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51 핀란드의 축구전설, 야리 리트마넨

시북(허지수) 2020. 10. 12. 11:13

 

 축구를 좋아하는 한국사람이라면,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실력이 뛰어나고, 명성이 있다고 해도, 소속 국가가 축구약소국이라면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도 못하고, 월드컵이 그냥 바라보는 대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리트마넨도 핀란드의 "더 킹"으로 군림했던 축구전설이지만, 월드컵 한 번 참가해보지 못한 비운의 운명이었네요!

 

 프로필

 

 이름 : Jari Litmanen (야리 리트마넨)
 생년월일 : 1971년 2월 20일
 신장/체중 : 182cm / 81kg
 포지션 : FW / MF
 국적 : 핀란드
 국가대표 : 137시합 32득점 (2020년 기준 핀란드 최다 출장, 최다 골기록 보유)

 

 핀란드의 영웅, 리트마넨의 이야기.

 

 지난 번에 반 데 사르 이야기를 하면서, 아약스를 생각하다보니 역시 리트마넨의 이야기를 빼놓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걸렸습니다. 아약스 출신의 슈퍼스타 베르캄프가 화려한 아약스 생활을 뒤로 한 채, 빅클럽으로 떠나자, 그 커다란 공백을 매워준 스타가 바로 젊은 신예 야리 리트마넨이었지요. 우선 좀 더 과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어린 시절로 타임 머신~

 

 북유럽은 아무래도 동계 스포츠가 강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덩치가 좋았던 리트마넨은 또래 친구들과 함께 아이스하키를 즐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리트마넨은 아버지가 축구 선수였어요. 그러다보니 아이스하키 뿐만 아니라 축구를 접할 기회도 좀 더 많았고, 결국 10대 시절부터 축구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축구선수로 활약하게 되면서 그 재능은 꽃피게 되는데, 1990년 소속팀에서 14골을 넣으면서, 핀란드 최우수선수로 선정! 게다가 이미 19살 때부터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요. 핀란드의 각광받는 신예 에이스 였다고 하겠습니다.

 

 핀란드에서의 멋진 활약들도 있었고, 1992년 리트마넨은 네덜란드의 명문팀 아약스로 이적하게 됩니다. 당시 아약스는 특급 스트라이커 베르캄프가 인터밀란으로 떠났는데, 리트마넨은 이 빈 자리를 완벽히 매워주면서 새롭게 아약스에서 무서운 활약을 펼쳐나갔습니다. 30경기에 출장해서 26골을 작렬시키면서 득점왕을 차지! 팀도 리그우승을 차지합니다. 뿐만 아니라 1994-95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골을 넣으면서, 팀을 챔스우승으로 이끈 커다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유럽 전역에 아약스의 10번. 리트마넨의 이름이 알려졌지요. 1995년 유럽최우수선수를 뽑는 발롱도르에서도, 조지웨아, 클린스만에 이어서 3위를 기록하며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우와, 놀랍다 핀란드의 슈퍼스타!
  
 여기서 잠깐! 1위 수상은 비록 못했다지만, 2000년대 발롱도르 3위 선수들을 재미로 잠깐 살펴보면 그것도 재밌습니다. 올리버칸, 말디니, 제라드, 앙리, 토레스, 사비! 그야말로 현대축구의 특급선수들 이지요. 리트마넨이 보여주었던 90년대 중반의 포스는 이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만큼, 강렬했던 것입니다. 1995-96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도 9골을 넣으며 득점왕에 오릅니다. 팀은 아쉽게 결승에서 유벤투스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고요. 당시 아약스는 좋은 선수도 정말 많았고, 강했지요 :)

 

 리트마넨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믿음직스럽고 착실한 플레이를 꼽을 수 있습니다. 판단력이 뛰어나서 골을 정확히 넣어주는 센스가 좋았습니다. 피니쉬 뿐만 아니라, 찬스를 만들어 내는데도 능한데, 아름답다고 평가받던 패스실력도 일품이었지요. 예전 크로아티아의 에이스 수케르도 그렇지만, 리트마넨의 경우도 리트마넨만의 독자적인 맛이 있었어요. 공격수의 필수적인 요소인 감각적인 골 결정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평입니다. 핀란드에서는 최우수선수로 9번이나 선정되면서, 그야말로 상징적 선수로까지 대우받습니다. 검색해보니, 핀란드의 차범근! 이라는 재밌는 평가도 있던데 괜찮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유럽사람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었으니까요.

 

 아약스 시절의 엄청난 포스는, 21세기 무렵부터는 다소 잃어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챔스에서도 잘 차고, 리그에서도 멋진 활약을 이어나가자, 1999년 드디어 스페인 라리가의 명문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제부터는 커리어의 힘든 시기들이 계속 펼쳐졌습니다. 입단 당시만 해도 바르샤의 새로운 10번으로까지 관심을 받았지만, 계속되는 부상도 있었고, 결론적으로 제대로 주전 공격수로 출장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최전방으로 달려들면서 골을 만들어내는 리트마넨의 스타일이 바르샤와 맞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여하튼 21시합 3득점이라는 무척이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말았지요. 당시 바르샤가 우승을 놓친 큰 이유 중 하나가! "리트마넨 - 잘못된 영입" 때문이라는 매서운 혹평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요. 축구는 성적이 안 나오면 온갖 비난을 들어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바르샤를 떠나서, 어린 시절 동경하던 리버풀로 이적합니다만... 여기서도 활약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선수층도 두꺼웠고, 몸도 완전한 상태가 아닌터라, 그다지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2시즌 5골에 그치고 맙니다. 이후 2002년 아약스로 복귀했지만, 잠깐동안 몸담았을 뿐... 30대 중반이 되어가면서는 여러 팀들을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어느덧 은퇴가 눈앞이기도 하고요.

 

 또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월드컵이나 유로 같은 국가대항의 큰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핀란드는 월드컵 유럽예선을 통과하기 힘들었고, 이는 유로 예선도 마찬가지죠. 축구 약소국의 한계였습니다. 이를테면, 맨유의 저 유명한 라이언 긱스와 마찬가지로, 월드컵 활약을 볼 수 없는 비운의 스타 중 한 명으로 불리는 리트마넨입니다. 그래서인지 큰 무대 대신 - 종종 평가전에서 얼굴을 비추곤 합니다. 예전에 한국과 평가전 할 때도 볼 수 있었고요.

 

 이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2010. 06. 15. 초안작성.

 2020. 10. 12.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