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축구를 정말 잘 하는 나라로 인식되곤 합니다. 크라잉넛의 노래 "룩셈부르크"에도 월드컵 연패를 해버리는 브라질 축구를 언급하고 있지요 (웃음) 월드컵 우승트로피도 브라질이 가장 많기도 합니다만,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강팀으로 세대를 이어서 계속 내려오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과거의 절대적 강호로 꼽히던 헝가리는 이제 FIFA랭킹 저 아래에 있지만, 브라질은 첫 우승 시절인 펠레, 가린샤 시절부터, 70년대 토스탕, 자일징요 등이 있었고, 82년에는 지코,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환상의 멤버가 있었고, 2002년에는 호나우두, 히바우두, 호나우지뉴 3R, 2006년에는 카카 등의 화려한 스타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브라질 스타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공격수 토스탕에 대해서 잠깐 살펴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Tostao (토스탕, 토스타오 등으로 불립니다)
 생년월일 : 1947년 1월 25일
 신장/체중 : 172cm / 69kg
 포지션 : FW
 국적 : 브라질
 국가대표 : 54시합 32득점

 놀라운 축구실력, 그리고 안타까운 이야기. 토스탕 편.

 남미에서는 1971년부터 남미최우수선수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마라도나, 지코, 칠라베르트, 리켈메, 카푸 등 유명한 선수들이 당대 최고의 남미선수로 선정되곤 했습니다. 1971년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토스탕"이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70년 무렵 가장 공을 잘 차는 남미 선수 중 한 명이었다는 의미입니다.

 키가 작아서 "작은 동전"이라고 불렸던 이 선수. 토스탕이라는 말은 작은 동전이라는 뜻입니다. 본명은 사실 아주 길지요. Eduardo Gonçalves de Andrade(한국어위키:에두아르두 곤사우베스 지 안드라데). 에두아르도 곤사우베스.... 그... -_-;; 역시 그냥 토스탕이라고 불러야... 여하튼, 토스탕은 화려한 테크닉으로 이름을 날리던 공격수였지요. 당대 최고수준의 기교파 선수이자, 비범한 축구센스로 팀 승리에 공헌하곤 했습니다.

 우선 클럽팀에서의 활약, 크루제이루 EC의 간판스타 였던 토스탕은 9년동안 활약하며 주리그 5연패에 공헌했으며 (9년간 6회우승), 3번의 득점왕을 차지합니다. 378경기에서 무려 249골이나 넣었지요. 브라질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었던 토스탕이 국가대표로 발탁되어서 활약한 것도 당연했습니다.

 1966년 스무살도 안 된 토스탕은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66년 월드컵에 참가합니다. 골까지 기록한 이 새파란 신동은, 펠레, 가린샤 시대를 이어가는 또 한 명의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게다가 이 무렵인 60년대 후반 국내 경기에서는 20대 초반의 나이로 3번의 득점왕까지 차지했으니... 그야말로 차세대 스타로서 가장 주목 받는 브라질 선수 중 한 명이었지요. 70년 월드컵 예선에서도 펄펄 날면서 팀의 본선진출에 공헌합니다.

 어떤 선수였는지 살펴보면, 경기를 읽는 눈을 가진 공격수 였으며, 무엇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렬한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는 명공격수였습니다. 섬세한 볼터치, 경쾌한 드리블, 정확하고 확실한 슛팅으로 일격을 날렸으며, 전술적인 안목도 뛰어나서 찬스를 만들어 주는 플레이도 팀에게 큰 보탬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25살 무렵에 벌써 국가대표로 50경기를 넘게 소화합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사건만 없었더라면, 많은 기록들이 그의 발 끝에서 더욱 나왔을 텐데...

 1969년 경기 중에 토스탕은 왼쪽 눈을 다치게 됩니다. 공이 그대로 눈쪽을 강타한 것이지요. 결국 망막 박리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시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것을 의미하며, 심하면 시력을 잃어버리는 위험한 부상이었습니다. 두 번의 수술을 거쳤으며, 선수생활의 중대한 갈림길에 섰습니다. 많은 이들은 70년 월드컵에서 물오른 토스탕의 활약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매우 안타까워했습니다.

