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리뷰

시북(허지수) 2017. 2. 19. 02:13

 

 어렵게 친구를 설득해 명작영화를 극장에서 보기 위해서 곧장 CGV로 달려 갔습니다. 재미가 빵빵 터지는 유쾌한 영화가 결코 아니었으니까요. 작은 소극장에는 한 십여명 정도의 인원이 있었고, 저와 친구는 늘 그렇듯 맨뒷자리에 앉아 숨죽여가며 이 작품을 온전히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삶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까. 별 볼일 없어도, 과거에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어도,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아도 시간은 주어져 있으니까. 우리는 삶이라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덤덤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정중히 배웠습니다.

 

 주인공 리는, 그의 형 조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고요. 이 무렵부터 리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떠올려 지는데요... 놀랍고도 무서웠고, 아팠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자신의 실수로 살고 있던 집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나 아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게 되었으며, 아내와도 이혼하게 되었다는 것. 경찰서에서 진술하는 모습에는 자괴감이 잔뜩 묻어 있었으며, 급기야 무죄로 이 사건이 끝나게 되자 총을 빼앗아 들고 자신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기도 합니다. 글로 표현이 어려운 삶에 대한 절망 그 자체 입니다.

 

 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인사성(혹은 사회성)도 없고, 무뚝뚝하고, 다소 냉소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는 조카 패트릭과 함께 8kg 짜리 낚시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만들 줄도 알았으며, 험한 말도 거침 없이 해대던 아내 랜디와도 잘 지내며 명랑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더욱 슬픈 영화이기도 합니다. 빈 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

 

 이러한 사정의 리 였기 때문에, 그는 후견인이 되는 것을 참 망설입니다.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쩌겠어요. 다른 대안이 없는 걸. 패트릭을 이제 와서 고아원에 보낼 수도 없는 노릇. 결국 삼촌 리와 조카 패트릭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둘은 시작부터 사사건건 의견이 잘 맞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산 배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아버지의 장례를 봄에 하기 위해 시신을 냉동보관 하는게 너무 싫다는 등등.

 

 그래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아주고 이해해주는 쪽은 삼촌 리 입니다. 애써 속아주고, 애써 져준다고 해야 할까요. 심지어 패트릭은 삼촌한테 건물 잡역부나 한다며 막말도 쏟아내지만, 리는 그럼에도 조카에게 맞추기 위해서 짐을 싸고 자신의 거처를 옮기기까지 하지요.

 

 그리고 끝내 마지막에 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함을 패트릭에게 고백하며 조카를 꼭 안아줍니다. 말도 없이 안고 있는 장면, 그러면서도 패트릭을 위하여 앞으로의 계획을 모두 설계해 놓는 꼼꼼한 모습 까지! 리는 사실은 형처럼 좋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했습니다. 리를 매혹하기 위한 사람들도 은근히 많았는데, 영화에서는 모두 단순한 컷으로 처리하고 말지요. 실은 참 매력적이었으나, 매력적으로 살기를 애써 포기한 사람. 그렇게 써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을 잃은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하여, 즐겁게 살지 않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즐겁고 유쾌하게 살자로 통하는 우리 두 사람은 서로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길에서 절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절망해봐야 자책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없겠지요. 아예 리처럼 그냥 담담하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는 그 모습, 실은 박수 받을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환상에 젖어 있던 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저도 패트릭처럼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사는 편입니다. 예컨대 패트릭은 연락이 닿는 엄마가 있으니까 이제는 거기에 기대면 되겠지 라는 식입니다. 매사를 철저하기 보다는 좋은 일이 생기겠지에 거는 거지요.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실제로 좋게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기대와 현실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으니까요. 참 좋아했던 고 신영복 선생님 식의 표현으로 써본다면, 그래서 바람이나, 꿈을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막연한 최면에서 차갑게 깨어나는 것도 무엇보다 우선되고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리는 아파도 살아가는 인생, 조카에게 삶은 계속되니까 희망의 길을 열게 해두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나도 뭐 잡역부 잖아. 최저임금 비정규직에.... 내 삶 하나도 별 것 없을 뿐이잖아. 그런 말들로 삶을 하찮음에 규정시키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비록 빈 손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희망이고 기쁨이 되어줄 수 있음을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자신의 실수로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된다 할지라도, 분명 삶은 계속될 터이고, 무너지지 말고 다시 힘을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좋은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인간은 관계를 아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 2017. 02. 19.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