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너무 한꺼번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천천히 중요한 대목을 잘 짚으면서 간다면, 눈에 띄는 각 시기별 특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꺼에요. 서론으로, 1930년대의 모습들은 교과서를 보면 눈에 띄는 저항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딘지 이상하지요. 1930년대의 국내는 뭔가 페이지가 비어있는 느낌이 들어요.
왜일까요? 바로 이 시기는 민족말살 통치시기 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악랄하게 우리를 괴롭혔던 시점이다 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활동을 밖에서 할 수가 없어요. 이를테면 전에 배웠던 1927년 공개단체 신간회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거에요. 따라서 나온다고 한다면, 국어분야나 역사분야, 사회주의자들의 비합법적 혁명지하투쟁 정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정도에요.
하여간, 교과서에는 비록 많이 보이진 않는다지만, 나름대로 문화분야와 불법인 지하분야에서 활동을 하면서 혹독한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감수하기도 했다는 것. 그러므로, 여전히 1930년대에도 활발한 저항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량이 적다고 해서, 1930년대 이후 국내는 다 친일입니까 식의 패배주의적인 역사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 시기에 친일 반민족행위자들 많이 증가하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친일의 행렬에 줄줄이 동참한 것은 아니다 라는 거 미리 언급하는거에요.
시험을 대비해서 미리 정리를 잠깐 해둘께요. 1930년대 국어분야에서는요, 조선어 학회가 있습니다. 역사분야에서는 사회경제사학, 진단학회와 같은 단체들이 있습니다. 브나로드 운동들도 있었다는 것. 사회주의자들은 이 시기에는 혁명적 지하조직으로서 불법이라는 굴레 속에서 활동했다 정도가 있습니다. 이걸 미리 언급하는 이유는 1930년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옳은 것은? 시험에 잘 나온단 말이에요. 뭐, 거의 단골로 나온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체크나 정리를 잘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1930년대 항일분위기와 함께 넣어두시면 좋습니다. 당연히, 조선어학회나 진단학회 등은 이어질 일제강점기 문화파트에서 자세하게 배우니까 지금은 이름만 언급하고 넘어가고, 계속해서 2부 순서, 지난 문서에 이어 국외 항일 독립 전쟁 살펴봐야겠죠. 서론 참 길었네요. 양해해 주세요. 하하.
어디보자, 3부 통합 운동을 했고요, 혁신의회와 국민부부터 이야기 하면 되겠네요. 이런 흐름들이 결코 1920년대에 끝난게 아니라 지금 1930년대까지 연결되어서 이야기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북만주지역 - 혁신의회의 모습을 봅시다. 이 전통을 계승해서, 북만주지역에 조직이 결성되는데, 바로 한국 독립당과 그 산하부대 한국 독립군이 있습니다. 한국 독립군을 이끌었던 핵심적 인물로는 지청천이라는 장군이 있습니다.
그러면, 1930년대의 여러 전투, 예컨대 쌍성보 전투, 대전자령 전투 같은 전투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1930년대 국외 저항의 가장 큰 특징은 한-중 연합작전이라는 것입니다. 왜 중요한가 하니, 1920년대 하면 사실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의 관계가 늘 우호적이지 못했어요.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은 한국인들이 계속 만주로 넘어오니까 자신들의 터전들을 잠식해 나간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고, 한국인들은 어차피 일본의 식민지 백성이니까 한국인들은 곧 일본사람이다 라는 경계의식도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지난 문서에서 배운 미쓰야 협약 때문에 독립군은 잡혀서 일본으로 넘겨질 수 있는 법령까지 있었단 말이에요. 따라서, 1920년대에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기 어려웠다는 건데요.
어라, 1930년대로 오면, 한국과 중국이 손을 잡고 연합작전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역사공부의 묘미 아니겠어요. 그러면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되었을까요. 그 답은 1931년에 일본이 일으킨 만주사변이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거에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해 옴으로서 일본은 중국의 적으로 인식되는 거에요.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1920년대 만주에서 무엇보다 일본과 적극적으로 맞서 싸웠던 한국인들, 아! 청산리 대첩! 그 나라 잃은 식민지 사람들이 이제는 중국인들 자신들과도 얼마든지 관계가 있는 사람이며, 같이 손을 잡아야 할 사람으로 다가온 것이에요. 일본이 노골적으로 침략야욕을 드러내자, 이제 오래도록 그 일본과 맞서 싸웠던 한국인들은 중국인들과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쉽지요. 잘 아시겠지요.
