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필스 (Filth,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7. 2. 22. 03:19

 

 저는 엑스맨 시리즈를 참 재밌게 봤었고, 그래서 제임스 맥어보이의 반듯하고 선한 연기에 푹 빠져들었던 것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2014년 런던비평가 협회상에서 제임스 맥어보이가 멋지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것이 이 문제의 청불 영화 필스 였습니다. 지독한 악당이자, 구제불능의 탕아로 나오는데 그렇게 몰락한 연기가 어떨까 호기심이 계속 생겨서 영화 필스를 늦은 시간에 보기로 결심합니다! 대체 어떻게 연기했길래 상을 받는거야!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 답게 구성이 탄탄하고, 상세한 배경설명은 오히려 생략되어 있기 때문에, 흐름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꽤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브루스가 왜 저렇게 타락해 버린걸까, 그는 재기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 중에서 제일 와닿았던 것은 한 번 비열해지고, 나쁜 선택을 시작한다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인간의 악한 마음이 자란다는 것이 잊히지 않네요. 조금 어눌하고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선한 선택을 하는 것이 인성에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경찰 브루스는 내면이 참 복잡한 사람입니다. 승진을 위해서 온힘을 쏟고 있으며, 경쟁하는 동료들을 완전히 밟아주려고 잔뜩 독만 올라와 있습니다. 그래서 동료의 부인과 잠자리를 가지는가 하면, 다른 동료의 성적인 약점을 비난합니다. 회계사 친구와 가까워 지는가 싶더니, 그 친구의 지갑을 태연히 털어갑니다. 도대체가 경찰이 맞는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막장 경찰인 브루스의 진짜 모습이 살짝 비춰질 때가 영화에서는 잠깐씩 나옵니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사람이 쓰러지자 누구보다 앞장서서 달려가 이 행인을 구해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행인은 안타깝게도 급사하지만, 브루스의 진지한 태도는 행인의 가족에게 커다란 선의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매우 짧게 브루스의 죽은 동생이 겹쳐지지요. 자신의 실수로 동생이 죽었다는 트라우마, 그리고 계속되는 환시와 환청. 무엇보다 이 영화의 압권은 이 순간, 아무도 그의 편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슬픈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사실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일 정도가 되었다면, 더 늦기 전에 얼른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서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아야 겠지요. 영화에서도 정신과에서 볼 수 있는 리튬 약이 등장하는 등, 확실히 브루스가 제정신이 아님을 정면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브루스는 약물을 치워버리고 게다가 동료 여경찰 아만다의 걱정까지 무시해 버립니다. 매일 술에 의존하는 등 나날이 증상은 악화되어가지요. 지나가는 아이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지 않나... 이쯤되면 브루스는 정신건강을 위해서 병원에서 강제적으로(?) 중독 치료를 해야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망가진 이유는 크게 보면 두 가지 겠지요. 어렸을 때, 동생을 사고로 잃고, 자신이 그 책임을 떠안게 된 것. 둘째로, 행복했던 시간, 사랑하던 가정이 파탄나서 깨어진 것, 다르게 써본다면 관계가 완전히 파탄난 것에 있습니다. 저는 극중의 타락한 악역 브루스를 별로 이해하거나 편들고 싶은 마음은 단호히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아, 그래! 인간관계란 얼마나 중요한가!" 아내를 그리워하며 눈물 짓는 브루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여성과 아이에게는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주소와 연락처를 건네주는 모습은 그가 한 때는 참 괜찮은 경찰이었구나를 떠올리게 만들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를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특히 가까운 관계는 말이에요. 큰 이별이나 아픔을 겪을 때는, 우리 마음을 함부로 망가지지 않게 소중히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요. 마지막 순간, 오히려 승진 대신에 강등이 되어버린 브루스는, 경찰 제복을 마침내 단정히 입고 어제와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회계사 친구에게는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조언을 하고, 자신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막다른 결정으로 치닫지요.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쳐가면서 즐겁게 살아가기란, 애시당초 말이 안 되는 것임을 마음에 꼭 담을 수 있었네요.

 

 오래된 옛 격언이 떠오릅니다. 좋은 인생이란 무엇일까? 나쁜 것의 부재에 있다는 것입니다. 힘든 삶이라도 가끔씩이나마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브루스가 힘든 경찰 생활을 알콜 중독 대신에, 승진 홀릭 대신에, 사람들을 돕는데서 가끔씩 "만족"을 얻었다면, 그래서 그것으로 기뻐할 줄 알았다면,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선으로 살아가면 선으로 돌아온다는 말 잊지 않아야 하는 단순하고 소중한 이야기 입니다. / 2017. 02.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