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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의 아비는 즐거울 것이요 (잠언23:22-25)

 

기독교에서 제일가는 계명은 무엇이겠습니까? 십계명 중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십계명을 안 지켜도 되지 않나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럼 왜 주님은 사랑을 강조하셨지요?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성경의 대강령이라고 하셨지요? “너는 나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계명의 말씀을 강조하시지 않고 왜 사랑을 강조하셨지요? 그것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셨지요?

 

실제로 주님은 사랑을 강조하셨는데 사람,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으로 풀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건 너무나 당연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구약의 십계명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거하지 말고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은 있는데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옛계명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하신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말씀이 이겁니다. 잘 보시면 십계명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들은 한마디로 하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씁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구체적인 표시가 바로 살인하지 않고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않고 도둑질 강도짓 하지 않고 거짓증언해서 이웃을 해하려 하지 않고 ...그렇다면 그 앞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하는 뭡니까?

 

크게 보아 ‘네 이웃’이라고 한 그 범위에서 제일 가까운 분이 바로 부모님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나머지를 이웃으로 본다면 나 말고 가장 가까운 분이 바로 나의 부모님이란 겁니다.

 

그리고 십계명의 말씀을 잘 보시면 그 밑에는 전부 하지 말라고 금지를 했는데 여기서 유일하게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하라고 하십니다. 만일 밑에 하고 같은 방식으로 글을 쓴다면 부모에게 섭섭하게 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그런 식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경하라고 주문하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믿는이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제일 첫계명이라는 겁니다. 제일 첫계명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 지키라는 겁니다. 살인보다 간음 금지보다 우선하여 지킬 것을 요구하시는 겁니다. 게다가 하라고 하신 것을 하면 상도 주어집니다.

 

왜냐면 이건 분명 주님의 명령이지만 금지가 아니라 권장이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정책의도에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지지하는 이에게 나라는 당연히 포상을 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왕이신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정잭이 바로 효도입니다. 여기에 주시는 상급도 명시가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땅도 주시고 소득도 많게 하시고 수명도 늘려 주시고 그 돈 쓰라고 건강도 주시고. 그러니까 이건 정말이지 획기적인 복받기 방법입니다. 그 밑의 ~하지마라는 걸 안해도 아무 상도 안 주십니다. 다만 금지명령을 어기니까 벌은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에서도 부모공경, 효도는 차원을 달리하는 법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인을 안 했다고 정부에서 훈장을 받는 일이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게 왜 당연합니까? 그건 살인금지가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의 생명도 보호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지난 주일이 어버이 주일인데 우리가 석달만에 교회의 문을 연다고 미처 어버이 주일이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오늘은 또 교사주일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교회는 주일학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사주일도 그냥 지나가도 됩니다.

 

그랬는데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장려하고 이를 기념하기위한 어버이 주일을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 일주일 늦게 어버이 주일을 지킵니다. 교회의 사명 중의 하나가 어버이에 대한 효도를 장려하는 것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까?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데도 효도는 아주 중요합니다. 어버이는 하나님이 지상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양육하여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도록 순하고 예의바르고 착한 사람 만들도록, 하나님 나라의 기둥으로 쓰임받는 멋진 사람으로 만들도록 하신 귀한 분입니다.

 

미국애들은 정말 정말 예의가 없습니다. 잘알고 있는 어른을 봐도 인사를 안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어른이 먼저 인사합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그냥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주고는 가버립니다. 그래도 인사를 받아주는 것만 해도 황송한 실정입니다.

 

뭐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우리를 보호하고 양육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워내도록 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버이에게 사랑과 효성을 다하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거창하게 효도라고 하는데 사실은 해야 할 당연한 도리,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인간의 도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걸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라는 겁니다.

 

1.아버지에게 순종하고

22절에 보니까 “너는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여기서 본문이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뜻을 품고 있습니다. 뭐냐면 먼저 ‘너는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에서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근거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생명을 아버지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고 만세 전에 이미 선택된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초자연적으로 보내신게 아니라 아버지의 자녀로 나게 하셨습니다.

