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다키스트 아워 (Darkest Hour, 2017) 리뷰

시북(허지수) 2019. 11. 29. 19:56

 

 제 리뷰에는 영화 본편 이야기가 있으므로, 미시청이신 분은 주의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채널CGV에서 TV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다키스트 아워를 꽤 늦은 시간에 방영해 주었다. 고맙게도...

 처칠의 시간을 매우 고농도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영화이고, 재미를 따지시는 분께는 미안하지만 다른 영화 고르시는 게 낫겠다 싶다.

 나는 로튼토마토 85%의 신선함! 을 믿고 시청했지만.... 꽤 보기 좋게(?) 배신 당해서, 엄청난 졸음과 사투해야만 했다. 처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준다는 느낌이었고... 음, 살짝 다큐멘터리 보는 기분도 있었다. 처칠하면 당장 생각나는 것이 두 개 있다. 첫째는, 네버, 네버, 네버 기브 업의 아이콘이라는 점. 둘째는 그가 (정서적으로 바이폴라) 즉,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 고약한 성질이 영화 내내 펼쳐져서, 아리따운 타자 치는 비서가 눈물을 보이고 만다. 게다가 미움 받는 것을 각오하고, 쓴소리, 단소리를 섞어서 사용한다. 상황 판단력도 어긋나 있어서, 부정적인 정보에 침착하게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각에서는 어서 히틀러와 협상하라는 악마의 속삭임이 계속된다. 내가 처칠의 입장이라도 미칠 것 같은 스트레스가 느껴질 정도로 영화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게리 올드만 형님의 끝내주는 연기도 대단하다.

 

 벨기에가 함락되고, 저 강력한 프랑스 군대가 넘어진 그 날. 그 하루 하루들 앞에서 처칠은 어떻게 해서, 절대로 굴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수 많은 항복의 속삭임 앞에서 그도 괴로워 했다는 점에서 나는 위안이 되기도 했다. 사람은 누구나 나약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처칠의 비장의 한 수는 지하철 타기였다.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들을 줄 알았다. 시민들의 값진 항전의 의지가 처칠을 바로 서게 했고, 영국을 전쟁에서 이기게 만들었다. 좋은 국민들이 좋은 지도자를 얻는 이치가 아마 영화에 담겨있지 않나 싶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에서 표현된 처칠의 명언은 정말 정말 빛난다. 흐릿한 기억을 되짚어 요점만 각색한다면 - 싸우다가 지게 되더라도 그 나라는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며, 한편 항복하여 안일함을 선택한 나라는 역사에서 지워진다는 것이다. 영국은 싸워온 나라였다는 이야기다. 계속 일어서 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세계 공용어로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표준시 0이 영국이 되지 않았던가. 피를 흘리지 않고도 명예혁명을 이룬 나라이기도 하지 않은가. EU라는 역사의 길 앞에서도, 승부수를 과감히 던져놓지 않았던가. 그 결단의 수십 년 후를 인간이 예측할 수 없기에... 나는 욕심 같아서는 좀 더 오래 살아내고 싶다. 과연 영국은 왕따가 될 것인지, 또 일어서는지 매우 궁금하기 때문이다.

 

 처칠 총리 편에 누가 있었던가... 그는 오직 싸워야 한다고 끝없이 외치는 광야의 한 사람이었는데도, 끝내 왕실의 지지를 얻어낸다. 링컨처럼 반대편에게도 박수 받는 사람이 되었다. 링컨, 처칠, 그리고.... 메르켈.... 그런 선진국의 나라들은 반대편의 이야기까지 헤아릴 줄 안다. 그 정치력이 너무 부러운 것이었다. 나라를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좌파가 우파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혜롭게 좀 머리를 맞대면서 헤쳐나가면 무엇이 그리 불편하길래, 편을 가르고 싸우느라 정신이 이토록 없단 말인가. 지혜로운 자의 입을 빌린다면, 망국의 나라는 이미 그 내부에서 부터 무너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출산률 0.9를 찍으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는 이 나라가 참 가슴 아프다. 이것은 희망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다키스트 아워가 지나고 있는게 아닐까. 우리는 처칠 같은 지도자를 만날 자격이 있을까. 독재자 앞에서 기죽지 말고, 우리의 요구를 당당히 요구하면 안 되는 것일까. 미국의 지도자 절반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완벽하지 않기에... 약점이 분명히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단을 내리기에, 인생이란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처칠은 그 어둠의 시간을 견디고, 전쟁을 승리고 이끌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러면서도 불행한 삶이었다고 후에 괴로워 한다....

 

 아무리봐도 그 타이밍에 바이폴라를 겪고 있는 처칠을 지도자로 앉히는 영국이야말로, 위대함의 원천이라 생각하며,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이 된다. 합리적 판단을 능가하는 것이 때때로 있을지니, 그것은 승리를 믿고, 국민을 이끌어가는 진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처칠을 몽상가로 욕을 퍼붓겠지만.... 그는 이기기 위해서라면, 모든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한 마디 한 마디에 혼신을 담아냈다. 나는 처칠만큼의 용강함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지만.... 언어에 희망을 담겠다는 태도만큼은 단단히 배웠다.

 

 분명히 잠과 사투하면서 봤던 영화였지만, 이토록 할 말이 많았던 것을 돌아보니, 처칠의 담대함을 사랑했나보다. 부디 우리의 영혼도 빛나는 강건함을 갖고, 자신안의 어둠을 바라보더라도, 그것을 끌어안고, 다시 할 수 있는 일들 앞에 훌륭히 서 보기를 / 2019. 11. 29. 영화광 리뷰어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