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한국사

민족운동 1부 - 1910년대 국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시북(허지수) 2014. 10. 27. 14:35

 

 국권의 피탈부터 일제 경제적 침탈까지.... 아픈 역사를 배운다는 것,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왠지 화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이 어쨌든 일본에 의해 망했다고요? 그래서 어쩐지 자존심도 상하고 애써 쳐다보기 싫었던 것이 혹여 근현대사가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감히 이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음에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봅시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겠어" 라는 맑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우리가 기억하려 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올바름, 정의로움을 위해서 일제에 대놓고 맞서 싸웠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함께 배울 수 있어서 얼마나 또 놀랍고, 얼마나 또 다행인지요. 이제부터 우리는 우선 비밀결사로 모이고, 국외로 나가서 기지를 세우는 등, 싸워나가는 저항의 역사, 자랑스러운 선조들이 계셨던, 동시대의 가슴 울리는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일단 복습! 쉽게 머릿속에 떠오를 때까지는 자주 복습! 1910년대의 키워드 생각해 봅시다. 무단통치. 헌병경찰과 태형령, 즉결처분권. 칼차고 수업하는 무서운 분위기가 떠오르면 딩동댕 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유명한 토지조자사업 시도해서 엄청 뺏어나갔던 것 맞습니다. 경작권 부정했고요, 계약제로 농민들이 전락하더라. 나라 잃은 설움이란 아프더라... 맞습니다. 그러면 1920년대 까지 잠깐 복습해볼까요. 문화통치라고 해놓고 기만했던게 20년대의 모습입니다. 보통경찰이 되었지만 숫자는 오히려 증가했었고요. 조선어 과목 필수로 지정되었다는 것. 신문 창간되고 약간의 자치가 허용되는 모습이 있었네요. 1930년대부터는 민족말살통치의 모습이었고, 창씨개명하고, 황국신민이라고 우기고 있었군요. 다 뺏어가면서 이름뿐인 황국은 뭐하려고 갖다 붙였는지... 30년대 후반부터 일본이 전쟁의 시대가 된다는 것. 좋아요. 배경을 알고 있으면 우리가 이해하는데 한결 수월하기 때문에, 이 문서정리는 늘 배경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하.

 

 부담없이 이번 문서는 일종의 서론이에요. 그렇지만, 편지 첫 머리가 항상 설레이듯이 이번 문서에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번의 인생, 한 번의 청춘 어떻게 살 것인가? 무슨 꿈에 도전하고 걸어볼 것인가?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이번 문서에 담겨 있었으면 해요. 내가 보고 싶은 것,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이 어렵지요. 누군가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를 향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행복으로 여기던 사람이 있었다." 그 한 마디를 할 수 있어서 저는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단체들이 많이 등장할텐데요. "우와~ 이렇게 많았구나!" 라고 관점을 바꾸면 재밌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1910년대에는 헌병경찰이 쫙 깔려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활동하려면 역시 "비밀결사"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거! 또한, 국외에서는 나라를 비록 빼앗겼지만 독립을 하기 위해서 힘을 비축하자는 취지에서 국외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고 했다! [ 비밀결사와 국외기지 ] 이 두 가지가 이번 문서의 핵심 포인트 입니다. 여기까지가 1910년대 전반적인 배경이고요.

 

 일단 국내부터 보자고요. 구체적으로는, 북쪽 지역에서 주로 활약했던 단체들로, 기성단 이라고 있습니다. 대성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들었던 비밀조직이고요. 그 외에도 자립단, 송죽회(숭의여학교 중심)라는 단체들도 있습니다. 일일이 다 외우실 꺼 까지는 없고, 이런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거! 활동하는 단체들이 많다는게 중요합니다.

 

 서울에서도 1910년대 활동하는 조직으로는, 신민회가 있습니다. 비밀결사의 신민회는 특히 시험에 잘 나오는 중요한 단체이니까 기억해야 합니다. 1907년대에 조직되어서 1910년대까지도 존재합니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1911년 당시 데라우치 총독을 암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때 신민회가 혐의를 함께 덮어쓰면서 해체당합니다. (*실제로 데라우치 암살시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일제가 신민회를 노리고 조작된 사건인지에 대해서는 세세한 연구가 되어봐야 하겠지만, 여하튼 신민회가 105인 사건으로 인해서 해체가 되었더라 정도는 알아두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신민회는 해체되었어도, 회원들은 또 국외로 나가서 활동하는 등 여러가지 독립활동들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독립의군부라고 있습니다. 임병찬이라는 인물과 연결되어 있구요. 활동으로는 국권반환요구서를 제출합니다. 독립의군부는 시험에 종종 출제되는 이유가, 이 단체에서는 지향하던 바가 다시금 왕(=고종)을 앉히는 체제를 지향했다라는 점. ["복벽주의"] 라고 하는데, 아래와 반대되기 때문에 함께 시험에 나오기도 합니다. ㄱㄴㄷㄹㅁ...

