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스타열전

#150 네덜란드 전설의 레프트백, 루드 크롤

시북(허지수) 2020. 10. 10. 19:48

 

네덜란드, 그 강렬한 오렌지군단의 위용! 70년대 네덜란드에는 토탈 풋볼과 전설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크루이프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한 명의 요한이라 불렸던 요한 네스켄스, 그리고 오늘 살펴볼 명수비수 루드 크롤도 있었습니다. 당대 네덜란드를 대표했던 전설의 수비수 루드 크롤의 이야기로 출발합니다.

 

 프로필

 

 이름 : Ruud Krol
 생년월일 : 1949년 3월 24일
 신장/체중 : 182cm / 80kg
 포지션 : DF
 국적 : 네덜란드
 국가대표 : 83시합 4득점

 

 70년대 세계 최고 수준의 레프트백, 전설 루드 크롤 이야기

 

 루드 크롤은 아약스와 네덜란드 대표팀의 레프트백으로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덩치도 크지만 민첩한 움직임이 장기였는데, 특히 냉정한 판단력과 뛰어난 통솔력은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존재감이 대단한 수비수였지요. 테크닉, 체력, 전술안, 리더십을 모두 겸비한 다재다능한 루드 크롤은, 토탈 사커의 명장인 리누스 미셸감독이 총애하는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레프트백으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리베로나 중원에서의 움직임도 뛰어났습니다. 실제로도 선수생활 마지막에는 리베로로 맹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국가대표로 통산 83시합을 소화했는데, 이것은 거의 20년 가까이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기록이었습니다. 신뢰받는 명선수였던 루드 크롤, 그는 크고 화려한 명성 보다는 오히려 네덜란드의 견고하고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커리어를 살펴보자면, 소속팀인 아약스에서 10년 넘게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부동의 선수로 활약했는데 이 시절 그러니까 70년대 무렵의 아약스는 현대의 아약스와는 정말 격이 다를만큼 눈부신 영광의 시대를 보냈었습니다. 크롤은 69년부터 80년까지 아약스에 있었는데 - 리그우승 6회, 컵대회 우승 4회, 게다가 챔피언스컵(현행 챔피언스리그) 3연패에도 크게 공헌하면서 아약스 전성시대의 핵심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눈부십니다. 1969년 스무살의 나이로 데뷔한 이후, 늘 대표팀에는 루드 크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1977년 이후부터는 캡틴으로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이끌었습니다. 주장으로만 45시합을 출장했던 한 때 네덜란드의 간판 기둥이기도 했지요. 특히 루드 크롤은 감독인 리누스 미셸과 또한 요한 크루이프의 생각을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명석한 선수이기도 했기에, 여러모로 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정신적지주이기도 했습니다.

 

 1974년 네덜란드의 월드컵 준우승을 요한 크루이프 등과 함께 이끌었으며, 1978년에는 요한 크루이프가 대표팀에 없었음에도 뛰어난 리더십으로 네덜란드를 이끌며 보란듯이 월드컵 결승전까지 치고 올라갔던 것도 루드 크롤의 훌륭한 통솔력을 빛나 보이게 합니다. 70년대 토탈사커의 수비축, 그가 바로 루드 크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역시 통솔력이 뛰어났던 많은 선수들이 그러하듯이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코치로도 활약을 많이 했는데 이집트 대표팀, 네덜란드 대표팀, 아약스 팀의 코치 등으로 오랜세월 활약했습니다. 유명한 팀을 한 번 맡을 법도 한데, 글쎄 꼭 감독으로서만 지도자 생활을 해야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여하튼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쳐야 할 듯 합니다. 네덜란드 토탈사커의 전설, 그 전설에는 요한 크루이프, 요한 네스켄스, 루드 크롤 등 멋진 선수들의 완벽한 하모니가 어우러져 세상을 놀라게 하곤 했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좋은 수비수가 있는 팀치고, 약한 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70년대를 호령했던 강호 서독도 베켄바우어를 두고 있었고 말이지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애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08. 12. 01. 초안작성.

 2020. 10. 10.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