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액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Days of Future Past,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4. 7. 9. 01:56

 며칠 전, 친구와 길을 걷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래의 내 모습이 저 멀리 어딘가에 존재해서, 그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한국이나 일본이나, 아니 어쩌면 세계 어디에나, 오늘날 많은 2030의 청춘들이 힘들어 하고, 괴로워 하는지도 모릅니다. 걱정도 없이, 따라서 생각도 없이 살아왔던, 저는 미래의 내가 존재한다면, 오늘날의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하, 무슨 초능력도 있는 것이 아니라서, 별달리 떠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른 새벽 6시 30분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 아가씨가 김어준 총수의 어록을 카톡으로 보내주었습니다. 밤새 고민 많던 그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황급히 메시지를 남겨주었는데, 다음과 같았습니다. "당장 행복해 져야 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적금처럼 나중에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중에 가서 행복해지자? 그 순간은 시간이 지나면 영원히 사라지는 거에요. 당장 행복해 져야 하는 거죠."

 

 저는 이 이야기를, 미래의 누군가가 보내준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순간이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면, 할 수 있는 선택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했습니다. 괴로워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달 무렵에 보았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였습니다.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후속편이었는데요. 선택을 다르게 한다면,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하는 대목이 아주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제작비 2천억의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것도 조금 이상하긴 하나, 오래전에 리뷰를 쓰던 방식대로 "선택"을 테마로 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좇아가 보았습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센티넬이라는 무시무시한 로봇이 인류를 초토화 시키고 있는, 절망적인 미래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엑스맨은 원래 능력자들의 이야기 아니겠어요? 우리네 주인공 일행들은 굉장히 매력적인 능력들이 많지만, 적으로 등장하는 센티넬은 압도적입니다. 그 크기대로, 거인의 무서움을 보여줍니다. 피할 수 없는 곳까지 밀려난 엑스맨 일행들. 이들은 5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초창기의 개발단계에 있던 센티넬을 파괴하려고 시도합니다. 관객과 함께 1973년으로 돌아가는 울버린.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힌트는 과연 어디에 있었던 걸까요?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세요

 

 생각해보면 살아가는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편안하거나 녹록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엑스맨 작품의 배경이 되는 2023년은 극한 까지 인류가 처참했다고 하지만, 1973년 역시도 쉬운 현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1973년으로 시간여행을 해보니까, 중요한 인물이자 리더격인, 찰스 교수가 지금 엄청난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찰스 교수의 뛰어난 초능력자 제자들은 베트남전에 끌려가서 전쟁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고, 교수 자신도 계속되는 약물 복용으로 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동생 같은 레이븐(미스틱)양도 이미 자신의 곁을 떠났습니다. 한마디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상황입니다. 아아 찰스 교수는 일어설 수 있는 걸까요? 절망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힘을 얻는단 말인가요?

 

 몸매가 환상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하하) 미스틱 양도, 지금 분노에 차 있습니다. 뛰어난 능력자들을 실험체로 다루는 군대의 비밀 조직에 단단히 뿔이 났습니다. 급기야, 실험 책임자를 반드시 찾아내서 암살해 버리려는 계획을 갖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과로서, 2023년의 어두운 현실이 펼쳐지는 겁니다. 저는 의문스러웠습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그 결과가 이토록 어둡다는 것이 무척이나 슬펐습니다. 초반부의 어두운 장면들을 통과하고 나면, 드디어 중반부터는 화려하게 반전되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예컨대, 잘 생겼다고 각광받는 퀵실버의 재치있고, 당당한 모습에 우리 모두 폭소를 터뜨리게 됩니다. 총탄이 날아들고 매우 긴급한 순간에도, 혼자 음악을 즐기면서 재치 있게 임무를 수행해 나가는 퀵실버. 한 사람의 든든한 동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모릅니다. 마침내 엑스맨들은 펜타콘까지 진입해서, 매그니토를 구해내는데 성공합니다! 각자의 능력이 절묘하게 발휘되면, 펜타콘 돌입도 가능하고, 정말이지 불가능한 일도 없을텐데 말이지요.

 

 저는 문득 엑스맨이, 사람들이 가진 재능의 어떤 모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능력은 없다지만, 저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사람들이 함께 모여있다면, 놀라운 일들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혼자서는 약해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절망할 때도 있지만, 결국 곁에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무척이나 용기를 내고, 힘을 낼 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찰스 교수가 재기하는 멋진 장면이 저는 제일 좋았습니다. 두 다리를 잃어도 좋고, 다시금 고통스러움 속에 빠져들지도 모르지만, 찰스 교수는 마침내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기로 합니다. 미스틱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그가 설득에 나서기까지 겪었던 심적인 갈등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야 말로, 저는 이번 작품이 보여주는 숨겨진 미덕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이 가지는 진짜 초능력이 있다면, 바로 이렇게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 아닐까요.

 

 먼 미래에서 찰스는 자기 자신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해 줍니다.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은 건 아니야" 말하자면, 지금 잠시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접어두고 방황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계속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은유적으로 쓴다면, 지금 비가 내려서 마음이 하염없이 무겁다고 하더라도, 분명히, 분명히 햇살 좋은 날도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잠시 길을 잃었다고 해서, 지금 헤매이고 있다고 해서, 실망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그저 힘내도록, 오늘을 버텨나가도록, 자신을 격려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일어선 찰스는 미래를 바꾸는 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억나는대로 떠올려 본다면 - 강물의 물줄기를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번 방향을 바꾼다고 해서는, 또 금세 원래대로 되돌아 오고 말테지. 그렇지만, 방향을 바꿔보려는 계속되는 선택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들이 모여서 방향은 분명히 변화될 수 있다고. - 이 매력적인 이야기는 우리를 체념에서 희망으로 안내합니다. 시도하고 실패했고, 도전하고 상처받고, 그런 일들 앞에서 결코 상심하지 말라고 격려해 줍니다. 계속 노력하는 삶을 살아갈 때, 미래는, 그리고 우리의 삶은 변화가능하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찰스의 설득으로, 미스틱이 마침내 자신의 마음을 바꾸었고, 그리하여 드디어 미래까지도 바꿀 수 있음을 지혜롭게 알려주며 막을 내립니다. 어쩌면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두 가지 일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다시 일어서려고 마음의 힘을 내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신념을 타인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상처받을 것을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건네보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찰스가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능력자인지도 모르나, 그가 있어서 미래를 바꿀 수 있었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힌트가 되지 않을까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접어두고, 자신의 나약함에 실망하지 않고, 한 번의 선택이 물거품이 되더라도, 두 번, 세 번은 도전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면, 딱 그만큼씩 우리는 보다 성숙해 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가야할 길을 잠시 잃어서 무척이나 괴로운 순간에 이 작품을 보았고,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소설가 카프카는 삶에 대해서 칼날 같은 표현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죄악의 근원이 되는 가장 큰 두가지는 조급증과 나태이다." 그리고, 한 때 분노와 조급증으로 미래를 어둡게 물들였던 미스틱도, 인생을 거의 포기한채 두 다리를 가지고서도 나태하게 살아가던 찰스 교수도, 결국엔 인생의 물줄기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우리가 나태해하지 말고,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저는 이것을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 2014. 07.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