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만화·애니

#2 좀비랜드 사가 (2018) 리뷰

시북(허지수) 2020. 6. 13. 23:43

 

 아주 최근에 행복과 관련된 책을 읽었고, 큰 기대는 부메랑처럼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서, 목표를 쉽게 달성하도록 크게 낮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달성하지 못하고 자꾸 실망한다고 해서, 오랜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한 게 정말 좋은걸까 되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호회의 소중한 지인 감꼭지님의 추천작 좀비랜드 사가를 정주행 했지요. (마침 넷플릭스에 있었어요!) 완주 후,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이 작품의 테마는 "실패해도 좋아, 몇 번이고 일어나서, 계속 도전해봐!" 로 압축 정리할 수 있겠네요. 음... 좀 더 보충해서 설명하면, 실패하지 않는 만족감 보다는, 실패하고 상처받는 편이 좋다는 거에요. 그 강력한 메세지에 압도되어, 매우 감동했습니다.

 

 저는 극중의 빨강머리 사쿠라처럼, 운이 없다고 절망한 적이 (그것도 여러 번)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걷지를 못해서 학업을 중단했고, 강제 히키코모리 생활을 몇 년이나 버텨야 했습니다. 비디오게임을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셔서, 게임으로 고통과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20대 시절에는 게임 동호회 활동에 열정을 불태웠고, 덩치도 제법 훌륭히 키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주변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운영을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절망레벨을 그래도 견딜만 했습니다. 30대 시절에 찾아온 어머니의 정신 장애 간병은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좀처럼 적응되지 못했고 (예컨대 꾸준히 어머님의 병세는 나빠졌습니다), 저는 병원옥상까지 올라갈만큼 좌절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어록처럼, "불행은, 견디는 힘이 약하다는 걸 간파하면 더욱더 무겁게 내리누른다." 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불행 앞에서 취미를 권유했습니다. 관점을 바꾸는 것이었죠, 고난의 현실만 바라보지 않는다. 베토벤의 좌우명처럼 "고난을 헤치고 환희로" 까지 뭐, 그 정도로 멋있게 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제 경우 즐거운 일들을 찾아나섰습니다. 만화보기도 취미 선택지 중 하나였죠. 그리고 좀비랜드 사가를 통해 얻은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마음에 오래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인생, 불운해도 좋아, 설혹 내 앞에 존재하는 - 현실이라는 거울에 정면으로 금이가고, 깨지더라도... 인생의 귀중한 비밀은 그 틈으로 아름다운 빛이 들어온다는 것을 깨닫는데 있습니다.

 

 실패해도 얼마든지 괜찮아 라는 강인함을 마음 속에 또박또박 새기고 싶었던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일직선의 인생보다 더 멋진 일들이 있는 게 아닐까요. 내리막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다고요? 그래도 좋습니다. 이를테면, 강상중 선생님의 책표현을 빌려와, 병든 영혼에서 회복되어 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거듭나기의 인생은 얼마나 가치 있는지요! 애니식으로 쓴다면, 좀비가 되었어도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애니의 인상적인 표현으로 리뷰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높은 목표라는 것, 불가능을 꿈꾼다는 것은 - 산을 겨우 넘었다고 생각하는데 또 높은 산이 나타나다니, 마치 산맥을 걷는듯한 기분!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드니까 이만 포기하는 게 정녕 맞을까요. 아니오. 또 일어서서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년 넘게 사용하고 있는 저의 책갈피에는 닥터 지바고의 글귀가 있습니다. 번역해보면 이렇습니다. "희망을 가지는 것, 행동 하는 것. 그것은 불행에 속해 있을 때, 우리가 인간으로써 마땅히 해야하는 일이다." 열심히 노력한 흔적이야말로, 몸에 남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의 나날 속에 무엇보다 행동이 함께 하기를 힘껏 응원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0. 06. 13. 시북 (허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