 부상과의 사투 끝에, 그는 기적적으로 부활합니다. 그리고 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컨디션도 많이 끌어올렸고, 예전처럼 빠르고 기민한 움직임으로 팀에 공헌하는 그 모습이 살아난 것입니다! 1970년 월드컵의 브라질 대표팀은 지금도 역대 최강팀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축구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펠레가 있었고, 전시합 득점을 기록한 자일징요가 있었고, 왼발의 마술사 리베리노, 사령탑 제르송까지... 공격적인 면에서는 가히 사기급 스펙을 자랑했습니다.

 기어이 그들은 일을 냈습니다. 조별리그 3전 전승을 비롯해서, 8강전에서 4골, 4강전에서 3골, 결승전에서도 4골을 넣습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강함이 무엇인지 보여주었지요. 토스탕도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공격진을 이끌어 가던 멋진 모습 덕분에, 브라질에는 펠레뿐만 아니라, 하얀 펠레도 있다 라는 명예로운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환상의 에이스, 하얀 펠레 토스탕이었지요. 2득점을 올렸던 토스탕이지만, 숫자로만 평가할 수 없는게 축구입니다.

 지난 대회 66년 월드컵 우승국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도 - 골을 만드는 찬스를 이끈 훌륭한 드리블 돌파로 승리에 큰 공헌을 했고, 이후 경기에서도 교묘한 테크닉을 살려서 굉장한 어시스트를 많이 해줍니다. 심지어 득점 상황에 꼭 연관된 선수가 토스탕이더라. 라는 이야기까지 있었지요. 기막힌 패스로 결정적 찬스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전방의 센스넘치는 지휘자 다운 활약입니다. 전율적인 70년 브라질 대표팀은, 결국 월드컵 우승 외에도, 역대 가장 강한 팀 중 하나로 불리고 있지요.

 이 월드컵 대회를 끝으로 펠레는 대표팀에서 은퇴했고, 그야말로 포스트 펠레시대가 막이 오릅니다. 토스탕도 브라질 대표팀의 한 축으로서, 20대 중반으로 한참 꽃을 피울 시기가 온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비극이 있었습니다. 다친 왼쪽 눈, 그러니까 망막 박리... 

 결국 왼쪽 눈의 상처는 - 경기를 계속 무리하게 뛸 경우 매우 치명적인 장애 를 낳을 수 있음 - 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1973년, 토스탕은 은퇴를 결심합니다. 불과 26살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손꼽히던 유망한 공격수 토스탕의 비극적 은퇴소식에 브라질은 큰 상심에 빠지고 맙니다. 피부색이 하얗기에 하얀 펠레라고까지 불렸던 선수, 너무 커리어가 빨리 끝나버린 안타까움. 많은 사람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현란한 기술과 위용. 작은 동전 토스탕은 너무 큰 가치를 하는 작은 동전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토스탕을 잃은 이후로 브라질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맙니다. 브라질에서도 토스탕이 다치지 않았더라면, 펠레 이후 시대에서도 브라질이 계속 남미의 왕자로 군림했을 것이라고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일이었습니다. 산술적으로 30대 초반까지만 활약했어도 거의 100 여경기에 50골은 넘게 거뜬히 넣을 수 있는 간판스타였는데... 브라질의 9번 토스탕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은퇴 후에는 의사가 되어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널리스트, 해설자로 종종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기도 합니다. 마치며 70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 페루전 하이라이트 영상을 덧붙여 봅니다. 토스탕이 선제골을 가볍게 어시스트 했고, 두 번째 추가골은 사각에서 가볍게 구석으로 찔러넣으며, 승리를 이끌었지요. 보너스로 유튜브에서 발췌해 덧붙여 봅니다. 애독해 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by 시북 2009.12.22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