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영어로 china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제 "메이드 인 차이나" 라고 붙은 상품들을 너무나 쉽게 만나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요즘은 중국산 하면 왠지 모르게 좀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런데 이 china 의 기원이 바로 진나라 라고 합니다. 진은 영어로 하면 chin 인데, 여기서 china 가 된 것이지요. 예컨대 중국의 영토적인 근원이자 짧고 굵게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진나라 이야기 입니다. 왜 짧고 굵냐고요? 천하통일을 한 진나라(BC 221~206)는 옆을 슬쩍 보시다시피 저 짧은 시간에 망하거든요 -_-;
중국의 드라마 :: 진시황
진나라 하면 진시황제가 가장 유명할 것입니다. 중국 최초의 황제로서, 중국의 기본 틀을 정립한 인물이지요. 사진 속 배우는 은근 제가 좋아하는 개그맨 황현희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응?) 농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느 날 진시황이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서 각 나라들을 멸망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이럴리는 없습니다. 춘추전국시대가 정리되어갈 무렵, 이미 진나라는 강자 중의 강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정세 속에서 진시황은 자신에게 주어진 대박같은 기회를 철저하게 잡아냈고, 거기에 올인하는 전략으로서 마침내 황제의 자리까지 오릅니다. 진시황의 중요한 올인 전략은 아래처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진시황의 측근이자 승상까지 오른 이사(李斯)의 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지금이 만년에 한 번 있는 기회다"
또한 제왕의 길로서 이렇게까지 표현합니다 - "태산은 흙 한 줌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높아질 수 있다"
과연 좀 그럴싸 해보이지 않습니까!!!
이것은 해석에 따라서는 이기심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모든 것을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출신국이 다르다고, 좀 이상하게 생겼다고 차별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수용할 때 비로소 태산과도 같아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래서 이후 진나라는 유능하다면 이방인이라도 적극적으로 받아 들였고, 천하통일을 위해서 과감한 돌파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사실 승상 이사도 원래 진나라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이런 의미에서는 진나라의 방안은 확실히 제국다운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부딪힐 수 있는 편이 시스템 적으로는 좀 더 건강해 진다고 할까요? 그 나물에 그 밥만 반복되면 부패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태산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흙 한 줌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정말 보잘 것 없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볼품없는 사람들을 돌아볼 때 비로소 진정한 태산이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권력자들이야 저런 표현을 악용하기 십상이고, 약자들에게 귀를 닫는 경우가 숱하지만 말입니다. 글쎄 나무가 불필요하다고 흙을 멸시하고 몽땅 내어버리고 나면, 그 나무는 무엇으로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여하튼 강력한 법가사상을 바탕으로 중국을 끝내 통일한 진시황은 이후에도 고속으로 많은 것들을 밀어붙이기에 이릅니다. 도량형을 통일 했으며, 군현제를 실시 하는 등 하나의 대제국으로서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만리장성을 완성 시킨 것도 바로 진시황이었지요. 물론 이 성 공사하다가 죽어간 사람들 수 없이 많다고도 하지요 -_-;;; 이제 천하를 제패한 왕은 스스로를 황제 라고 칭하게 됩니다. 중국 최초의 황제가 탄생한 것입니다.
진왕? 아니지요~
진황제? 아니지요~
앞으로 만년을 간다고 확신한 진 제국의 바로 첫 번째 황제!
역사에 남는 "진 시 황 제"가 된 것입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의 새로운 제국은 무시무시 했습니다. 정말로 무겁고도 엄격한 법으로 다스렸고, 이런저런 토목공사에 많은 백성들은 골병이 들 지경이었지요. 거침없이 진제국은 완성되어 갔습니다. 6개국의 문자도 진 제국의 새로운 문자로 통일 시켜버렸고, 드디어 중국은 영토 면에서 하나로 완성된 커다란 제국 이 되었습니다.
이런 엄청난 속도의 개혁에 비판도 많았습니다. 특히 유학자들은 이런 새로운 강압질서를 폭정이라 비판하며 진시황제 및 승상 이사의 심기를 건드리곤 했는데, 결국 참다못해 뚜껑 열린 이사는 분서 를 건의! 수 많은 책들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사상 통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잘 사용되던 교과서가 갑자기 왜곡되었다느니 하면서 사상을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사람들 있지요. 그런가하면 장하준 교수의 책을 금서로 뜬금없이 지정하지를 않나 -_-;;; 진나라가 제국을 만든 이후, 이렇게 국가적으로 분서 등을 밀어붙이면서 좋은 말만 듣고 싶어했으나... 결국 시황제 이후 15년 만에 망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 입니다.
역사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복합적이지요. 우리나라 건국 당시에도 가슴아픈 진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날의 친일파가 청산되기는 커녕 집권자가 되어버린 다던가 말입니다... -_-; 중국도 신해혁명 당시 구세력인 위안스카이가 정권을 잡은 바 있습니다, 사람들은 혁명이라는 기회를 틈타서 기회적으로 변신하기 일쑤였다고 루쉰은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성할 껀 뼈아프게 반성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오늘을 바로잡고, 그럼에도 내일을 희망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해봅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지요. 진나라는 굉장히 빨리 망하고 말았지만, 진시황의 병마용 등은 아직도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그 시절을 되새겨 볼 수 있게 해줍니다. 1974년 발견된 병마용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 모형이 진시황을 지키고 있는데, 이 모형들 얼굴 표정이 모두 다르다고 합니다. 사진을 한 번 살펴보면,
아직도 발굴 중이라고 합니다 (...)
이렇듯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던 진시황제도 당연히 죽음을 피할 수 없었으며, 진나라는 이미 진승과 오광의 난 등을 비롯해서 많은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고, 엄청난 공사들에 노동으로 세금으로 돈대기도 힘들고, 게다가 유명한 말인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 바로 그겁니다~ 이렇듯 진나라는 저물어 가고, 뒤이어서 한나라의 시대가 막이 오릅니다. 진나라가 중국 영토를 하나로 완성시킨 것이었다면, 한나라는 중국 문화를 하나로 완성시킨 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한나라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살펴보고.
마치면서. 역사를 살펴보면 복합적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도 존재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는 영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악당이기도 하지요. 진시황은 예전에는 폭군의 이미지가 굉장히 부각되었으나, 최근에는 그의 통일을 향한 진취성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역사는 단순한 텍스트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에, 그것을 보면서 얻어가는 교훈은 저마다가 다를 것입니다. 하여튼 사람들의 동의없이 가혹하게 밀어붙이는 독단은 그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만은 어쩌면 역사의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혹여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지적을 환영합니다.
사진출처 : 한국어 위키피디아, Daum 영화
내용참고 :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루쉰전(다섯수레), 2천년의강의(글항아리), EBSi 세계사 이희명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