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을 다루고 있는 문서입니다. 먼저 배경으로, 세계적인 정세변화를 살펴보면,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요.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무너진거에요. 중국 국민당 장개석 부대에 맞서 싸웠던,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마오쩌둥(모택동)의 사회주의 세력들이 승리를 하게 되는겁니다. 그러면서 만들어 진게 중화인민공화국이에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이제 사회주의 체제로 변해버린거에요. 다시 말해, 대한민국 광복 이전의 중국의 모습과, 1949년도 이후의 중국은 전혀 다른 체제라는 것을 배경으로 이해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라니!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김일성과도 바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입장에서는 정말 큰 우군이 생긴거겠죠.
아니 게다가, 1950년이 되면 소련이 전쟁을 지원하게 됩니다. 북한은 차곡차곡 전쟁준비가 잘 되고 있는데, 남한 쪽에서는 다소 의외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남한은 미군이 상당부분 철수합니다. 고문단만 좀 남기고, 철수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고요. 또한 애치슨 선언을 발표합니다. 어떤 선언인가 하니, 동북아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라인은 일본까지다 라고 만들어 놓습니다. 38도선 라인 아래에 있던 남한이 개입 제외가 되어버린거에요. 극동방위선을 일본 위주로 구축해버리다니요... 이게 뭡니까. 이렇게 전개되고 있는 정세변화 속에서 김일성은 오판을 해버립니다. "남한을 살펴보니까 미국이 버렸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겁니다.
김일성은 소련 스탈린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무기만 후원해달라 우리가 남한을 집어삼키는 것이 가능하다. 순식간에 적화통일 가능하다고 판단이 들어간 것입니다. 이 일련의 과정이 맞물려 들어가면서, 드디어 6.25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1950년 6.25 전쟁 이야기를 시작해 봐야겠지요. 뭐, 미국의 입장에서는 남한이라는 땅이 시급하게 꼭 지켜야 할 그런 지역이라고는 판단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미국은 이 시점에서 북한이 전격적인 남침을 해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일단 전쟁이 시작되자 파죽지세로 북한이 밀고 내려옵니다. 낙동간 방어선까지 쭉 밀고 내려오는데요. 거기를 넘어서 무너졌으면 김일성 호언장담 말대로 될 뻔 했을 정도입니다. 전쟁 초기에는 적화통일 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런 긴급한 순간이 일어나자, 즉각적으로 유엔에서 이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하게 됩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라 라고 발표하게 되면서, 유엔군이 개입하게 됩니다.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던 북한에게 제동을 걸었던 것이 바로 유엔군이라 하겠지요. 특히 이 때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지요! 이 작전이 성공하면서 인천을 다시 되찾는 것에 성공하게 됩니다. 50년 9월달에, 서울까지 수복하는데 성공했고요.
북한 입장에서는 헉 허리가 끊겨버리는 거에요. 전쟁을 하면서 내륙 깊숙히 들어가 있었는데, 뒤돌아보니 이제 허리가 끊겨있다라는 것은, 인민군들의 퇴로가 막혀버린 상황입니다. 그 뿐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상황이 좋아지자, 우리나라 국군은 이승만의 지시에 의해서 38도선을 넘어서 북한쪽으로 밀고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 지금도 있지요. 우리가 38도 선을 넘어서 밀고 올라가기 시작한 날. 바로 10월 1일 국군의 날입니다. 어쨌건, 이렇게 되면서 남한이 훨씬 유리한 입장에 처해집니다. 어디까지 밀고 올라가는가 하니, 압록강-두만강 인근의 북한 거의 끝까지 쭉~ 올라가요. 이승만은 평양에 들어가서, 평양 주민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지요. 이쯤되니 대반전이네요 그죠. 이제 곧 마치 남한에 의한 통일을 눈앞에 두는 듯한 모습이잖아요.
