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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마음 먹은대로 길을 갈 수 있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뜻하지 않는 일들을 계속해서 차례 차례 겪게 되고, 그러면서 가야할 길을 몇 번이고 수정하게 됩니다. 2007년에 이 블로그가 개설될 때, 참 멋있으신 최태성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를 약간이나마 담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요. 마찬가지로 30대의 그 많은 시간들을 정신건강의학을 가까이 하면서 살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저는 의사가 아닙니다.

 

 인간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혹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들은 일어나곤 합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닥쳐오기도 합니다. 어머님이 양극성 장애 - 흔히 말하는 조울병으로 긴 시간, 그것도 많이 아프셔서, 저는 병간호를 담당해 왔고, 삶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포기해 왔습니다. 도서관에서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책을 꼬박꼬박 빌려서 읽고, 운동할 때는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주 어려운 과정 끝에, 어머님의 병을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 년 동안 매일 매일이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재차 다짐합니다. 이것도 어쩌면 무슨 뜻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누군가의 말처럼, 신앙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기에, 5년이 훌쩍 넘어가는 긴 시간을, 절망 속에서도, - 어쩌면 기적처럼 -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또 다시 겨우 일어나며, 버텨내 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정신건강의학과의 폐쇄병동 (NP - 클로즈) 에 간호하느라 함께 지냈던 시간들 역시 있었습니다. 보호사 선생님이 함께 계셨고, 정말 가슴 아픈 광경들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여중생처럼 어린 학생이,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가, 말을 닫고, 이상한 소리에 시달리는 너무 안타까운 모습을 어떻게 잊을까요. 물론 꾸준한 치료와 약물 복용 등으로 점차 나아지고, 세상이 따뜻한 곳이라는 회복의 시간이 반드시 함께 하기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이 조금 이상해져 버린 사람들을 나쁜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아픈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아서, 그것을 도저히 마음으로, 몸으로, 뇌로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딘가 신경전달물질이 일반 범위에서 벗어나 버린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너무나 불안해져 버렸고,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사고의 흐름이 망가져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안 됩니다. 용기를 내어서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려봅시다. 반드시 나아질 수 있습니다. 자살하면 안 됩니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 임세원 선생님은 정신과 입원실을 참혹함이 느껴지는 곳이라고 썼습니다. 우리는 가끔 세상살이를 너무 힘들어서 지옥 같다 라고 쓸 때가 있는데... 그런 무거운 현실 속에서, 아무 것도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언어로 쓰기 힘든 괴로움을 겪었을 때, 누구나 정신이상에 잠시 시달릴 수 있는거라 저는 감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종의 빚과 같은 마음을 지고 있습니다. 이제 받기만 하는 편안한 삶에서 돌이켜보고자 합니다.

 

 동기이신 백종우 선생님께서 정신질환 관리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넘길 수가 없다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제 가정만 해도, 어머님이 정신장애 판정을 받았고, 이후 꾸준한 인지능력 저하로, 원인불명 치매판정을 받아서, 국가의 도움을 받고나서야 저는 약간의 숨통을 트이며, 비로소 작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긴 시간 많이 힘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어머님을 이만 포기하고, 요양하는 곳에 맡겨서, 나 자신의 인생을 사는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하였고, 이 말도 분명히 훌륭하고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로써는 지병으로 인해 걷지도 못하던 병약한 어린 시절를, 애써 업어가며 키우셨던, 할머님, 어머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마지막까지 병간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반드시 있다고 생각하며 말이지요.

 

 통계에 의하면, 선진국 영국에서는 드디어 우울증이 비만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는 질병 1위로 올라섰다고 합니다. 사실 이미 10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고 있던 일이었습니다. 우울증이 늘어나고,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견은 종종 봐왔습니다만, 결국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지요.

 

 마음이 괴로울 때, 저는 도움 받았던 이야기들을 몇 가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귀중한 이야기들이 텍스토로도 살아 있다면, 분명 또 누군가에게 반사되어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니구나! 아! 이런 방법이 있구나! 아! 그래도 포기하지 말아야 겠구나! 아! 털고 일어나야 겠구나! 그런 시간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느린 걸음을 가지고 있어서 빠르게 갱신은 못하지만, 주 1회 정도나마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임세원 선생님. 저는 평생에 선생님의 이름을 마음 속에 담겠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다시 일으키시기 위해서, 그 사람들에게 두 번째 삶을 선물해 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던, 숭고한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한 사람 구성원으로, 우리 모두가 정신건강의학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아가는데 노력하겠습니다. 편안히 가세요. 이제는 편안히 쉬세요. 선생님... 따뜻하고 좋은 삶을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19. 01. 05. 고 임세원 교수님을 추모하며.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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