 

손오공처럼 바위에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어머니의 태에서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생명을 부모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이라고 하지 않고 ‘청종’이라고 했습니다. 순종이나 청종이나 그게 그거같아 보이지만 엄밀히 의도하는 바가 다릅니다. 순종은 그냥 모든 말에 순종하는 걸 말하지만 청종은 부모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에 대한 순종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아니라 청종이라고 적었습니다. 듣고 순종한다.

 

이스라엘에서 부모는 특히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하나님의 법과 지혜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법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아버지에 대해서 적었으니 다음은 어머니에 대해서 적을 겁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아버지에게는 순종하라고 하고는 어머니는 우습게 여기지 말라고 하는 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막 나가는 인생도 어머니를 우습게 여기지는 않을텐데 정말 듣기 거북한 말입니다. 왜일까요?

 

여기서 약간 우리가 해석을 다르게 해본다면 원래는 이런 뜻입니다. 무조건 늙은 어머니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리고 네 어머니가 늙게 되어도 멸시하지 말라” 이러니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됩니다.

 

저 윗동네의 아주 유명한 목사의 어머니가 양로원에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양로원에서의 그 수모는 제가 들었습니다. 그 아들은 대형교회 목사고 딸은 유명한 권사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세상사람이 다 알만한 사람이고 부자입니다. 둘 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금을 온몸에 둘둘 감고 양로원에 있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금이 달가울까요? 아들딸이 더 달가울까요? 황금을 둘둘 감아서 양로원에 보내놓으면 자식들 마음에 위로가 됩니까?

 

요즘은 부모가 늙게 되면 무슨 양로원에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미디어에서부터 먼저 선동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니 너도 그렇게 해라, 이게 대세다. 그러니 전혀 나쁜 것이 아니다. 세태가 그런데 너만 유별나게 굴지 않아도 된다” 이런 식의 분위기를 띄웁니다.

 

안 그래도 노모를 모시기가 어렵고 싫은데 잘됐다고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냅니다. 솔직히 목사의 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그건 절대로 잘못된 겁니다. 치매가 걸린 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은 일종의 치료행위라고 할 수 있지만 멀쩡한 어머니를 단지 늙어서 기력이 쇠하고 뭐든지 빨리하지 못하고 느리게 한다는 이유로 보낸다는 것은 하나님이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입니다.

 

그걸 하나님은 불효라고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정의하십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효도가 되는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이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헤집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요즘 아들보다 딸이 더 각광받는 이유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것을 싫어하기에 아들이 어머니를 외면하는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는 아니고 세상에서. 그래요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런 패륜을 저지를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도 복을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는 분이 있었는데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무심코 하는 말이 자기 시어머니를 보고 자꾸 ”그 여자 그 여자“라고 합니다. 정말이지 듣기가 거북하고 참느라 혼났습니다. 도저히 제 입에서 ’그렇지요‘ 소리가 안 나옵니다. 슬픕니다. 시월드라고 부르지만 말고 서로 사랑하며 살 수는 없나요?

 

’네 이웃을 네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생판 남보다 못한 시댁 식구입니까? 남보다 못한 처가 식구들입니까? 그래서 사랑은커녕 미워하는 겁니까?

 

어머니는 자식을 키울 때 손해라는 개념을 아예 가지지 않고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자기의 젊음과 경력을 희생하며 오로지 사랑으로 애정으로 키운 아들에게 늙어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입니다. 성도는 놔두고 인간이라면 해서는 안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십계명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첫 번 제일 중요한 계명으로 효도를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효도를 반드시 해야 되기 때문에? 효도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 대신에 주신 부모이기 때문에? 하하, 모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본성을 아시고 그들의 사악함을 이길 당근을 제시한 것입니다.

 

효도하기가 너무나 어렵고 사람들이 싫어하므로 ”너희가 효도하면 내가 복을 주께 그래도 안할래?“ 이렇게 된 겁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거하면 복주께 하신게 세 개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효도입니다.

어때요? 뭔가 말이 되는 것 같습니까? 오죽 했으면 하나님이 인간이 당연히 해야 할 도리를 하는데 상급을 제시하셨을까요? 너무 너무 안하니까 하게 할려고.

 

요즘 노부모를 모시는 가정에 수당이니 세금공제니 하는 혜택을 정부에서 주는 것하고 비슷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계명에서 제시한 복이 당연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건 맞습니다. 그러나 본질은 비슷합니다.