아니, 그런데... 다음 해. 1951년 또다른 반전이 일어납니다. 중국이 6.25 전쟁에 개입합니다. 물론 중국의 입장에서는 1950년부터 이미 압록강을 건너와서 대비하고 있었다 라고 이야기는 합니다. 중국군은 유명한 인해전술을 사용합니다. 엄청난 인원수로 밀고 다시 내려오는 겁니다. 물론, 중국군들 같은 경우는 내전들 거치면서 유격전술에 대해서는 숙달된 사람들이었단 말이지요. 이런 군인들이 그것도 엄청난 숫자가 오고 있으니까 상대가 되질 않았어요. 1951년, 중국군과 북한군은 이참에 엄청나게 밀고 내려옵니다. 이번에도 38선을 넘어서 남한까지 무섭게 접근해 옵니다. 이 때,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는 사건, 이것을 1.4 후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또 곳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아이고... 정말이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다치고 있잖아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 시점에서 소련이 휴전을 제의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휴젼협상에 들어갑니다.
길고 긴 협상이 오고가는데요. 1953년까지 이어집니다. 38도선을 경계로 해서, 휴전이 거의 이루어지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이승만 정부는 휴전은 있을 수 없다고 반대를 합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1950년 한 때 북한을 거의 차지할 뻔 했었던 전쟁 아니었느냐, 여기서 휴전은 안 된다고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는 소련과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휴전협상을 깨기 위해서, 반공 포로를 석방시켜버립니다. 전쟁이 펼쳐지는 과정 속에서 포로들이 많이 잡혀 있었는데요. 예컨대 거제도에 있는 포로수용소의 포로들 중에서, "나는 사실 공산주의가 싫어요!" 라는 중국과 북한의 포로가 있다면, 이 반공포로들을 그냥 풀어줘 버리는 겁니다. 이 사건은 심지어 미국의 동의도 없이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사실 휴전협상이 2년이나 걸리면서 길어지는 이유가 바로 포로 문제였거든요. 포로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의견이 안 맞으니까 협상이 길어지고 있었어요. 미국은 포로들이 자신이 원하는 나라로 가게끔 자유롭게 풀어주자 라는 입장이었고요 (자유송환-미국). 소련은 그게 아니라 포로들은 참전했던 원래의 나라로 자동송환이 된다 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이렇게 미국 소련이 옥신각신 하고 있을 때, 이승만이 과감한 정치적 결단을 하는거죠. 앞서 본 것처럼, 공산주의 싫다는 반공 포로를 마음대로 석방해 버린 겁니다.
이렇게 되자 이승만이 제멋대로 하는 것에 열받은 미국은, 한국에 개입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전시작적권이 UN에 있었기 때문에, 휴전이야 어쨌든 1953년 7월 27일에 판문점에서 휴전 협정이 성사됨으로서, 약 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휴전으로 마무리되었고요. 미국은 정치적인 카드를 던진 이승만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우리가 남아서 남한을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게 됩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휴전 이후에 체결되는 모습까지 이어지게 되었고요. 주한미군이 이제 한국에 주둔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번 문서는 이렇게 하여 6.25 전쟁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남한은 군인과 민간인 각각 대략 백만명이나 사망, 부상, 실종되었습니다. 이처럼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리화 될 수 없으며, 명분을 갖춘 전쟁은 존재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전쟁이라는 과정 속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오늘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임을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영감 - 전쟁은 이제 타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타부는 금기시 하다라는 의미에요. 우리가 사람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를 현대에 와서 절대로 금기하듯, 전쟁도 마찬가지로 엄격하게 금기할 필요가 있겠지요. 힘이나 세력이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김일성의 판단을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오판이라고 표현하는 그 대목이 저는 참 좋습니다.
그러고보면, 살아가면서 오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이 싫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황하며 고민하며 이것저것 서투를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누구나 삶에 있어서는 햇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도 있고, 그늘도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지혜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늘이 있다는 것, 실패가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면 희망도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여전히 곁에 햇살이 있기 때문에 그늘이 만들어 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삶에 그늘이 있더라도, 이제부터의 인생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인생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일어날 수 있기를. 우울한 자신의 모습까지도 껴안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리뷰어 시북.
(※이 자료정리는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강의를 노트로 요약하고, 메모를 함께 쓴 것입니다. 개인적 용도로는, 공부방 등 에서 활동할 때, 보조 자료나 참고 자료, 혹은 글쓰기 영감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이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거기에 대한 일종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키워드 형태로 중요한 부분들은 나름대로 강조해 두었습니다. 크게 바라는 것은 없으며, 다만 짧게나마 영감의 시간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