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평등사회로의 이행 1부 - 인간 자유가 확대되는 장면들

시북(허지수) 2014. 1. 21. 01:38

 분명한 불평등이 존재했던 신분제 사회가, 균열이 발생하고, 결국 깨어져 나가는 과정을 이번 문서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겠지요? 당연합니다! 게다가 역시 복습적인 측면이라서, 전혀 어렵지도 않아요! 당장 출발해 봅시다. "역사는 전진하였고, 인간 자유는 확대되어 나간다." 라는 말만 들어도 설레는 것 같아요. 하하.

 

 기본적으로, 신분제가 해체되는 과정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자유권이 향상되고, 또한 보장되어 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절로 인권이 좋아진 것은 아니고, 굴곡도 있고, 투쟁도 있고, 사건도 있기 마련입니다. 단지, 역사적 흐름만큼은 "선명하게 점차 발전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점"이 신기하고 또 놀라운 거 아니겠어요.

 

 신분제가 법적으로 폐지되기까지, 그 배경을 이해해보고 파악하는 것이 주축이 될 것이므로, 이번 문서는 출발점을 1801년부터 잡아볼께요. 배경을 천천히 그리고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입니다. 1801년, 순조 임금 때인데, 공노비 해방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나처럼 질문을 던져봅시다. 왜? 대체 왜 그랬을까요? 심심해서? 그냥? 에이, 그런 건 아니겠지요. 조선 후기가 되면, 신분 구조에 많은 변화가 발생합니다. 양반이 어떻게 된다고요? 네! 정답! 양반이 늘어나잖아요. 우리 정말 공부 열심히 한 거 같아요. 하하 :)

 

 이렇게 조선 후기로 올수록 양반이 점차 늘어나고, 상민과 노비의 숫자는 감소합니다. 이 수치는 점점 어마어마해져서, 양반인구가 거의 80%까지 치솟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어요. 한 마디로, 대부분 다 양반이에요. 누구나 양반을 하기까지, 다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납속책, 공명첩, 족보매입, 족보위조 등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서, 많은 사람들이 양반층으로 올라가 버립니다. 오리지널 양반이 아닌, 자연스럽게 짝퉁 양반이 증가했고, 양반을 풍자한 소설도 유행하고 했습니다. 그러면, 문제점도 있었을테지요.

 

 이 상태에서는, 세금을 내야하는 사람들이 확 줄어버리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원래 양반은 군역을 면제 받는 등의 특권이 있었는데, 지금 다 양반이고, 다 세금 안 내면, 국가가 정말 곤란한 상황에 처합니다. 누군가는 세금을 내야하니까, 부득이하게 결정된 것이, "그래, 공노비를 상민으로 격상시켜주고, 세금을 걷!" 였습니다. 어떤가요. 1801년 공노비 해방 사건의 배경을 보면, 조금 애처로운(?) 국가경제의 어려운 속사정이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개항 이후로 바로 들어와서, 1882년이 되면, 모든 계층에게 관직을 개방합니다. 이번에도 왜?를 던져봅시다. 이제까지 관직을 주로 독점하던 계층은 어디였을까요? 뭐, 법적으로는 상민도 과거시험을 칠 수 있습니다만, 어쨌든 먹고 살기 바쁜 상민이 관직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양반이 관직을 주로 차지했고, 고위직에서는 양반의 관직독점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대체로 일반적인 조선의 모습이었다면,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이런 흐름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당시 초기 개화파들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박규수는 양반입니다만) 여러 중인들의 활약도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통역관이였던 오경석, 의사였던 유홍기 같이 유능하고 똑똑한 인물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서구문물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훨씬 열려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고, 따라서 이들이 나라의 요직에 들어가서 재능을 펼치고, 활약할 길이 펼쳐진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중요한 자리에 오르기에는 "중인 출신" 이라는 사회적 벽이 만만찮게 부딪히고 맙니다. 그렇지만 개항기 달라지는 사회분위기는 계속 이들의 요직 진출을 막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그 결과, "1882년, 그래 고위 관직을 꼭 양반만 할 필요야 없지. 이들도 중직을 맡을 수 있지" 라는 생각의 변화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어쩐지 흐름이 달라지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2년 후,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자, 요구는 더욱 거세집니다. 유행어를 빌리자면, 그냥 돌직구 나오는 거에요. "신분제 폐지하라!" 라고 주장하며, 놀라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개화파 사람들의 생각은 좀 더 자유로워진 사회를 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 혹시나, 오해하면 안 됩니다. 신분제 폐지를 주장했을 뿐,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신분제 폐지의 실현은 좀 더 뒤로 늦춰지고 맙니다.