 

이 세상 정부도 결국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고 하나님이 자기의 권위를 위임하셔서 권선징악을 실현하도록 하신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착한 일을 하도록 권장하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줌으로써 악을 근절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원래 목적이지요.

 

지금이야 정부가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원래의 목적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하나님은 세상 권위를 세우실 때 바로 이런 일을 하도록 의도하신 것입니다.

 

3.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라는 말은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서로 대조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라 그리고 팔지 말라‘ 그러니까 ’사다‘와 ’팔다‘라는 두 대조되는 동사를 이용해서 진리라는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 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걸 돈주고 산다는 말이 된 것은 진리를 소유하기 위해 어떤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사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거저 되는게 아니고 댓가가 필요하다는 말도 됩니다. 그 정도로 진리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일단 진리를 소유했다면 이 진리를 다른 것으로 바꾸지 말라는 겁니다. 판다는 것에는 돈을 받고 바꾼다는 의미가 있지요? 돈도 상당히 귀한 것이고 중요한 것입니다만 돈으로는 바꿀 수 없을만큼 소중하고 귀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이게 깨지면 하나님이 만드신 사회가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진리는 무엇보다 더 귀중한 것이기에 돈으로 감히 환산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많은 돈을 받아도 진리를 잃는 것에 비할 바가 못되는 겁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리가 그렇게나 소중한 것이야? 그리고 부모에 대한 순종과 존중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진리에 대한 말은 뭐야? 성경의 내용은 도저히 뜬구름 잡는 것 같아서 이해가 안돼!

 

천만의 말씀입니다. 앞에 아비의 말을 청종하라고 하지요? 청종은 ’뭘 듣고 순종하는걸‘ 말하는 겁니다. 바로 아버지가 하는 말이 바로 그냥 말이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말입니다. 그걸 지금 본 절에서 진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 귀한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부모님의 소중함도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님이 성경을 자녀에게 가르치면서 돈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저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거저받은 그 말씀이, 어쩌면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는 그 진리의 말씀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배라는 것을 안다면 그 부모님의 거저인 듯이 보이는 가르침, 진리의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 인줄 안다면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오랫동안 가슴에 사무칠 것입니다.

 

사실 부모에게 있어 자식 농사는 참 어렵습니다. 인간의 혀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말을 안 들으면 국가는 형벌로 사람들에게 말을 듣게 합니다.

 

그래도 잘 안들어서 법원이니 교도소니 하는 곳이 매우 바쁩니다. 벌을 줘도 그 모양인데 벌도 안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까요? 그러니 부모의 말을 자녀들이 소중하게 순종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본문은 계속해서 부모님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진리를 가르치시니 그 말씀에 청종하고 그리고 어머니가 비록 늙어서 그 말씀을 가르쳐도 역시나 청종할 것입니다. 아는게 없다고 늙었다고 우습게 여기고 잔소리로 여기고 경히 여긴다면 우리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 역시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게 하려면, 그들을 영화롭게 하려면 우리가 의롭게 행동하고 지혜롭게 살면 됩니다. 본문에서 아비만 기록하고 있지만 부모님 모두에게 이 말을 적용해도 좋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지금의 초등학교를 그 당시엔 국민학교라고 불렀습니다. 국민은 사실 좋지 않은 말입니다. 왜인들이 ’황국신민‘이라고 불렀는데 그 준말이 발 국민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국민이 ’나라의 사람‘이란 말이니까 그냥 우리가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일제의 잔재라고 해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는데 제가 6학년때 신사임당, 즉 사임당 신씨, 율곡 이이의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나와서 발표하는 친구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니는 신사임당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하고 ~하신 좋으신 분입니다“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곁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러분의 어머니가 신 사임당 보다는 못하다는 말은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이이처럼 유명하게 되면 여러분의 어머니 역시 신사임당처럼 훌륭한 여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때의 일이 기억에 납니다. 그래요, 우리네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 나라와 가정의 아픔을 다 이기고 홀로 그 무게를 견뎌내며 오늘의 우리를, 오늘의 이 나라를 만드신 분들입니다.

