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책

안티프래질 (Antifragile) 리뷰

시북(허지수) 2013. 11. 2. 16:11

 안티프래질은 한 마디로, 충격적인 책입니다. 직관에 반하는 내용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으며, 특유의 독특한 표현방식 덕분에 쉽게 읽히지도 않았습니다. 끙끙거리며, 마지막 무렵에 다가와서는, 이것을 실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해 보기도 했습니다. 핵심적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세상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무작위적인 사건을 통해서, 더욱 향상되어 가는 경우가 존재한다. 이것이 안티프래질이다!" 영어단어 프래질이 충격에 부서지기 쉬움을 의미한다면, 안티프래질은 충격에 더욱 화려하게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체가 직관에 반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려서 충격을 주게 되면, 손상이 갈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높은 건물에서 떨어뜨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안티프래질의 개념에 따르면, "어떤 것들은" 엄청난 충격을 견뎌내며 더 성장한다니!!! 물론 고통 자체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닐테지요. 즐겨 쓰는 표현을 가져오면, "고통은 인간을 생각하게 하고, 생각은 인간을 지혜롭게 만든다. 그리고 지혜는 인생을 견딜 만하게 해준다." 역으로 접근해, 지루한 인생의 해결법은 고통이 될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책을 결론부터 들춰보면 똑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저자 :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 안세민 역 / 출판사 : 와이즈베리

 출간 : 2013년 10월 01일 / 가격 : 28,000원 / 페이지 : 756쪽

 

 

 "생명체는 가변성으로부터 이익을 본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음식은 맛이 없다. 노력이 없는 성과는 의미가 없다. 슬픔이 없는 기쁨도 의미가 없다. 불확실성이 없는 확신도 마찬가지다." 조금 현대적으로 다시 써본다면, 로또 1등 같은 일들도 사실은 인생에서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매일 맛집투어를 다니다보면, 오히려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여전히 직관에 반하는 내용만을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표현으로는,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정도가 되겠지요. 언어적 표현은 이제 접어두고, 경험적 표현을 가져와야 겠습니다.

 

 오래 전, 저는 쓸데없을만큼 바쁘게 뛰어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도 요즘처럼 꽤나 쌀쌀하고 추웠던 겨울인걸로 기억합니다. 귀가 얼얼할만큼 날이 추웠고, 하필 또 식사를 놓쳐서, 배까지 고팠습니다! 약속시간에도 늦었습니다. 다른 생각도 전혀 나지 않고, "아이구, 힘들어 죽겠구만"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허겁지겁 겨우 약속장소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 때, 아주 미묘한 감정의 경험을 했습니다. 마치 천국에 온 것 같은 착각? 이었습니다. 따뜻한 온도가 느껴지는 장소와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차, 다행히도 환대해주는 사람들... 행복이 이렇게 신기하게 숨겨져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주 괴로운 날과 굉장한 위로가 함께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라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프래질의 세계에서는, 실수를 싫어하고 심지어 용납되지가 않습니다. 저는 여학생들이 서로 장난을 치다가 스마트폰이 툭 떨어진 광경을 보았습니다. 미세하게 액정에 금이 갔고, 피해를 입은(!) 학생은 불같이 화를 내다가, 속상해서 눈물까지 보이던 모습이었습니다. 스마트폰처럼 부숴지기 쉬운 물건은 떨어뜨리는 걸 혐오합니다.

 

 그런데 안티프래질의 세계에서는 "작은 실수를 사랑합니다" 오히려 실수들이 계속 반복됨으로서,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실수를 통해서, 정형화된 경험이 아니라, 색다른 경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범위에서 벗어난 삶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과장하자면,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알아둘 가치가 없다" 입니다. 물론, 제도권에서 벗어나 사이비 사기꾼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틀에서 벗어난 생각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예컨대 스티브 잡스의 황당한 주장인, "(고객이 볼 수 없더라도) 스마트폰의 내부까지도 미학적으로 만들고 싶다" 같은 이야기 입니다. 장인정신은 안티프래질과 가까운 느낌인데, 알아차리기 곤란한 곳까지도 정성을 들이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엄청나게 많은 짐이 들어가는, 여행용 가방에 작은 바퀴가 달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동이 훨씬 편해지는 것을 생각해 보라며, 이처럼 미세한 변화가 핵심일 수 있음을 고민하게 만듭니다.

