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조작된 도시 (Fabricated City, 2017) 리뷰

시북(허지수) 2017. 2. 21. 01:30

 

 영화 조작된 도시 보면서 많이 놀랐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위험해 질 수 있는지 경고 하고 있는 판타지 혹은 SF 영화 같은 기분도 제법 들었습니다. 양산되고 있는 가짜 뉴스, 해킹에 의해서 손쉽게 도청되어 버리는 휴대전화, 심지어 신기술 드론에 의하여 화면 말고도 목소리까지 전해들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만 있다면, 그리고 다룰 수 있는 능력만 연마한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IT 괴물"이 될 수 있음을 화려하게 경고하고 있는 재밌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조작하는 것은 참 무섭고 어리석은 일이기도 합니다. 과거 동호회 활동 당시에 저도 아이디 두 개를 사용하는 등 조금의 조작 행위를 했었지만, 그 때는 다행히 (아마도 제가 동호회장이라?) 다들 애교로 넘어가 주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는 반성을 했고, 이 블로그에서는 때로는 실명으로 글을 남기기도 하는 등, 정당하게 활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악당만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직시할 필요도 있습니다. 우리 편도 적에 맞서서 불법 차량 조작, 음성 조작 등 다양한 기법이 등장합니다. 기술을 현명하게 쓴다고 해야할까요? 이럴 때, 저는 꼭 신영복 선생님의 오래된 잠언이 떠오릅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신 선생님의 처음처럼 개정판 중에서) 애벌레들 보면 등판에 뜬금없이 큼직한 눈동자가 그려져 있곤 합니다. 그런데 그 황당하고 어설픈 눈동자 때문에 천적인 새들이 가끔 화들짝 놀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벌레들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벌레들의 필살 눈동자 조작기술 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때로는 그렇게 진지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극중의 여울이라는 캐릭터가 참 공감이 컸습니다. 여울은 극중에서는 해커로 그려지지만, 그리고 게임도 못해서 맨날 죽기만 하는데다가,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영화에서 딱 하나 진짜 잘하는 거 나오는데, 그게 아이구 머니나 욕이랍니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이 웃기도 하던데, 어린 아이들이랑 같이 영화 보거나, 욕 싫어하시는 분들은 눈쌀을 찌푸리기도 했겠지요.

 

 그러나 여울은 택배가 오면, 남자 음성을 이용해서 짐을 놔두라고 하는 등,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힘겹고 진지하게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맨날 죽기만 잘 죽는 초보 게이머인 자신을 아껴주는 권유 대장과 함께 게임을 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착한 사람이 나쁜 외피를 쓰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서운 것은 그 반대지요. 인성이 몹쓸 사람이 가식적으로 위선을 하는 행위, 이것이야말로 정말로 지옥에나 갈 일입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국선변호사처럼 말이에요.

 

 그러므로 영화는 오히려 여울의 시점에서 들여다보면 흥미로웠습니다. 그녀는 어느 순간 갑자기 삶의 행복한 지점을 빼앗겼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각종 해킹" 기술을 동원해서 진실을 찾아나선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 역시 사회의 철저한 비주류에, 심지어 대인기피증, 그녀의 진실을 향한 목소리는 완벽한 법적 증거들 앞에서 짓밟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권유 대장은 이제 여고생 강간 살인 피의자로 몰려서 삶의 가장 끔찍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고요. 그 슬픔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의 사망진단서까지 나오는 장면은 영화의 가장 비극적 한 컷입니다.

 

 권유는 자해를 통해 탈옥까지 하는데 성공하며, 마침내 궁극의 머신, 하얀 마티즈를 얻게 됩니다. 외국인의 순수한 시선으로 권유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20만원 주고 샀던 똥차, 그러나 폐차하는데는 40만원이 필요하다고 하니까... 이 외국인들은 권유에게 키를 넘겨줍니다. 마티즈 잘 몰아줘! 그리고 게임중독자 권유는 각종 드리프트 기술까지 선보이는데 어찌나 놀라운지요. (여담으로, 저도 과거 열혈게이머 시절 값비싼 게이밍 휠을 사서 그란투리스모 류의 자동차 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불태웠었던지...)

 

 여울의 도움으로, 권유는 마침내 게임 상의 멤버들과 감격의 재회를 하게 되고, 이들은 진실을 향해서 악당들과 싸워나간다는 이야기로 극은 빠르게 전개 됩니다. 반격의 시작이지요. 사회에서 별 볼일 없던 사람들이 모여서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능력을 펼칠 수 있다는 시점이 상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의 사회는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기회가 제한되어 있음을 재밌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은 사람 따위야 한 번 쓰고 내다버리는 식의 악당들의 잔혹한 대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대비해 볼 수 있지요. 고성능 BMW 조차도 기회에 이용되고 버려질 수 있는 악당팀의 행위, 반면 궁극의 우리 마티즈는 아껴가며 하늘을 달리는 꿈의 머신으로!!!

 

 마지막으로는 언론의 중요성을 생각해야 겠지요. 언론은 사회의 4번째 권력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법, 입법, 행정 처럼 국가를 이루는 중요한 기관이기도 합니다. 역사에서는 언론부를 장악하려는 시도가 늘 있어왔음을 배울 수도 있지요.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자본 혹은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자유로운, 그리고 진실된 언론이 중요합니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해 권유가 무죄임을 밝혀주는 대목은 앞으로의 미래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악당은 약점이 있는 사람을 철저하게 이용합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백수, 돈에 시달리는 사람을 타깃으로 노려서, 이들을 악질 범죄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30만원의 유혹(?) 혹은 선택 앞에서 우리는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실로 마음 아픈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아우디를 타고 다니는 사채업자 조폭에게 갚을 돈이 없어서 매번 두드려 맞는 여성의 이야기는, 현실을 제대로 보라는 경고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영화 폭스캐처 같은 작품을 통해서, 삶의 선택의 순간 돈으로 움직여지는 사람이 아니기를 소망해 왔습니다. 돈에서 자유로워지는 삶이길 원했지요. 그러나 백수였고, 정모비도 없던 권유 대장에게는 이것이 매우 힘든 일이었음을 공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극중에서 돈 때문에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여성의 처지를 누구보다 이해해주며, 아파해주는 따뜻한 마음씨의 권유 대장에게 감동했습니다. 이점에서 저는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돈의 위험성을 잘 깨달아 함부로 돈을 빌려주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 둘째로 나도 저런 처지에 놓여있었다면 별 수 없었겠구나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비판을 앞세우기보다는 남의 처지를 헤아려 볼 수 있는 속 깊은 사람이 되고 싶었네요.

 

 아무튼! 권유 팀 일행은 슈퍼카를 이용해 방송국도 털어가면서 반격에 성공했고, 진짜 악질의 국선변호사를 체포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이들은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정모도 열고, 함께 PC방에 가서 환상의 팀워크를 또 보여주겠지요. 그런 삶. 남들이 찌질하고 별 볼일 없다고 놀리는 삶도. 사실은 소중한 기쁨이 일상에 숨어 있는 삶이라는 것. 그러므로 실은 무거운 아픔과 상처도,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치유되어져 나갈 수 있다는 그 말을 믿습니다. 지금까지 영화 조작된 도시 였습니다. / 2017. 02. 21.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