 

자기는 안입고 안먹고 근검절약하고 그 돈으로 자기의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 투자하신 분들입니다. 제사 지내고 남성 중심의 폭압적 가정에 들어가 오로지 신앙 하나로 사랑 하나로 희생하며 인내해서 오늘의 교회를, 이 땅의 교회를 만드신 분들입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발전하게 된 것도 사실은 우리 부모님의 희생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네 어머니가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건 우리가 유명하지 못해서이지 어머니들의 노력이 보잘 것 없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두가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의인의 아비“ 그리고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

그러니까 의인과 지혜로운 자가 같은 뜻이 되는 겁니다. 얼핏 생각하면 의인과 지혜로운 자는 다른 의미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은 같다고 합니다. 의인과 지혜로운 자가 같다고요?

 

의인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야 말로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이가 바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이제 마지막으로 본문은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말합니다. 앞에서 24절 ”의인의 아비는“이라고 해서 아버지만 거론했습니다. 혹시 약간 섭섭한 어머니들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너를 낳은 어미“라고 어머니를 거론합니다. 부모라고 했으면 족하지요 그런데도 어머니를 더 넣은 것은 앞 구절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이전의 사회가 남성 중심의 사회였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어머니들의 희생과 사랑으로 가정이 영위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기위해서는 뭐가 필요합니까?

본절에 확정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자식이 의로운 자가 되고 지혜로운 자가 되면 부모님은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켜 행하는 의로운 자가 되면 됩니다.

 

우리가 자랄 때 부모님이 하시던 가르침, 부모님이 주시던 교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자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게 웃기게 보입니까? 급변하는 세상, 과학지식이 넘쳐 흐르는 곳에서 케케묵은 성경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정말이지 하찮게 여겨지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면서 기독교인인 록펠러의 집에서 내려오는 열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건 낯이 간지러워서 안되겠고 한번 찾아보십시오. 왜 그 집안이 그렇게 대를 이어가며 엄청난, 세계적 갑부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집안이 되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집안의 교훈은 하나님에 관계된 것이 아주 많습니다.

 

세상이 볼 때 케케묵은 교훈을 가지고 그들은 세상을 이긴 자들입니다. 우리네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을 주세요.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세요. 그러면 그들은 의로운 자가 되고 지혜로운 자가 되며 나라와 집안의 동량이 되고 세상을 구하는 인재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의 기쁨과 즐거움이 될 것이고 교회의 자랑이 될 것이고 하나님을 흐뭇하게 만들게 될 것이며 마음이 흐뭇해 지신 하나님은 더 큰 복으로 상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효도하는 자식이 될 겁니다. 효도해라 효도해라 한다고 효도하겠습니까?

 

이번에 게이 클럽에 가서 코로나에 감염된 아들이, 자기는 안 죽는다고 건강에 자신하는 젊은 아들이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그 어머니를 할머니를 조카를 아버지를 감염시킨 것을 보셨지요?

 

게이클럽에 간 사실이 밝혀져서 취업이 막힐까 봐 코로나 검사받은 사실을 숨겼다가 그가 근무하는 학원, 과외하는 집에 또 그들과 접촉한 수많은 사람들 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코로나검사를 받게 하고 격리하게 하는 엄청난 일들을 저지르는 것을 보세요.

 

정말 곤란하게 부산에도 게이 클럽에 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은게 밝혀졌어요.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자기들의 성취향이 밝혀질까 봐서 익명으로 검사를 하게 해준다고 해도 숨기고 안 하는 것. 아마 그들도 아는 거지요. 검사는 익명으로 해도 코로나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그의 동선과 주변을 격리하고 검사해야 하므로 자기가 게이라는게 밝혀질거라는 사실을.

 

그러니까 아마 숨어서 혹 걸렸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걸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좀 앓고 나면 나을테니까...

 

더 화가 나는 것은 게이들이 뭔 변명과 핑계가 그렇게나 많은지 주저리 주저리 떠들고 있는데 또 그걸 들어주는 당국. 후 화가 납니다. 이상한 옷입고 낯뜨거운 행위를 하면서 떠들던 게이 축제는 광장에서 아주 남보라고 잘하더니만 검사는 안 하고 아직도 숨어 있는 이들이 너무 많아요.

 

아무튼 이번 코로나 사태로 게이들이나 사회의 음지에 독버섯처럼 자생하던 각종 사회악들이 조금은 정화가 되고 또 사회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행위는 결국 사회를 멸망으로 이끄는 길임을 알게 했다는 정도?