이러면서 1930년대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중국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또한 연합작전도 나오고 같이 움직이는 등의 직접적인 배경이 됩니다. 중국과 조선은 이제 힘을 합쳐 적국인 일본타도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1930년대 분위기라고 한다면 많이 다릅니다. 지난 번에 언급했었던 1920년대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는 연합작전이라 할 수 없지만, 쌍성보, 대전자령전투는 연합 작전인 거에요.
혁신 의회 이야기는 했고, 다음으로 남만주 지역에는 국민부가 있었습니다. 국민부의 정신을 계승해서, 1930년대 조선혁명당이 있습니다. 산하부대로 조선혁명군이 있고요. 대표적 인물로는 양세봉이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봉자 들어가는 세 분을 만나게 되실텐데요. 첫 번째 김원봉이고요 (의열단), 두 번째로 김두봉은 조선독립동맹의 중심적 인물이고요, 세 번째로는 양세봉이 있습니다. 쓰리봉입니다. 세 인물이 중요인물이네요.
양세봉이 이끌었던 전투가, 영릉가 전투와 흥경성 전투 입니다. 역시 한중 연합작전으로 일본군을 크게 물리칩니다. 참, 이러한 전투들은 1930년대 초에 전개가 되었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1932년 일본이 승리하다 보니까 1930년대부터는 슬슬 만주가 일본의 영향력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기에는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 되었음도 함께 알 수 있습니다. 계속 만주에서 일본과 싸우기만 할 순 없잖아요. 지원도 계속 받아야 할테고 여러가지 사정상 이제 많은 독립군들이 중국 관내로 만리장성 안쪽으로 대거 이동하였습니다. 물론, 계속 싸우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한줄로 정리하면, 만주사변이라는 사건으로 독립군들이 분산되고 있다는 정도를 참고로 알아두시면 되겠네요.
그러면 1930년대 중반 이후에는요? 한-중 연합작전의 일환으로서, 동북항일연군 (조선인들은 조국광복회) 으로서 끝까지 저항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보천보전투 (1937) 를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국내에 들어와서는 보천보라는 곳을 치고 나가기도 했던 사건을 말합니다. 특이하게도 김일성과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굉장히 크게 서술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남한에서는 아직 진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단계니까, 어쨌건 넘어가도록 합시다. 사료가 불명확한 것은 시험에 나올 가능성도 적어요. 하하. 일부러 색깔을 넣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 1930년대를 무대로 해서, 항일 독립 전쟁이 계속해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37년이 되면 중일전쟁이 펼쳐지면서 전쟁이 더 확산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독립군들이 소련과 중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일례로 김일성도 소련으로 넘어가고 그랬고요. 나중에 소련은 김일성을 앞세우는데,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겁니다.
자, 우리가 이제 실질적으로 초점을 맞출 부분은 1930년대 중반과 후반부터 독립운동은 어떠했는가, 중국 관내로 들어가서 조직들을 살펴보도록 해요. 다음 문서에서 조선의용대를 비롯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항일 독립을 위해서 우리는 여러 참변이라는 비극을 겪고도 결코 열기가 사그러들지 않아요!
오늘의 영감 - 오드리 햅번의 강한 어조의 이야기 하나 반사해 놓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불가능 (impossible) 이란 말은 I`m possible 나는 가능하다를 의미한다." 한 칸만 띄워도 단어가 매력적으로 바뀌지요. 우리 말도 아와 어가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평소에 긍정적인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고마워를 자주 쓰는 등의 태도가 어쩌면 삶을 더 멋진 곳으로 안내해 주는게 아닐까 종종 생각합니다.
아니, 좋은 일, 고마운 일이 없는데요? 불가능한 것들만 눈에 잘 보이는데요?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반드시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오늘도 마지막 시간까지 힘내시길 한결같이 응원하며.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