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리뷰

시북(허지수) 2017. 2. 25. 23:11

 

 184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명작영화 노예 12년 입니다. 솔직히 별로 재미는 없습니다. 마음 아픈 장면, 불편한 장면은 많으며,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만듭니다. 옛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1세기 현대 사회에도 격차사회는 심해지고 있으며, 사람을 상품화 해서 일회용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대충 2년 쓰고 자르지 뭐. 예전에 어느 예능프로에서 직장인이 스스로를 사노비라고 칭하는 풍경은 낯선 일이 아닙니다. 벌써 많은 이들에게 삶은 공허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처럼, 사람들도 현대의 시스템 속에서 갇혀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예 12년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재차 일깨워줍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의 위대함을 그리는 참 좋은 영화 입니다. 어두운 시간을 반드시 이겨내서, 노예로서 살지 않을테야!

 

 영화 초반 자유인 솔로몬은 음악가로 따뜻한 가정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따라 나서다가 인신매매범에게 당하고 말았습니다. 노예로 팔려가는 모습이 그 자체로 매우 충격적입니다. 어떤 흑인은 어차피 이판사판, 팔려가는 배 안에서 백인에게 대들었다가 그대로 목숨을 잃고 바닷 속으로 던져지며 생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짧은 장례 속에서 공포의 대사를 흘려듣지요. "차라리 그는 나았는지도 몰라" 이것은 앞으로 펼쳐질 지옥같은 노예 생활이 죽음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당시 흑인 노예들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 가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목화 생산은 급증하는데 일손은 부족하고, 그래서 노예 거래가 만연하게 되었지요. 솔로몬은 이제 그의 진짜 이름을 잃은채, "플랫"이 됩니다. 바이올린을 켤 줄 알기 때문에, 그는 가치가 높았고, 포드 라는 백인 주인에게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처음에는 영화를 보면서 그나마 양심이 느껴지는 포드 주인이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습니다.

 

 농장주 포드는 일을 영리하게 해내는 플랫을 누구보다 아끼고 총애했으며, 그에게 바이올린도 선물하는 등, 호의를 베풀어주기 때문입니다. 플랫 역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음이 아파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가 하는 일마다 너무 잘하기 때문일까요. 오히려 이것이 화를 부르는 과정이 참 비극입니다. 흑인들을 감시하던 백인 관리자가 농장주의 사랑을 받는 플랫을 노골적으로 미워하더니, 급기야 밧줄로 그를 죽이려까지 합니다. 영화는 이와 같은 장면들을 계속해서 연출합니다. 그 점이 대단히 마음 아픕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잘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인정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데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재능 때문에 자꾸만 역으로 고통 당하기만 합니다. 이것을 솔로몬(플랫)이 깨닫게 되자, 말을 아끼는 법을 배웁니다. "저는 검둥이라서 글도 모릅니다." 이제 살아남기를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플랫은 더 이상 포드네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목숨의 위협이 계속되었으니까요, 그래서 악명 높은 에드윈 엡스 라는 플렌테이션 농장으로 팔려오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진 바 없었습니다. 목화를 따고, 건축을 하고, 여러가지 잡일 등을 맡아하지요. 그런데 여기서 팻시라는 어린 여자 노예가 나오는데요. 목화따기 여왕입니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목화따기 실력으로 농장주의 사랑을 받지요. 그리고 비극은 반복됩니다. 농장주 부인이 팻시를 혐오하거든요. 틈만나면 팻시를 괴롭히고, 그녀를 팔아버리라고 소리칩니다. 팻시는 플랫에게 찾아와 애원합니다. 차라리 나를 죽여달라고요. 주님께서 용서하실테니, 더 이상 살고 싶지도 않다고...

 

 노예의 삶은 인간성이 파괴된다는 점을 영화는 몇 번이고 보여줍니다. 알콜에 빠져서 엡스네 농장으로 일하러 오게 된 백인이 있는데, 그는 하루종일 채찍질로 노예들을 괴롭히다보면 맨정신을 가질 수 없었다고 털어놓습니다. 팻시는 잘못한 것도 없이, 비누를 빌리고자 옆 농장에 갔다가, 농장주에게 혹독한 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채찍질은 플랫의 담당이었지요. 이후, 플랫은 삶을 견딜 즐거움마저 놓기로 선택하며 바이올린마저 부셔버립니다. 악기를 켤 줄 알면 뭐합니까, 목화를 잘 따면 뭐합니까, 어차피 노예제도 아래에서는 매 맞고, 자유를 잃어버렸는데요. 세상이 병들어 있으면, 사람은 그 속에서 아프게 질식해 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12년을 견뎌가는 중에, 믿었던 백인에게 배신도 당했지만, 이번에 캐나다에서 오게 된 베스라는 노동자 덕분에 솔로몬은 탈출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연을 용기 내어 털어놓았고, 베스는 편지를 통해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겠노라고 약속을 합니다. 긴 세월을 참아왔고, 마침내 가족을 만나게 된 솔로몬, 가족을 끌어안고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참 짠합니다. 아이들은 벌써 다 커버렸고, 딸은 시집을 갔군요.

 

 영화는 우리에게 현재의 시스템이 완전하지 않을 수 있음을, 또 개혁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이 올 수 있음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서 킹의 이야기로 기억하는데, 법적으로 인간이 평등해 졌다고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경제적으로도 노동한 만큼의 보수를 받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동가치가 땅에 떨어져 있어서,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안전망이 없어 아기를 낳지 않고, 그렇게 한 나라의 희망이 꺼져가고 몰락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명대사를 기억하며 리뷰 마칩니다. 신의 눈에 백인이 어디있고, 흑인이 어디있겠나, 그냥 사람일 뿐이지. / 2017. 02. 25.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