 

 또한 흥미롭게 봐야할 대목이 있다면, 1886년에는 노비 세습제가 폐지 됩니다. 이게 무슨말인지는 조금 꼼꼼하고 정확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점에선, 노비제도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노비의 세습만큼은 폐지 되는겁니다. 자자, 구체적인 예를 들어 봅시다. 지금까지는, 부모가 노비인 경우, 자식의 신분도 저절로 세습되어서 노비가 되었어요. 음, 자식은 아마 부모님을 괜히 원망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1886년부터는 이걸 막아버리겠다는 겁니다. 설령 부모는 계속 노비신분일지라도, 자식만큼은 세습 폐지이므로 노비가 아니다! 라는 점. 사실 이 대목은 크나큰 발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계속 이렇게 진행되면, 점점 노비의 숫자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비록 여전히 노비는 존재한다고 해도, 그게 대를 이어 세습되지는 않으니까요. 따라서, 점차 신분제를 없애가려는 하나의 중요한 단계로도 생각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근대사회 이전까지, 노비에 대한 생각은, 다소 엄격히 말하자면, "말을 하고 일을 하는 재산. 혹은 사고 파는 존재" 로 인식(취급)되었기 때문에, 노비에 대해서는 자유권이나 인권 같은 개념이 전혀 보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노비라는 존재가, 드디어 역사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인상적인 장면이라 하겠습니다. 이럴 때 보면, 사람은 제법 근사하고, 멋있는 존재 아니겠어요. "거기 타인, 너도 나만큼 충분히 소중해!", "당신의 인생은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이런, 손발이 다 오글거린다고요... 죄송합니다! 하하.

 

 자, 여기까지 노비가 사라져가는 장면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한 발 떨어져, 역사적으로 접근해 본다면, 수 천년간 존재해 왔던 노비. 그러나, 우리 세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노비. 이렇게 놓고 볼 때, 역사란 너무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수 천년동안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시스템에, 균열이 발생하고,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점.

 

 그렇다면, "무엇을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지?" 처럼, 생존 및 개인에 대한 질문들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수 있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와 같은 사회적인 질문들 역시 의미있는 거 아닐까 싶어요.

 

 이제 하이라이트 입니다. 1894년이 되었습니다. 딱, 120년 전의 그 갑오년이네요! 거대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었지요! 먼저 동학농민운동부터 볼께요. 여기에서도 신분제 폐지를 주장한다는 거 잊으면 안 됩니다. 다만, 주장에 그쳤을 뿐,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나며, 신분제 폐지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잠깐만 한 번 되짚어 봅시다. 10여년 전, 1884년 갑신정변 때만 해도, 신분제를 폐지하라는 주장은, 어쩐지 황당하고, 말이 안 된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괜히 "급진"개화파라는 이름까지 붙었겠어요. 그러나, 불과 10년만에, 이 요구가 점점 거세어졌고, 결국 신분제 폐지는 이어지는 1894년 갑오개혁에서 마침내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울림과 통찰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ㅇㅇ를 없애야 합니다!" 혹은 "ㅇㅇ을 만들어야 합니다!" 라고 어떤 화두(주제)가 주어졌을 때, 우리의 반응에 대해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말도 안 되는 망상 같은 이야기" 라고 단정지을 것이 아니라, 어? 미래에는 이런 현실이 일어날 수도 있겠네! 라고 상상해 본다면, 어쩌면 그것이 앞으로의 우리 인생을 다르게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되지는 않을까요?

 

 또한 그 원칙으로는, 인간의 기본권, 인간 자유의 확대로 전진한다는 점, 이걸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바라는 더 나은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려보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누구나, 자유롭게, 이런 말들은 가슴 뛰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불과 120년 전만해도 여학생이 학교 간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고, 그리고 후에 신여성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또한 수십년 전만 해도 여학생이 고등교육 기회에서 은근히 차별받는 일도 있었지만, 요즈음은 뭐 정말 똑똑하고 당당한 여성들이 참 많잖아요. 그죠. 누구나, 자유롭게, 치열하게 노력하고 부딪혀서, 자신의 꿈에 다가가는 모습, 저는 그것이야말로 인생에 대한 예의이자, 존재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어떻게 해서 법적으로 폐지되는가요? 역시 1894년입니다만, 갑오-을미 개혁을 거치면서, 신분제는 법적으로 폐지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와우! 갑오개혁 때, 신분제가 폐지된다는 이야기, 한 3-4번쯤 했으니까, 이제 잊어먹지 않을껍니다!

