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에 빛나는 영화 문라이트 입니다. 주말에 또 갓수수(oksusu)님께서 풀어주셔서 놓치지 않았습니다. 보고 나서 느낀 점은,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가정 환경의 중요성 입니다. 알려진 것처럼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의 주인공 샤이론처럼, 삶이 슬픔 뿐이고, 눈물로 뒤덮여 있다면, 누군가가 다가와 안아주고 구원해 주었을 때, 그에게 끌림을 느낀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폭력에 배신까지, 관람하기에 즐거웠던 작품은 아닌데도, 여운이 남는 것은 그럼에도 사람은 누군가를 향해서 살아간다는 느낌입니다. 아마 샤이론 곁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를테지요.
영화는 3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샤이론(별명 리틀), 학창 시절의 샤이론, 그리고 성인이 되고나서의 블랙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시간 순으로 알기 쉽게 흐르고 있습니다. 꼬마 샤이론, 즉 리틀은 마이애미의 우범지대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놀리면서 괴롭히기도 하는데, 급히 도망을 다니다가 후안과 테레사 라는 매우 친절한 이웃을 만난 것입니다. 이들은 꼬마 리틀을 데리고, 밥도 먹여가며, 때론 재워줍니다. 이렇게 후안과 친해져 가는데...
※이 리뷰는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가득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반드시 주의하세요!
좋은 자동차에 시계까지 차고 다니는 성공한 인생 후안은 사실 이 지역을 관리하고 있는 마약상인 입니다. 위험한 순간에는 총을 꺼내들어야 하는 불안정한 삶이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후안은 삶을 긍정하며, 꼬마 리틀에게 세상에 대한 훌륭한 경험들을 선물합니다. 바닷가 여행을 떠나, 리틀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고 함께 웃는 장면은 - 삶은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만들어 간다는 것 - 을 장면으로 따스히 알려줍니다.
"내가 호모에요?" 리틀은 놀림 받으며 정체성을 놓고 괴로워 하는데, 후안과 테레사는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말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라 지혜로운 교훈을 전해줍니다. 음, 예컨대 고전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같은 영화를 보면, 가령 동성을 좋아했다 하더라도, 각자 결혼을 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너는 그냥 게이야." 이렇게 단칼에 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고민을 통해,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가족의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데다가, 호모로 자꾸 놀림 받는 최악에 가까운 상황에 계속 노출 되는 - 꼬마 리틀의 "오늘을 견디는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면이 바뀌어 학생 샤이론이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여전히 마약에 취해 있고, 학생인 아들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소리치고 있습니다. 또래 집단의 괴롭힘은 더했으면 더했지, 참혹합니다. 샤이론의 어머니를 값싼 창녀라고 부르고, 샤이론을 동성애자라며 집단 구타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게다가 이 구타에는 친구라고 믿었던 케빈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으니, 배신감이 차오릅니다. 선생님은 샤이론을 달래고, 너를 이해한다고 다독이고 있지만 영화의 연출은 경이롭습니다. 선생님의 소리가 점차 하나도 들리지 않게끔 조정되어 있습니다.
분노를 장착한 샤이론은 학교로 곧장 쳐들어가 자신을 괴롭힌 주범 하나에게, 의자를 들고 냅다 뒤통수를 가격해 버렸습니다. 복수극일텐데, 이 때 출동하는 것은 경찰이고, 샤이론은 결국 소년원으로 이송되었네요. 그의 친구였던 케빈 역시도 마땅히 바른 일을 찾지 못하다가 감옥 신세를 진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이들의 삶은 정형화된 행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게 특징입니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흐릅니다. 한 10년?
이제 블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샤이론, 그는 성공적으로 마약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수입은 훨씬 많아졌고, 자동차도 몰고 다니며, 꾸준한 운동을 통해 근육남이 되어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애정을 전혀 받지 못했었기 때문일까요? 곁에는 그 누구도 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은 시설에 계신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를 찾아가서는 그녀의 진심을 듣게 됩니다. "샤이론,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겠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엄마인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었다고..." 눈물이 나는 블랙...
저는 글을 쓰면서도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한참 동안이나, 말문이 막히는 대목입니다. 블랙은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보다는 이제 당당히 홀로서기에 성공한 블랙은 자신만의 길을 계속 걷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상태였을까요? 좋은 사람이 되라는 올바른(?) 충고도 때로는 가혹하게 들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내게 주어진 기회에서 열심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자리를 잡았다는 블랙의 진심은 눈여겨 봐야할 대목입니다. 블랙에게 있어 삶은, 한 번도 쉽지 않았던 것! 이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블랙은, 사회에서 자리를 잡았던 친구 케빈을 찾아가게 됩니다. 케빈은 요리사가 되어서 삶이라는 것을 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박봉에 피곤하기까지 하지만, 그래도 직업이 있고, 아이가 있어서, 열심히 살아가며 힘을 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역시 블랙에게 과거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스페셜 요리를 천천히 먹으며, 맛을, 그리고 삶을 음미하던 블랙은 친구의 사과를 받아들입니다. 케빈과 다시 가까워지기로 마음먹으며 영화는 그대로 막을 내립니다. 친구 중에서는 너만이 나를 터치해주었다는 표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구나 외면하고 있을 때, 가까이에 가서 말을 걸어주었던 사람, 그와는 이렇게 10년이 지나서도 인연이 닿고, 기억은 지워지지 않아서 다시 깊은 사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메인테마는 자신의 길은 자신이 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남이 원하는 인생을 맞춰주느라 자신의 시간을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블랙에게 이 이야기는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서, 감옥에 나와서는 치열한 노력 끝에 자기 자리를 잡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 역시도 그 자신이 정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삶은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시간을,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겠습니다.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삶은 그래도 달빛 비추는 날 - 푸르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 2017. 04. 24.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