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53 이탈리아의 명골키퍼 안젤로 페루치

시북(허지수) 2020. 10. 14. 12:53

 

 2회 연속 골키퍼 이야기 업데이트 중! 이 글은 2008년 초안을 작성했던 글입니다. 안젤로 페루치, 2007년 5월에 은퇴했던 이탈리아의 명골키퍼 페루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탈리아에는 명골키퍼가 참 많군요. 하하.

 

 프로필

 

 이름 : Angelo Peruzzi
 생년월일 : 1970년 2월 16일
 신장/체중 : 181cm / 88kg
 포지션 : GK
 국적 : 이탈리아
 국가대표 : 31시합
 주요기록 : 세리에 A 통산 478경기 476실점

 

 세계굴지의 골키퍼, 안젤로 페루치.

 

 페루치는 탄탄한 체격을 가졌습니다. 보기에는 약간 둔해보이는 인상도 줍니다만, 보기와는 전혀 다르게 발군의 반사신경과 민첩한 움직임을 자랑으로 하는 명골키퍼 입니다.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골키퍼 중에 한 명입니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워낙 뛰어난 골키퍼가 많았는데, 페루치가 만약 이탈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비록 이탈리아 국가대표 골키퍼로서 비운의 2인자 였으나, 그는 정말 끝까지 멋진 투혼을 발휘했던 숨겨진 명선수 랄까요. 뛰어난 클럽팀 활약을 보여주었던 페루치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안젤로 페루치의 출발은 AS로마에서 였습니다. 17세에 세리에 A 데뷔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나이도 어렸고, 주전 골키퍼로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없었기에 페루치는 잠시 베로나 팀에서 임대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91년 명문 유벤투스로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만에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주전골키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이제 1992년부터 유벤투스의 안방마님은 바로 안젤로 페루치였습니다.

 

 1992-93시즌 UEFA컵, 유벤투스는 결승에서 도르트문트를 3-1, 3-0 으로 합계 6-1 스코어로 완전히 압도하면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이 무렵부터 유벤투스는 슬슬 다시 한 번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1994-95시즌 유벤투스는 당당히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무려 9년만의 우승이었습니다. 그렇게 페루치 골키퍼는 세리에 A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되었습니다. 20대 중반, 페루치의 앞날은 한없이 밝아만 보였습니다. 이제 안젤로 페루치의 이름은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93년부터 5년동안 페루치는 출장 경기보다 실점 수가 더 적었습니다. 게다가 매우 안정적이었지요.

 

 1995-96시즌 챔피언스리그는 더욱 더 안젤로 페루치의 진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세리에 A 우승을 힘입어 유럽제패를 위해서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한 유벤투스는 조별리그에서 15득점 4실점의 훌륭한 성적으로 결승토너먼트에 진출합니다. 레알마드리드와의 진검승부 끝에 한 골 차이로 4강 진출! 그리고 4강전에서도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고 결승전까지 올라갑니다. 결승상대는 아약스!

 

 아약스는 작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었고, 떠오르는 최강자로 멤버 한 명, 한 명이 정말 훌륭했었습니다. 물러설 수 없는 우승팀을 가리는 승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유벤투스가 선제골을 넣으면서 기세골을 올렸으나, 아약스의 리트마넨이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가게 됩니다.

 

 유벤투스에는 오늘의 주인공 안젤로 페루치가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고, 상대팀의 유명선수 에드가 다비즈의 슛을 비롯해서 아약스의 PK를 무려 두 개나 막아냅니다. 결론은 4-2 유벤투스의 승리. 11년만에 유벤투스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었습니다. 이후에도 페루치는 꾸준하게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유벤투스의 뒷문을 탄탄하게 지켜주었고, 유벤투스는 이 시절 3번의 세리에 A 우승을 이룹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3년 연속으로 결승전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좋은 시절이었죠. 덕분에 페루치는 이제 세계가 인정하는 명골키퍼로 이름을 높였습니다.

 

 한편 1997년부터 세리에 A 에서는 최우수골키퍼를 선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수상의 주인공도 역시 이 당시 제일 잘 나가던 안젤로 페루치의 몫이었습니다. 1998년에도 페루치는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면서 2년 연속 최고의 골키퍼로 인정받습니다. (이후에는 주로 부폰이 받곤 했네요) 유벤투스의 90년대 황금기 멤버였던 페루치는 1999년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이적을 선택합니다. 1999년 인테르밀란을 거쳐서, 2000년 부터는 라치오에서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의문점이 있긴 하네요, 왜 A 매치 경기가 이렇게 작았던 걸까, 왜 국가대항전에서는 잘 나오지 못했던 것일까! 당대의 또 한 명의 유명한 이태리 골키퍼였던 파글리우카와 치열한 포지션 경쟁이 있었습니다. 1996년 유로에서는 페루치가 주전골키퍼로 활약 했고, 이에 힘입어 1998년 월드컵에서도 페루치가 주전골키퍼로 유력했었으나, 월드컵 직전에 잠깐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98년에는 대표팀에서 빠지게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운했던 일이었지요. 이후에는 부폰과 톨도 등의 성장으로 더 이상 그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탈리아에 너무 좋은 골키퍼가 많았습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안젤로 페루치는 국가대표로 100경기 이상 뛰었을지도 모릅니다 :) 뭐, 상상이죠!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라치오에 몸담게 된 페루치. 이제 30대... 사람들은 이제 페루치가 나이도 있고, 예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력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흔한 말로, 회춘을 했다고 표현할까요. 여전히 훌륭한 반사신경으로 라치오의 뒷문을 든든히 지켜줍니다. 7년동안 라치오의 주전골키퍼로 맹활약을 펼칩니다. 2004년 코파 이탈리아(컵대회)에서 라치오는 페루치의 큰 활약에 힘입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멋진 활약을 펼쳐가던 30대 중반의 페루치는 2004년 다시 한 번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부름을 받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요!

 

 2004년 유로, 2006년 월드컵에 이렇게 안젤로 페루치는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 때의 23명의 멤버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노장선수가 바로 안젤로 페루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영광의 월드컵 우승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부폰이라는 걸출한 골키퍼가 있었기에 페루치는 후보골키퍼 였습니다만, 부폰 외에도 이렇게 든든하고 멋진 골키퍼가 멤버로 있었다는 것 자체로 선수들에게는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2006-07시즌 안젤로 페루치는 AS로마와의 더비 경기 후,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서 시즌을 종료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역 은퇴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뛰었던 그에게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냈습니다. 2008년 1월,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2007년 세리에 A 최우수 골키퍼를 발표했습니다. 그 주인공은 부폰이 아닌 페루치였습니다! 1997, 1998, 그리고 2007년 이렇게 세 번의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면서 페루치는 멋지게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세리에 A 통산 478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를 기념하는 팬들도 상당합니다. 유튜브에서 안젤로 페루치의 영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 영상을 끝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8. 05. 12. 초안작성.

 2020. 10. 14.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