 

 워낙에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여러 군데에서 통찰을 얻을 수 있겠지만,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책과 문서의 "가치를 논하는 기준"이었습니다. 저자는, 오래된 것일수록 좋은 것이다, 라고 간단히 정리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라는 무지막지한 변수 앞에서, 조잡한 책들은 모두 쓸려서 사라지게 (부숴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살아남은 책들은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 무렵에 고전 읽기를 시도해볼까 많이 고민하고 있었기에, 분명한 답을 얻었습니다. 명쾌한 YES! 입니다. 오래된 자료 속에서, 오히려 통찰의 다이아몬드가 들어있다는 유용한 힌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칠면조가 되지 말자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마치면 좋겠네요. 우리식으로 좀 바꿔 써본다면, 통구이 치킨이 되지 말자? 어느 날, 닭이 깨닫습니다. 매일 매일 좋은 음식이 나오고 있다니, 이 얼마나 즐겁고 좋은가, 그리고 예측을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좋은 일이 일어났으니, 앞으로도 즐거운 날이 계속될꺼야!!! 나쁜 증거는 어디에도 없잖아! 분석이 끝난 다음 날, 통통한 닭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의 파도 앞에서, 통구이 치킨으로 변했다는 슬픈(?) 이야기 입니다. 참으로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이제까지 증거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찮을꺼라고 판단하면,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일본의 원전도, 강진에 대비해서 설계되었지만, "본 적도 없는 강진"이 등장하자 모든 게 악몽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생존의 전략은 무엇인가요? "효율과 최적화" 대신에 "여분"을 추구할 것을 대안으로 말합니다. 최적의 답이 아니라, 선택지를 하나 더 갖고 있다면, 삶을 다르게 그려나갈 수 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직업을 가지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소개합니다. 또한 1년에 60일만 글을 쓰고, 나머지 300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200편이나 소설을 썼던 조르주 심농 같은 작가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비효율로 느껴지겠지만, 여분이 갖춰진 삶은 그토록 에너지를 몰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 역시도 짧은 시간동안 집중해서 일하고, 나머지는 맑은 정신을 회복할 때까지 그냥 충분히 쉰다고 합니다.

 

 세계관의 균열이 느껴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하나만이라도 열심히 해나가자", "새로운 정보를 계속 배워보자", 가 제 생각의 주된 중심축이었습니다. 오랜 정보 속에, 오히려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 라는 생각은 많은 고민 끝에 간신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만을 추구하다가 이것이 불현듯 답없는 통구이 치킨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분을 갖춰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대 데이트로 친다면, 멋진 옷이 두 벌이 있는 경우가 훨씬 유리하고, 인생으로 친다면 일 만큼이나, 취미의 영역이 있는게 훨씬 즐겁다는 느낌입니다.

 

 마치며, 저는 정말로 최적화 라는 말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안티프래질은 다른 말로, "여분의 중요성", "비정규성의 힘" 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령 원전을 "본 적도 없는 강진"까지 대비한다며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충격에 대한 여분을 두었다면, 비극은 훨씬 줄었겠지요. 일어난 적이 없다며, 앞으로 괜찮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은, 미래를 낙관하며 아무것도 대비하지 않는 삶은 통구이 치킨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작은 실패를 반복해가면서, 충격에 대한 내성을 기르며, 하나의 여분을 더 두는 삶이 된다면 한결 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올인이라는 말은 참 낭만적이고 멋있게 들립니다. 때로는 균형을 추구한다는 말 역시도 안정감 넘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미래를 알 수 없는 오늘을 즐겁게 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여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많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성공적인 부자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실패해가며, 엄청난 결과를 이룰 것인가! 그 점을 오래도록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소화하기에 역량부족이었지만, 정말 많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 2013. 1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