 

 그건 그렇고, 몇 가지만 더 살펴봐요. 과부들의 재가를 허용하며, 조혼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잘 기억해 둡시다. 생각해보면 다소 재밌긴 한데요, 보세요. "남자들은 재혼하고, 장가 다시 가면서, 그럼, 왜 여자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거에요?" 다 같은 사람인데 말이에요.

 

 물론, 지금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만큼 그 당시엔 이렇게 남녀평등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하고, 어려웠던 생각이라는 거에요. 어쩌면, 남들과 다르게 생각했다고, "이 정신 나간 XX, 매장시켜버려!" 라는 말을 들었을지도 몰라요. 덧붙여, 을미개혁 때는, 소학교령을 통해서 드디어 여학생들도 학교에 다니게 되는 길이 열립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과부재가허용, 조혼금지, 소학교령은, 여권의 신장(여성 권리의 상승)을 의미하는 내용입니다.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소수자들의 의견을 "말도 안 된다"며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되는거 아닐까요. 대세라는 흐름에 편승한 채로, 소수의 의견을 가볍게 흘려 넘기기 보다는, 한 번쯤은 타인의 의견에 귀를 귀울여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쿠, 벌써, 분량이 이렇게나... 이쯤에서 문서를 끊고, 2부에서 계속 됩니다. 이제 신분제는 폐지되었고요, 그 다음 이야기들이, 계속 됩니다 >.< 너무 신나게 달리느라... 헉, 새벽 3시 30분이군요 -_-;;;

 

 오늘의 영감 - 고백하자면, 저는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사고체계를 무척 부러워 합니다. 음, 몇 가지 사례로선,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혁신이란? 복잡한 거 다 없애버려, 좋은 생각 다 없애버려, 그러고도 남아 있는 것, 그게 혁신이야! 또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수도원 같은 곳을 보면 남자의 평균수명도 굉장히 길어져요. 왜냐하면, 같은 옷 입고, 절제된 생활 하고, 선택의 고민이 없는거에요. 열내고 싸울 일도 상대적으로 적고요. 그렇게, 초월적인 태도로 웃고 지내고, 스트레스에 덜 노출되면, 누구나 보다 오래 살게 된다는거에요.

 

 단순하게 살면, 의외로 행복하고, 의외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역설. 저는 이상하리만큼 이런 계통의 생각을 참 좋아합니다. 아마도 반성적인 학습효과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살아오면서, 수십가지의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놓고, 정작 하나도 치열하게 하지 않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수없이 좌절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많이 놀랐던 것은, 저 같은 사람을 주변에서 꽤 찾아볼 수 있다는 거 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생각 환기를 시켜야 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바이올린 하나, 사과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고 즐거워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역시 우리에게도 바이올린 처럼 나를 행복하게 하는 키워드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개그를 보태어 패러디 하자면, 저는 좋은 책 한 권, 맛있는 치킨 박스 하나면 절로 웃음이 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지인은 제발 책보는 컨셉은 때려치우고, 먹는 거만 좋아한다고 써라 면서 구박하겠지만...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말, 살면서 몇 번은 듣게 될테고, 자주 보게 될테지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 이 역시 한 번쯤은 듣게 될테고요. 나만 특별하다는 의식을 조금 덜어낼 수 있다면, 나도 별 수 없이 죽음 앞에 서는 존재라는 자각을 가질 수 있다면, 조금은 성장한 의식이겠지요. 이것이 왜 성장인가 하면, 인간이 죽음 앞에 설 수 밖에 없다면, 삶의 순간순간을 좀 더 가치있게, 의미있게 채우고 싶은 긍정의 욕망이 자리잡기 때문입니다.

 

 이번 문서는 꼭 위로를 담고 싶기에, 강상중 교수님의 표현을 빌려오며 마칩니다. "미래가 칙칙하더라도, 녹초가 될 때까지 자신을 몰아붙이지 말고, 그저... 그저... 마음이 명령하는 것을 담담하게 쌓아 나가고, 특별히 적극적인 일을 할 수 없어도, 지금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당신답다" 저는 끙끙거리며 발버둥을 쳤음에도, 상상했던 최선의 삶에 다가가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괜찮다는 이 이야기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존재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린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