 진성이, 더러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화이에게 그려주고 싶었다면, 아빠 석태는, 괴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화이는 대담하게도 가장 먼저 아빠 진성을 쏩니다. 타인이 설계해주는 삶, 도망쳐서 적당히 살아가는 삶에 총알을 박아넣습니다.

 

 (덧붙여, 흥미롭게도 영화는 아빠들과 화이의 적대적 대립구도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아빠들은 화이를 끝까지 공격하지 않고, 감싸주고, 달래보려 하고, 함께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이쯤되면, 화이의 마성적인 매력! 이라고 써도 될 정도랄까요. 어쩐지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야가 쪼그라들 위험성이 있지만, 그와 반대로 아주 넓은 품을 가질 수 있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화이 스스로 설계한 삶은, 아빠 석태의 표현을 가져오면, "오늘은 화이가 좀 심한 것 같구나" 라고 언급될 만큼, 자신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을 그야말로 쓸어버립니다. 그렇게 화이는 괴물을 삼켰고, 총알을 날리고, 온몸에 상처를 내가며 (더럽혀져가며), 일반적이지 않은,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려 합니다. 소박한 삶이 허락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맞서서 살아가는 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참 좋았습니다. 또래 여학생에게 꿈을 이루어 줄 "가능성"을 선물하며, 자신은 조용히 사라져 갑니다. 또한,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기다리던 또 다른 아빠와 엄마"를 거대 자본으로 밀어붙이며, 죽음으로 밀어넣었던 숨은 권력에 대해서 정확하고 확실한 복수를 달성합니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강인한 삶을 이룬 화이. 괴물 같은 현실 앞에서도, 영민한 두뇌로,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비극이 발생한 건지 냉철하게 간파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네요.

 

 리뷰를 마치며, 어떤 신비를 보았던 기분이었습니다. 선한 부부는 화이를 위해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그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누가봐도 "진짜 사랑"의 모습입니다. 악한 아빠들 역시 화이를 위해서,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전해주며, 화이가 잘 커나가고, 당당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 표현 방식에 문제는 있지만, 그 진심 깊은 곳만큼은 확실히 "화이에 대한 깊은 애정" 이 묻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내던져 버리는 게, 오히려 "비인간의 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비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 낸, 괴물같은 비극적 풍경" 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인도, 악인도, 아이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하건만, 정작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주려 하지 않는다면, 그 이기심과 탐욕이 국가를 삼켜버리지는 않을지... 저는 정말이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많이 슬펐습니다. 여기까지 영화 화이 이야기 였습니다. 추신. 언제나 고마운 공부방 동생 L군의 풍부한 통찰 덕분에 이 리뷰를 즐겁게 써내려 갈 수 있었습니다. "L군! 나보다 더 뛰어난 매력적 견해 정말 고마웠어!" / 2013. 1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