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어렵다. 사는 것도 어려운데, 고전 게임도 어려우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물론, 따져보면 당연한 일이다. 청동으로 만들었다는 구리 검 하나 쥐고, 먼 곳을 향해서 용감하게 뛰어들었으니 피투성이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HP 1 남을 때까지 분투해봤으나 별 수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다시 저장 데이터를 불러와서, 꽤 많이 노력했다. 좀 더 강력한 쇠도끼를 손에 들었고, 더욱 레벨을 높이니까, 초반의 강적인 해골도 거뜬하게 물리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달콤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현실에서는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존재한다. 나만 해도 총명한 줄 알고, 시험을 여러 번 보았으나, 성취는 이루지 못했다. 그래도 살아가며 알게 된 것은, 일류대학교를 나오더라도 삶의 행복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겪게 되었다. 심지어 일을 못할 수도 있다니 참 신기했다. 학력이라는 간판 보다는, 지혜로운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나는 좋다. 관점이라는 단어는 좀 어렵지만, 앞에서 혹은 옆에서만 보지 말고, 위에서도 보라는 뜻이 아닐까. 저 위에서 보면 인생이 짧고,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가니, 할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내가 잘났다는 착각의 늪에서 마침내 서서히 벗어나게 된다. 사실, 세상은 나한테 관심이 없다. 반대로, 내가 사명감을 가지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아프신 어머니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매일 곤란함을 마주할 뿐이다.
아프신 어머니가 오늘도 맛있는 것 먹고 싶다고 조른다. 나는 부자가 아닌터라, 좋아하시는 치킨 같은 것을 매일 사드리진 못한다. 오늘은 딸기잼을 바른 쿠키로 타협했고, 요즘은 주 1회 정도 효도 치킨을 선물하곤 한다. 더이상 어머니는 혼자 밥을 챙겨 드시지 못한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며, 날짜 감각이 없어지신 지는 한참 되었다. 어머님의 외출도 매우 삼가하고 있는데, 실종되신 적이 있어서, 정말 아찔한 경험도 했다. 10대 시절에는 삶이 이렇게 가혹한 지 전혀 몰랐다. 어머니가 계속 착하고 다정하셔서, 내가 공부하고 돌아올 때면, 따뜻한 계란을 얹은 맛있는 비빔밥을 계속 주실 것이라 단단히 착각했다. 이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가족들이 번갈아 어머니 밥을 잘 챙겨주는게 일상이다.
오늘 보호사 선생님은 어머니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하였다. 어머니의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비논리적이고, 때로는 비현실적이기 까지 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습관처럼 하는데, 주의를 줘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지남력이 떨어져 계시기에, 이런 괴로운 순간들이 일상에서 반복될수록, 솔직히 말해 무력감이 든다. 약물로도 바로 잡을 수 없는 일들이 있다고, 의사 선생님은 어렵게 말씀을 꺼내셨다. 그래서 결론을 내린 게, 효도 치킨이라도 가끔 선물해서 웃음 짓는 일이라도 만들자.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무력감의 반댓말은 성취감이 아닐까. 내가 1986년 원작인 드래곤퀘스트1 에 도전해 보는 것도 일상의 무력감에 저항하기 위한 내 나름의 선택이다. 계속 독서 중인,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에 의하면, 우리가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일은 어린 시절 놀이의 재연 혹은 확장인 경우가 많다 라고 써 있다. 사진의 DQ1 재연은 어쨌든 신나는 일이다. 한글로도 할 수 있고, 편의성도 매우 개선되었다. 패미콤으로 DQ 초기 시리즈를 해본 사람들은 데이터 저장하기 위해서, 흰 종이 빼곡히 히라가나를 적었던 추억이 있다. 80년대에는 롤플레잉 게임 하기가 그렇게 번거로웠는데, 30년의 세월이 흐르니까, 거의 뭐 천국에 있는 느낌이다.
정혜윤 작가는 첫 장 책을 열며 선배의 말을 빌려 이런 글을 남겨놓았다. "나의 지혜는, 내가 읽었다고 착각한 책을 다시 읽는 데서 나왔다."
긴 서론이었고, 본론은 오히려 짧다. 제목과 같다. 성취감, 즐거움, 지혜로움은, 내가 플레이 했었다고 착각한 게임을 다시 해보는데서 나온다! 이것이 30년 게이머의 결론이다. 한 번만 더 정혜윤 작가의 표현을 가져온다면, "거룩함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사소한 행동도, 작은 기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도움을 더더욱 간절히 필요로 한다." 우리의 영혼이 반짝이기 위하여, 작가는 "도우며 살기"를 소개했다.
"하지만 행복하게 노는 와중에도 너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써서는 안 되고
네 좋은 친구들인 박해받는 사람들과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걸 항상 잊지 마라
이런 인생의 투쟁 가운데서 너는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사랑하고 또 사랑받게 될 거란다."
(하워드 진, 미국 민중사 2권. 정혜윤 저.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위대한 개츠비 편 마무리 중에서. 발췌.)
신이 기대하는 나의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데레사 수녀식으로 쓴다면, 그것은 성공과는 무관하게 도전하는 것이다.
목사님께서는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 고, 아예 핀포인트로 콕 집어주셨다.
글을 한 편 제대로 쓰는 데는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항상 웃으며 조각을 하는 100세를 앞둔 나무 조각가는, 조각품 하나 만드는데 2년이 걸린 적이 있다며 웃었다고 한다.
그래. 맞다. 일주일에 한 편이라도 좀 더 괜찮은 글을 남기며, 행복하게 산다면 좋겠다.
내 험한 인생의 투쟁이, 나에게만 속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나와 다른 사람을 돕는 글쓰기에 앞으로 도전했으면 좋겠다.
정신건강의학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아픈 어머니를 끝까지 사랑하게 되는 나의 40대 여정이 피어나기를 이 시간 기도한다.
- 2020. 01. 17.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