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레옹 (Leon, 1994) 리뷰

시북(허지수) 2019. 10. 22. 00:59

 

(제 영화 리뷰에는 본편 내용이 담겨 있으므로, 안 보신 분은 뒤로가기를 선택하셔도 좋습니다. 죄송합니다. 경어체를 생략했습니다.)

 

 레옹을 보았다. 포스터에는 아름답다고 나와있었지만, 나는 슬프게 느껴졌다. 아, 이제 인생의 좋은 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날들이 별로 남아 있지 않는다면... 그래서 하루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은 훨씬 어렵고,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대단히 힘들다. 여러 책에서도 만날 수 있는 영화 레옹의 명대사는 다음과 같다. "어린 시절의 인생은 원래 힘이 드나요?", "아니, 어른이 되어도 힘이 든단다." 즐거운 경험만 만나는 게 결코 사람의 일생이지 않았다. 흔히 말하기를 좋은 날이 있고, 괴로운 날이 함께 있다.

 

 레옹의 베스트 프렌드는 기르는 화분이다. 그리고, 마틸다가 감히 질투하기를, 나에게도 물을 달라고 요구한다. 두 사람은 장난치고 함께 웃고 소리친다. 그것이 최고의 시간들이고, 최고의 장면임을 나는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 그 자체가 선물과도 같이 기쁘고 감사한 것임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궁금한 점은 왜 마틸다는 동생의 복수를 하러 갔을까? 하는 의문이다. 강자의 위선과 역겨움을 보았을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시도해보고 싶었을까? 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함을 선택한 것일까? 영화 내 대사에서 힌트를 찾자면, 일단 마틸다가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달려드는 성격이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는 있다. 다르게 본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현실을 착각한 것이다. 놀랍고 무서운 통찰은, 나이 든 성인도 이러한 자신만의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판단의 실수로 인해, 빚더미에 앉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입히기도 한다. 뛰어든다는 것은 찬사받는 가치 중에 하나지만, 잠시 멈추어 사색한다는 것 역시 중요한 가치임을 되돌아보게 된다.

 

 사랑하는 소녀 마틸다를 지키기 위해서 레옹은 200명과 싸워나간다.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대리 복수이자 소중한 바람을, 주인공 답게 대신 완수한다. 예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 책에서 벌을 당할 때, 대신해서 앞장서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그가 남을 대신해서 얻어터졌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매를 면하게 되는 교도소 내의 장면이었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란 내게 어렵지만, 레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대신 맞서기도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오래도록 리뷰를 길고 알차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그 굴레를 벗게 되니,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지 모른다. 긴 글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그냥 느낀 바만 담담하게 남겨놓아도, 그것도 때로는 괜찮은 리뷰가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정에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람을 알고 있다. 그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괴로운 일들의 연속이었을 테고,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손목이라도 긋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 조차 변할 수 있다고 믿는데, 그 구원은 바로 타인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좋은 관계, 진짜 사랑, 대신해서 나서주는 든든함, 그렇게 연결되어 있기에, 영화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서 배가 따뜻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인생에는 따뜻함이 있구나를 몸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약한 자의 친구가 되어줄 수 있기를. 그 기도를 끝으로 이만 마친다. Daum평점 9.4의 압도적 영화. 누군가 살려달라고 문을 두드릴 때, 나는 물론 고민하겠지만, 문을 열어줄 따뜻함으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기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없더라도, 힘든 그 한 사람에게 눈을 맞추며, 다시 힘내라고, 말해줄 수 있기를. / 2019. 10. 22.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