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디태치먼트 (Detachment, 2011) 리뷰

시북(허지수) 2016. 8. 20. 21:26

 

 영화를 보는 도중 몇 번씩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그리고 응원하게 됩니다. 아! 이 좋은 선생님이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미국의 고등학교는 정말이지 무시무시 했습니다. 학교 영화인데도, 청불 등급이 나오는 데는 다 이유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교권이 바닥에 추락해 있고, 선생님을 모욕하질 않나, 또 어떤 여학생은 옷이 뭐... 그럼에도 그런 현실과 싸워나가는 선생님들, 그리고 정면으로 조명을 비추고 있습니다. 사실 선생님들도 지쳐간단다, 라고요. 해서, 디태치먼트 영화는 마음에 남을 작품이고, 슬픈 작품이며, 강렬한 힘이 담긴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아픈 씬과 눈부신 씬들이 교차해서 지나가니까요.

 

 헨리 선생님은 학교에서 왕따로 외면받는 메레디스 양에게 그래도 괜찮아, 내가 너의 편이야 라는 이야기를 선물합니다. 이것이 또 이 아이에게는 구원이 되어주었나 봅니다. 메레디스는 헨리 선생님을 좋아했으며, 그의 사진을 즐겨 찍기도 하지요. 게다가 또 한 명의 특별한 인연, 헨리 선생님이 길거리에서 만난 에리카 양이 있습니다. 갈 곳 없는 10대 소녀 에리카를 세심히 챙겨주는 그 모습이 정말로 근사합니다. 아! 다정한 사람.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영화 디태치먼트는 이 점을 특별하게 정중히 조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곳이 있다!" 그 메시지가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그게 공감이 갔거든요. 아! 실은 나도 그런데... 라는 마음. 예컨대, 저도 실망하고 낙심할 때 제법 많습니다. 좋은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그 때 왜 그랬을까. 인간관계가 삐걱거릴 때는,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는 식이죠. 간단히 다시 말해, 누구나 힘든 순간이 있다고, 그리고 괴로운 순간이 있다고 쓸 수 있겠죠.

 

 헨리 선생님의 괴로움은 어린 시절의 기억들입니다. 물론, 지금 현실도 괴로울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요양 병동에서 거의 죽음 직전에 있고, 사랑하는 이 없이 고독한 삶, 다소 메마른 듯한, 건조한 삶을 이어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의 과거의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친 어머니가 약물을 한가득 삼키고 세상을 떠났을 때의 아픈 기억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 어머니와 함께 다니던 어렴풋한 기억들까지 생각나곤 합니다. 그래서 버스에서 홀로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정말로 아프지만, 기억에 선명한 장면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에리카를 만났을 때에도, 헨리는 이 아이의 삶이 이제는 달라지게끔 만들어 보려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선생의 사명이라고 정중하게 말합니다. 에리카는 이 진심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점점 헨리를 따르게 되지요. 두 사람이 함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주고 받는 장면들, 소박한 식사를 함께 먹는 장면들, 이렇게 잠시동안 식구로서 보호하면서, 에리카가 마침내 병원에서 검사까지 받을 수 있게 되자, 저는 너무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어떻게 본다면, 세상은 잔인하고, 냉정합니다. 10대 소녀가 집을 잃고, 의지할 사람 없이, 거리에 나앉고, 심지어 강간 당하거나 에이즈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도, 이 때 이 소녀의 편에 설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자유의 나라 미국도 이 점에서는, 적극적이지는 않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겹쳐온다면, 저는 당장에 1366 전화번호부터 눌러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긴급상황이니까요.

 

 그렇게 에리카는 한 사람의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나서, 삶의 새로운 출발점을 얻습니다. 그 아름다움 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게 좋은 선물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바르게 살아서, 다른 사람을 독립시켜 줄 수 있다면, 그 일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라는 생각. 비록 그 헨리 선생님, 자신은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냉철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말이에요.

 

 한편으로, 영화는 마무리 되면서 무척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메레디스 양은,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았지요. 제가 예전에 써놓았던,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러셀에 관한 예화를 가져오겠습니다. "러셀은 사춘기 시절에 몇 차례 자살충동을 느꼈음에도, 수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자살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나의 바람, 나의 의지. 얼핏 소소해 보이는 마음들이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요." 소소한 마음들이 참 소중한 것이라 종종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메레디스가 자신의 그 재능을 남이 알아주지 않던 간에, 특별하고 소중히 아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것은 냉정히 질문으로 되돌아 옵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소중히 아끼며, 즐거워 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입니다. 적어도 메레디스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자신의 작품을 찍어나가듯이 노력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이 듭니다. 가령, 세계적인 작가 스티븐 킹은 연장통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비유를 들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어두운 현실 앞에서도 자신의 노력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살아갈 때, 비로소 힘을 더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외 리뷰어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슬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속 한 마디 입니다. "괴로운 것은 너만이 아니고 누구라도 여러가지 힘든 문제를 내면에 안고 있는 거야, 해서 지금만 넘기면 뭔가 될 것이야" 지금을 견뎌나가는 것, 희망을 가지는 것, 거기에 대해서 정면으로 응원하고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마무리를 써야 할지도 이번 리뷰는 잘 모르겠지만, 다만 열심히 리뷰를 써봤습니다. 저는 한 때, 작은 공부방 교사였습니다.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습니다. 눈 덮인 길을 함부로 걷지 마라, 뒤따라 오는 사람이 보고 실족해서 추락할 수 있으니까... 같은 말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냉정히 점검해, 아이들 성적을 많이 올려주진 못했습니다. 다만, 그 중에 몇몇 아이들이랑은 기말고사를 치면, 3D 영화도 보러 가고, 위 게임방도 가보고, 스티커 사진도 남기고, 함께 노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그런 추억들은 제게 한 가지를 전해줍니다. 거봐, 어두움에 져서는 안 돼, 밝게 힘내서 살아가야 돼. 그것이 곧 인생이야, 라고 말이지요.

 

 세상이 황무지 처럼 느껴진다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왜 이렇게 힘만 드는지 우울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을 견뎌나가라고 격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 힘을 영화를 통해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헨리 선생님은 중지에 낀 반지를 참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에리카를 버리지도, 잊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렇게 스치듯 만난 인연에도 천사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네요. 그런 성품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기억에 오래 남을 좋은 영화를, 우연히도 시청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 2016. 08. 20.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