 

우리 빌딩8층에서 그렇게나 안 나간다고 ’법대로 해라‘고 난리를 치던 신천지 문화원이 지난 주일날 이사를 갔습니다. 그동안도 폐쇄는 했지만 사태가 잠잠해지면 다시 집회로 모일까 봐서 솔직히 염려가 되었는데 알아서 이사를 가주니까 얼마나 감사한지...누구에게요? 하나님에게. 신천지에게 감사한게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오해하면 안됩니다.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신천지와 공생해야 했을뻔 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주일날 아무것도 모르는 신천지 교육생들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참 힘들었답니다. 보는데 이들이 너무 불쌍한 겁니다. 청춘을 사교에 빠져서 날리고 나중에 나이들어 후회할걸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픕니다. 그들이 너무 착해 보여서 슬펐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뭐라고 말도 못하겠고 속만 앓았는데 이제 당당히 우리 교회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방 빼‘라고 말하게 되었다는게 얼마나 감사합니까?

 

제가 게이들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설교를 해도 굳이 비난해야 하나, 게이들이 알고 보면 착하다고 말하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런 말이 쑥 들어가 버렸습니다. 사회에서 다시는 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되느니 뭐니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겁니다.

 

게이를 지지하면 깨어있는 지식인처럼 느껴집니까? 천만에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다면 이런 사태는 절대로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그래도 소 잃고서도 외양간은 고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자라는 악들은 일소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입니다. 인간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는 절대적인 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역할을 우리 부모님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님의 교훈을 듣고 순종함으로 자라면 집안이 잘되고 자녀가 잘되고 그 사회가 잘되고 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제가 과장법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여기 정관에는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에 이제껏 단 한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각지의 성도들 때문에, 이 나라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 때문에 이 나라가 안전하고 부흥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도 부모님들의 노고가 필요합니다. 이제껏 수고해 주신 우리 부모님들 앞으로도 수고해 주시기를 바라며 그들의 노고를 우리 하나님이 결코 잊지 않으시고 복 주실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의 땀과 눈물과 기도가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결실로 우리 가정과 사회가 나라와 민족이 새롭게 재충전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아름답고 밝은 길로만 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모님 앞에서 사회 앞에서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집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홍종일 목사님 2020년 5월 17일 주일 설교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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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임. 올린이의 이야기 (시북의 이야기)

 

주일 저녁에 넷플릭스 정기 회원이라 영화를 한 편 봅니다. 오래 된 액션 영화 02년 작품 스파이더맨 입니다. 삼촌이 주인공 아들을 키우는데, 누가 봐도 삼촌 부부는 기독교 신자 입니다. 힘든 순간 주기도문을 외우고, 아들에게 애써 시간을 내서 교훈을 주려 합니다. 성경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교훈이 참 재밌고 인상적입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입니다.

 

요즘 몇 주 동안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Daum메인 화면에 블로그 소개도 되고, 10,000보 걷기도 제법 열심히 하고 있고, 독서에 열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호회 단톡방에서는 내가 제일 잘 나가~ 라고 자랑(?)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독교 방송에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교만이라고 콕 집어 말씀해 주십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라고 고백하는 태도. 그 겸손의 태도는 이야기를 듣게 해줍니다. 내 가는 길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소중하다고 일깨워 줍니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인 부화 김현정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부드럽지만, 화를 낸다는 모습이 인상적이지요. 자녀를 양육할 때는 다정한 부모가 되어야 하지만,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그거 아냐 라며 화도 내고 야단을 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뭐 어때" 라면서 잘못된 행동 조차 권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불륜 같은 일에도, 내게는 로맨스인걸 이라고 정당화 하기 십상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말, 자식은 부모를 닮아간다... 부모가 책임을 가지고, 양육한다면, 세월이 흘러 자녀는 부모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각성의 순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내로,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내고, 사실 무엇보다 부모가 먼저 효도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무엇보다 큰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조금 두서 없었네요. 조금은 잘난 사람들이라면, 조금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노력해서 세상을 바꿔나간다면 좋겠습니다. / 2020. 05. 어버이 주일 설교에 덧붙이며. 시북 (허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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