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리바이어던 (Leviathan, 2014) 리뷰

시북(허지수) 2016. 6. 18. 06:51

 

 너무 인상적인 사회적 영화 리바이어던 입니다. 장르는 가족 혹은 드라마 라고 표현되고 있지만, 전개되는 속도가 굉장히 잘 짜여있어서, 매우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도무지 눈을 떼기 힘든 전개였네요. 그것은 일종의 약자에 대한 공감 때문일테죠. 주인공 콜랴와 예쁜 아내 릴랴의 삶이 제발 힘을 내고 구원을 얻었으면 하는데, 현실은 냉혹하다는 것이 표현하기 어려운 긴 여운을 줍니다. 오, 주여,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찌하나이까.

 

 그리고 왜 나입니까. 고통을 받아야 하는 것이 왜 나입니까. 행복하고 소박하게 살고자 하는 꿈은 어째서 이루어지지 못하는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저는 약한 자가 가지는 위악, 강자가 가지는 위선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또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강자는 힘을 가지고서 선한 체 가짜로 치장하고, 약한 자는 살아남기 위해서 강한 척 위장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러므로 잘 살펴봐야 합니다. 저 허풍쟁이가 실은 약자일 수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가장인 콜랴가 알콜에 의존하는 모습이 여러 번 보여서, 아버지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힘든 날이면 꼭 독한 소주잔을 찾으셨습니다. 저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가 그만큼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약한 모습 대신에 술을 의지해 만취한 상태가 되어 집에 오곤 했다는 사실을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잠이 드는 것을 보면서 종종 매우 슬프기도 했는데요. 그래도 저는 아버지가 좋았습니다. 삶의 힘듬, 고된 살아남기, 가장의 무게가, 위선적인 모습 대신에 솔직하게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아차, 이 좋은 영화 이야기 계속해야죠? 하하.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참으로 유능한 변호사 친구, 드미트리가 함께 하면서, 처음에 영화는 희망을 그려내는 듯 했습니다. 뻔뻔하게 나쁜 놈인 시장은 콜랴네 집을 헐값에 수용하려고 합니다. 법이라는 게 약한 사람, 억울한 사람을 못 도와줄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 때, 드미트리 변호사는 이 바딤 시장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보상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여기까지만 제대로 해결되었어도 이 영화는 비극으로 흐르지 않았을 테지요. 그러나 보상액이 5배가 넘게 차이가 나자, 바딤 시장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미트리 변호사를 뒷조사 한 다음에 철저하게 밟아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바딤 시장은, 정말 치사하고, 뻔뻔스러운데다가, 가식적이며, 위선적입니다. 온갖 나쁜 말은 다 갖다 붙여도 될 녀석입니다. 바딤 시장 당신 그렇게 살면 안 돼! 그래서 우리가 속으면 안 된 다는 겁니다. 시장은 실은 동방정교회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으며, 신부님과 정기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으니까요. 참으로 위선에 능한 인물입니다. 나는 착하고, 너희 가난한 인간들은 내 계획에 방해나 하지 말라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역겨움이 참을 수 없습니다. 꼭 한 방 먹였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철저히 현실적인 노선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권선징악의 동화가 아니었네요. 훌쩍.

 

 콜랴는 너무 억울합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급기야 죄까지 뒤집어 썼으니 비참하다라는 표현이 제일 적절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언제 비참해 지는가요, 콜랴를 보고 있으면 그가 독하다는 보드카를 꿀꺽꿀꺽 삼키며 신부님께 왜 나만 이러느냐고 따지는게 너무나 공감이 됩니다. 산다는 게 때로는 그런거 같습니다. 크게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당연한 요구를 했음에도, 권력을 가진 갑질의 횡포에 억울하게 시달릴 때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기댈 때 조차 없을 수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쓰라린 마음을 달랜다며 술을 마실테고, 또 누군가는 자신을 위로시키며 눈물을 흘릴 테고, 그 과정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힘내세요. 갑질에 혹여 상처받더라도, 우리의 한 번 뿐인 귀중한 인생은 여전히 소중할테니까요.

 

 아내이자 여주인공 격인 릴랴를 보면서는, 저는 예쁜 그녀가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잘 웃지를 않아요. 물론 예전에는 해변에서 웃으며 나잡아봐라 같은 즐거운 시절이 있었던 것 같지만, 영화 내에서는 릴랴가 침묵으로 이야기 하며, 행복이 어디있는가를 고민하는 여인 같았습니다. 미남 변호사 드미트리의 제안에도 끝내 응하지 않았고, 파도 소리가 거칠게 들려오는 높다란 절벽을 거닐 때, 그녀가 자살 같은 선택을 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안타깝게 릴랴는 죽음을 맞이했고, 밝혀진 것은 타살이라는 건데요, 실로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소름돋게 만들어 버립니다. 정말 나쁜 시키들...

 

 영화 표지에도 써 있는 외부평가를 가져오면 이렇습니다. "리바이어던! 걸작! 괴물과도 같은 정부와 맞서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 - 가디언" 가디언지는 말도 참 잘하네요. 그러므로 이렇게 이어보겠습니다. 괴물과도 같은 나쁜 정부와는 한 개인이 쉽게 상대할 수 없습니다. 또한, 좋은 세상도 한 개인의 각성으로 다가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손에 손을 맞잡고, 그렇게 함께 좋은 세상을 꿈꾸어 내고,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더 좋은 세상이 만들어 지는 것이고, 우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뭐, 제가 굳이 멀리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나라도 피를 흘려가면서 대통령 직선제를 얻어내었고, 민주화 운동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우공이산을 내걸고, 세상을 바꿔보려던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내몰았던 안쓰러운 비극도 겪어봤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선한 편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글을 쓰려할 때는, 거의 습관적으로 구글링을 합니다. 영화에 대한 해외평가를 찾아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렇게 은유적인 제목으로 개봉되었네요. "재판 받는 건, 선한 사람 뿐." 어쩌면, 악한 존재들이 잘 나가는 영화를 본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닐테지요. 그러나 이것이 일종의 현실 반영이고, 또 영화 역시도 오늘날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는 도구라면, 이 사회적 영화는 우리에게 생각하게 해주는 힘이 있습니다.

 

 저는 종종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슬픔 역시도 고이면 단단해지는 힘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고통은 때로 우리를 성숙하게 해준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리바이어던 처럼, 나쁜 권력 앞에서 선한 사람이 희생되어 버릴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어쩌면 인간은 힘없고 무력한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근본적으로는 한 번쯤 받아들이고, 연대 앞에 서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혼자 끙끙 앓지 마라는 것!

 

 벌써 또 장문이 되었네요. 마지막으로는 또 개인적 경험을 쓰네요. 어머니가 조울병으로 매우 고생할 때, 해결책을 담은 책에서는 이렇게 극적으로 조언했습니다. 조울병 환자가 있으면 가족들이 힘이 들 것은 분명하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고 도움을 적극적으로 요청하라. 그래서 저는 당시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이웃 분들께 연락을 하고, 실제로 도움도 여러 번 받기도 했습니다. 함께 해나가다 보면, 위로도 받을 수 있고, 힘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 자체가 굉장히 귀중하고 특별했습니다.

 

 영화 소개문에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감독입니다. 정치가는 아니지만, 내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각자가 맡은 일에서 노력하면서 이 세계를 지옥이 아니라, 점점 살만한 곳으로 물들여 가는 것. 그런 멋진 노력들이 우리에게 함께 하길 바랍니다. 마음에 남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오늘도 참 좋았습니다. 추천하겠습니다! / 2016. 06. 18.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