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여행자 (A Brand New Life, 2009) 리뷰

시북(허지수) 2016. 7. 22. 04:07

 

 김새론 양의 빛나는 열연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영화 여행자 입니다. 슬프고, 무겁고, 가슴 아픈 이야기, 그렇지만 그래도 희망은 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영화 소개문에 나오는 이 말이 굉장히 좋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상처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에,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처와 콤플렉스가 있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인생이라는 것, 그렇게 생에 대한 찬사를 어렴풋한 불빛으로 계속 비춰주는 느낌을 받습니다.

 

 영화 여행자에서 진희는 행복에서 절망으로 곧바로 환경이 바뀌고 맙니다. 아빠는 그렇게나 나에게 잘대해주었지만, 어느날 자신을 고아원에 맡겨두고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 됩니다. 진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고아원에서 처음에는 말도 안 하고, 밥도 안 먹는 등, 오직 아빠가 되돌아 오기만을 믿지요. 믿음의 붕괴가 여러 번 일어나게 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첫 번째 믿음의 붕괴는 아빠가 결국 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간신히 진희는 고아원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데요. 숙희라는 아이와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 둘은 함께 붙어다니면서, 아픈 새를 돌봐주기도 하고, 또 몰래 음식을 먹기도 하는 등, 이제야 비로소 진희는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숙희는 적극적인 성격이라, 양부모님 후보가 오면 영어로 자신을 어필하기도 하는 등, 자신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참 빠르게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참 좋았는데, 얼마 후, 숙희는 이른바 소녀끼리의 굳은 약속을 져버리고, 양부모님을 만나서 떠나가 버립니다. 함께 같이 입양되어서 살 것을 꿈꾸던 진희는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인형을 보더니 너무나 화가 나서 박살내버리는 장면에, 힘이 한가득 실려 있습니다. 참다 못한 보모 아주머님은 진희를 설득합니다. 따라와! 그렇게 화가날꺼면 차라리 이 이불을 힘껏 쳐, 고작 그렇게 해서 풀리겠어? 더 힘껏 쳐버려!

 

 이것이 인생, 가혹하지만 이것이 인생,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내 인생이 한심하게 보이고, 그 어떤 자기계발서의 문구도 헛소리 같이 들릴 때가 있지 않을까요? 내 안의 분노로 인해서 속이 답답해 가슴이 아려올 때,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음으로써 구원을 받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마다 그런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예컨대, 저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써내려가는 행위를 통해서 많은 것을 되돌아보며 배우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를 되돌아 보게 되었는데요. 비교적 중산층 가정에서 운 좋게 태어나서, 힘들이지 않고, 살아온 것에 대해서, 저는 회의적으로도 접근하게 됩니다. 아, 가난한 저 아이는, 얼마나 나를 부러워 했을까를 되묻게 됩니다. 미안해 라는 말로도 좁혀질 수 없는 사회적 출발의 격차는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내 친구는 돈을 쉬지 않고 벌어야 했고, 그렇게 벌어서, 집월세, 각종 공과금에 통신비, 먹고사는 생계 지출 등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보다 훨씬 수입이 적었어도, 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전혀 공평하지 않았던 겁니다. 미안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이 세상, 차라리 저 무덤에 있는 새처럼 눈을 감아버릴래! 진희가 삽을 들고 계속 흙을 파내려가던 장면이 왠지 불안하더니, 결국 거기에 자신의 몸을 눕힌 후, 흙으로 완전히 얼굴까지 덮어버리는 씬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진희는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감정에 누구보다 충실한 꼬마 아가씨입니다. 가식적이지 않아서, 우리를 더욱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없는 삶이란, 마음을 메마르게 하여, 끝내 피폐하게 한다는 것을 매우 진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진희가 가식적이지 않은 솔직한 마음들이 참 좋았습니다. 고아원에서는 아동이 떠나갈 때, 정든 친구 잘 가라고 이별 노래를 불러주는데, 담담하게 노래를 불러주는 진희의 똘망똘망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진희가 그 주인공이 되어서, 비행기를 타고, 입양될 차례가 되었습니다. 슬퍼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고, 그저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래서 저같은 못난이는 이 열살 짜리 아이에게 배웁니다. 주어진 운명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모습이, 그 달관한 태도가, 어떤 일이라도 견뎌낼 듯한 강한 용기가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살다보면 뜻하지 않더라도, 슬픔이 덮쳐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책갈피로 이런 문구가 적힌 도구를 사용합니다. "슬픔도 고이면 단단해진다." 계속되는 슬픔은 우리를 때로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한 편의 시구 같은 위로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식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작은 기쁨 하나로 하여 엄청난 슬픔을 견디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활에서 작은 기쁨을 찾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렇게 인상적인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운 좋은 날, 인상적인 밤이었네요. 언제나 자신에 대한 긍정을 잊지 않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와도, 조금만 더 버텨보기를,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기 바랍니다. 제 리뷰는 언제나 같은 결론이네요. 그런 허접한 글솜씨 라도 좋아해 보려고요 :) 화이팅. / 2016. 07.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