 

 경상도 지역에서는 대한광복회라고 있어요. 박상진과 김좌진과 연관되어 있고요. 이 조직은 항일무장투쟁을 추구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후에 사관학교나, 직접 군사조직을 결성하려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친일 부호들의 자금을 뺏어서 독립을 추구하려고 하고 말이지요. 대한광복회는 특히 "공화정"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시험에 아주 잘 나와요. 일단은 색칠해 놓은 중요한 대목만 잘 기억해도, 시험에 따라 한 문제 잘 체크할 수 있겠지요. 아자!

 

 .

 

 여기까지가 교과서 안쪽의 시험용 국사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1910년대 그토록 엄숙하고 무시무시한 그 분위기 속에서 활발한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특별히 기억해 놓고 싶습니다. 김좌진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활동하다가, 이후에 청산리 전투, 국외로 건너가 대한독립군단, 신민부 결성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 나중에 다 배우게 될테니까 대충 김좌진 장군이 계속해서 싸워나갔다는 걸 이해할 수 있겠죠? 그 뿐이겠어요. 국외지역인 서간도 지역. 북간도 지역, 연해주지역, 상하이지역, 미주지역까지 싸움은 계속됩니다. (※참고로, 간도는 드넓은 만주 안에 있어요. 만주의 남쪽을 서간도라고, 만주의 동북쪽 지역을 북간도 라고 합니다~ 만주 바깥의 동쪽 끝부분은 연해주고요~)

 

 1910년대 국외 독립운동기지의 공통점이 있어요. 존경받는 지식인들이 넘어와서 기지를 세우는데요. 예를 하나 살펴볼까요. 신민회에서 넘어왔던 이씨 6형제 같은 경우에는 서울의 명동땅을 넓게 거느리던 갑부집안이었어요. 이제 망국이 되어 나라가 넘어가려고 하자, 이들 형제들이 모여서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를 열어서, 결단을 내립니다.

 

 좋다. 한 번의 젊음이다.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나라를 되찾는데 일생을 보내자 라는 거지요. 일제 강점기 시대 조선의 노블리스 오블리주(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 라고도 할 수 있겠죠. 우리가 앞서 쭉 배워왔습니다. 갑부에게 일제가 어떻게 했겠어요. 몇 대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수백억의 재산...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일제의 적극적인 친일파 양성정책에, 쉽게 편하게 창씨개명하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약자는 끌고 가고, 고생시키고, 경작권도 부정하는거 잘 봤잖아요. 그죠.

 

 그런데, 놀랍게도, 안락함과 돈보다는, 사서 고생을 하겠다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올바른 일을 벌이고 있는 거에요. 현대의 시가로 600억 ~ 800억 되는 돈을 모두 다 팔고, 국경을 넘어서 해외생활을 시작하는거에요. 그러면 그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요? 뜻을 이루었을까요. 그 많은 재산이 3년만에 국외에서 다 써버리게 되고요. 그럼에도 필요한 것들을 일일이 다 조달해 나갑니다. 식사는 형편없어 집니다. 옥수수, 그러니까 강냉이죽을 먹으면서 힘들게 버티며 살아가기도 했고요. 우리는 이렇게 국외 서간도 지역을 일궈내 보려고 했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일파들이 늘 내보이는 그럴듯한 변명 - 뭐 어때, 일제시대는 다 그랬다, 너라면 친일 안 했겠냐 - 라고 따지는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된 깨끗한 삶, 사랑하는 나라 앞에서 엄숙한 삶, 이 무엇인지를 진심으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선조 중에는 정말로 이씨 6형제 같은 이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것을 배울 수 있단 말이에요. 옥수수죽 먹으면서 식민지로 추락한 조국을 극복해 보겠다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지식인층"이라는 똑똑한 사람들이 기층 민중 뒤에 숨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었다며 묻어가려는 비겁한 태도를 우리는 경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워나가는 장면들을, 민족운동의 장면들을 천천히 배워나가 봅시다! 친일 대신에 저항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살펴봅시다.

 

 오늘의 영감 - 그로부터, 불과 백년이 흘렀습니다. 현실이 여전히 어렵고 곤란해 보일 때 많습니다. 그럴 때 마다 난 어쩔 수 없었어 라며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을 정면으로 바로 쳐다보며, 제대로 된 결정을 하는 사람들, 말하자면 꿈다운 꿈을 쫓는 사람들을, 우리는 오늘날도 여전히 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함부로, 시간을 함부로 보내면서, 왜 반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합리화부터 서두르고 있느냐 말입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도 계속 던지는 질문이기에, 함께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이회영이라는 사람. 한 번의 젊음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평생의 답을 한 번 보고 갈까 합니다. 5분. 이런 이야기들은 저의 인생을 움직이는 이야기들 입니다. 모바일에서는 동영상 주소로 가시면 나올꺼에요 ▶ http://youtu.be/Kti1_lISbj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