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Enemy at the Gates, 2001) 리뷰

시북(허지수) 2017. 4. 16. 03:45

 

 2차 세계대전 - 그 중에서도 독일과 소련의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는 잘 만든 수작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이야기 입니다. 토요 심야에 또 명화를 건졌네요. 달콤한 로맨스도 들어가 있고, 전쟁의 비극을 잘 표현했으며, 놀랍게도 나치 뿐만 아니라 소련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가감없이 폭로하는 대목이 일품입니다. 아무쪼록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평화주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독일군이 스탈린그라드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거의 점령해 가는 수준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탱크에, 항공기, 게다가 전술적으로도 굉장히 정예화 되어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괜히 나치가 유럽을 집어삼키려 했던 건 아닐테니까요. 그 군사력이 어마무시 합니다. 이에 소련군은 매우 중요한 도시 스탈린그라드를 결사적으로 지켜내려고 군인들을 열차에 싣고, 폐허 도시 속으로 돌격 앞으로를 외쳐보는데...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러시아에는 자부심의 장소가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와 볼고그라드(=스탈린그라드)는 나치 독일에 맞서서 결사항전을 이루어 냈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도시 곳곳에 이를 기념하기 위한 시설이 있다는 거에요. 우리 역사에서 일제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하던 소중한 날을 기념하는 것과 같은 취지일테지요.

 

 지금 소련의 사정은 굉장히 열악합니다. 돌격하려는데 1인 1소총도 지급되지 못해서, 한 사람은 소총을 들고, 한 사람은 총알 몇 발을 들고서 앞으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래놓고, 앞사람이 사망하면 그 소총을 쓰라고 합니다. 게다가 차분하게도 독일군은 소련군을 가볍게 제압해버리기 까지 합니다. 주인공 바실리 청년은 간신히 전장 한 가운데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뒤로 후퇴했다간 소련군에 의해서 겁쟁이 병사라며 사살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실리가 시체처럼 누워 있고, 한참이 지나자, 소련 선전장교가 와서 유인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총을 제대로 쏘기가 힘들어 보였던 이 행정장교는, 바실리에게 소총을 건네줍니다. 드디어 바실리의 경이적인 사격실력이 발휘됩니다. 독일군 장교가 쓰러져 나갔고, 이 사건 이후로 장교 다닐로프와 저격수 바실리는 호흡을 맞춰나갑니다. 다닐로프는 신문 톱기사로 바실리의 영웅담을 싣고, 바실리도 저격수로 자신감을 가져가면서 전설을 써내려 갑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싸움이 힘겹게 펼쳐진 동부전선에서는 저격병들의 활약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한 유능한 저격수는 1개 분대 만큼 혹은 그 이상의 살벌한 공포를 주기에도 충분했지요. 그러므로, 잘 지휘하다가도 갑작스러운 곳에서 저격병에 의해 전사할 수 있으니까, 독일군 입장에서는 바실리가 정말 골칫거리로 여겨졌을겁니다. 이리하여 독일도 특단의 조치를 실시하는데, 숙련된 저격수 코니그 소령을 베를린에서 데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능숙한 실력으로 바실리의 가까운 동료 쿨리코프를 제거하기도 합니다.

 

 쿨리코프는 비록 짧은 등장이었지만 사회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합니다. 독일 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했었다는 이유만으로 붙잡히고 끌려가고, 고문당했다는 겁니다. 스파이 혐의는 간신히 벗었으나 그 댓가로 이빨이 모두 사라지게 되었지요. 높으신 분들은 어차피 사람을 도구로서 이용하고 있다는 불편하지만 선명한 진실이, 영화에서 꾸준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소련군은 중요 거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군사 절반쯤을 잃어도, 아니 아예 군사를 다 잃어도 된다는 식입니다. 전쟁이란 아군에게도 결코 좋은 입장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한편, 험한 곳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바실리는 타냐라는 명석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독일어도 능통한, 유능한 아가씨인데, 전쟁 중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서 전방으로 자원해 나서는 용기까지 갖추었습니다. 타냐의 도움이 있어서, 바실리는 극적으로 독일 저격수 코니그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습니다.

 

 코니그 소령은 영리하게도 러시아 꼬마 아이를 이용해서, 바실리를 싸움터로 유인해 냅니다. 조금은 이 소령을 분석해 본다면, 사격 학교의 교장을 하고 있었으며, 이 곳 스탈린그라드에서 소중한 아들을 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수직적이고 군사적인 명령을 따르려고 하는 열성 나치 추종자이기 보다는, 그저 여기서 유능한 러시아 천재 저격수 바실리와의 싸움을 이겨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베를린 소환 명령에도 따르지 않습니다. 소중한 아들을 전쟁 중에 잃어서, 허무한 마음이었지 않았을까요. 따라서, 전쟁은 적군에게도 좋지만은 않습니다. 히틀러, 스탈린, 광기의 지도자들 싸움 속에 민간인과 특히 안타깝게 많은 군인들만 희생되어 가는거지요.

 

 영화 마지막에서는 다닐로프가 자신의 진심을 침착하게 고백합니다. 자신은 평등한 사회주의 공화국을 믿고 노력해 왔었지만, 사실은 질투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가령 바실리는 재능이 있고, 사랑을 받게 되었고, 다른 누군가 - 여기서 다닐로프 자신은 - 사랑에 실패했고, 그래서 삶의 의미를 젊은 날에 잃게 되는 모습이 비극적이었네요. 이를테면 다닐로프도 사랑의 뜨거운 열정만큼은 계속 간직하고, 끝없이 구애를 해보지만 잘 되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사람 마음이란 알 수 없고, 사랑 받지 못한다는 슬픔과 질투의 독한 마음은 매우 고통스러운 것임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습니다. 그를 별로 나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선택을 좀 더 신중하게 했으면 좋았으리라는 마음입니다.

 

 다닐로프의 희생으로, 바실리는 코니그 소령을 제압하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엄청난 스탈린그라드 시가전은 소련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바실리는 여전히 영웅이 될 수 있었고, 마지막은 사랑하는 여인과의 멋진 재회와 함께 막을 마치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던 대목은 뜻밖에도 전쟁 도중에 병사들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담배를 태우며, 차를 마시는 대목입니다. 그 이유가 분명합니다. 언제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닥칠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껏 하루를 만끽하려는 모습이 눈부셨습니다. 그런 문화 때문이었는지, 타냐도 적극적인 태도로 바실리에게 먼저 다가간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간이 많이 남은 것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느긋한 태도 보다는, 오늘을 축복처럼, 보너스처럼 여기며, 열심히 재밌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누군가 에게는 간절히 원했었던 하루였다 라는 말이 맴도네요. 오늘의 리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 저격수를 다루는 템포 좋은 전쟁 영화를 찾는다면 이 작품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 2017. 04. 16.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