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문서에 이어지는 글인데, 드디어 좌우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1927년에 신간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짧지만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보니, 애국계몽단체인 신민회와 이름이 참 비슷하지요. 신민회는 비밀결사조직이었고요. 그에 비해서 신간회는 규모가 크고 조직적이라는 느낌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자, 먼저 신간회(1927)는 합법적인 조직이었고요, 일제의 문화통치라는 공간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려는 모임이었습니다, 각 지방을 다니며 강연을 하고, 야학을 운영하는 등 공개적이었고요. 전국에 지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사회주의자들의 조합운동을 살펴보면 노동자나 농민들과의 연결고리가 잘 되어 있었어요. 이런 기반들을 이제 얼마든지 민족주의 세력도 민족 의식을 가르치며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신간회가 보여주는 적극적인 모습들입니다.
하하, 교과서적으로 딱딱하게 설명하자면, 민족유일당이고 좌우 합작의 결과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좌에는 홍명희, 우에는 안재홍 같은 인물이 있었습니다. 아, 그리고 신간회하면 떠오르는 운동! 광주학생 항일운동(1929)에 진상조사단을 파견한다고 배운 바 있습니다. 네 이렇듯 이번에는 신간회에 의해 학생운동을 확산시키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분량도 적으니) 여기서 잠시 여담을 덧붙이면, 왼쪽과 오른쪽이 손을 잡았다니, 신간회의 의미라면, 지금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이 진보다, 자신이 보수다 라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 반대편과 손잡고 무엇인가 계획 한다고 하면 참 어려운 일 아니겠어요. 더 나아가 남과 북이 손잡고 무엇인가를 한다? 지금도 참으로 어렵단 말이지요. 그러므로, 생각해보면 만들어 지기 어려웠던 조직이 신간회 였다는 겁니다. 일제 강점기 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항일이 중요하다 라는 것. 따라서 선조들은 식민지 조국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하여 좌우 합작이 가능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야기로 돌아와 신간회는, 쟁의활동도 도움을 주고요, 교육사업에도 도움을 주고요, 전방위 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갔던 것입니다. 참, 신간회의 자매단체도 있었죠? 근우회 같은 경우 여성 해방운동을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신간회 역시도 일제강점기 앞에선 오래갈 수는 없었고 위기를 맞이하면, 1931년도에 해소되고 말았습니다. 해소라는 말이 생소할 수 있으니까 해체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본디 해소라는 것이 더 나은 조직을 위해서 발전적으로 기존 조직을 없애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만, 신간회 그 뒤에는 사실상 만들어지는 조직은 없었습니다.
해소까지 가게 된 까닭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먼저 지도부의 우경화 라는 내부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지난 문서에서 봤었듯이 신간회가 나온 배경이 자치론 때문이었거든요. 자치론자 - 일제 식민지배를 인정하자는 사람들 때문에, 열받아서 좌우가 손잡았던 것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이 신간회 지도부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자치론자들과의 제휴를 하려고 하니까 사회주의자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된다며 반발했던 것입니다. 또한 신간회는 민중대회를 개최하려고 했는데, 이 대회가 일제에 의해서 무산되고 맙니다. 신간회처럼 합법적이고, 전국적인 단체가 공개적으로 민중대회를 열려고 하자 일제는 이번에도 가만히 있질 않았던 겁니다.
외부적 요인은 무엇이 있었을까요, 살펴보면 안타깝게도 수년만에 외국의 상황이 정반대로 펼쳐지고 말았습니다. 국제적인 회의기구 코민테른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이제 민족주의자들과 손을 끊으라 라며 예전과는 입장이 다른 지시가 내려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우리만 민족주의자들과 손을 잡기가 부담스러워진거에요.
또한 당시 중국에서도 국공합작이 최종적으로 결렬되고 말았습니다. 안팎의 다양한 이유가 겹치면서 신간회는 4년만에 해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신간회에서 그럼 모든게 다 끝났느냐? 비록 그 조직은 없어졌다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손을 잡으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일제 타도가 아직 남아 있었으니까요. 그러면 이제 다음 문서부터는 본격적으로 항일무장 독립전쟁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힘내보도록 하고, 다음 문서에서 만나요~
오늘의 영감 - 분량이 적으니, 가벼운(?) 내용을 덧붙이려 합니다. 의사이자 문학가 맨더빌 이야기 입니다. 그의 시 한 소절 "벌거벗은 미덕은 국가가/ 영광 속에 살게 하지 않으리니./ 황금시대를 부활시키려는 자들은/ 정직을 위해서만큼 이익에도/ 자유로워야 하는 법" 미덕이 있는 시대가 아닌, 황금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이익에 민감해 지라고 오늘날 국가가 요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조한욱 선생님께서는 이 시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덕성을 주입시킨다는 것은 역으로 사악한 욕망이 그들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 사실은 부유한 사람도 사악한 욕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는 이익이든, 정직이든, 같은 사람으로서 바라보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한 것입니다. 너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정정당당한 의식이 갑의 횡포가 만연한 오늘날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외부에서 규정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함부로 동의할 필요는 없을테지요. 비록 그 사람이 지금은 가난할 수 있고, 약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 사람 자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나간다면, 여전히 오늘도 가능성의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거라 항상 생각합니다. 언제나 스스로를 힘껏 격려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이길 바라며. 힘겨운 날은 따뜻한 한 그릇의 식사로 얼마든지 다시 기운낼 수 있기를.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