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는 추억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만 해도 사모라노, 살라스 라는 공포의 투톱으로 이름을 날렸고, 당시 피파랭킹도 무려 6위까지 치고 올라간 적이 있을 만큼, 다크호스로 불리기에 충분했습니다. 모처럼 칠레의 레전드 스타 이반 사모라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프로필
이름 : Iván Zamorano (이반 사모라노)
생년월일 : 1967년 1월 18일
신장/체중 : 178cm / 73kg
포지션 : FW
국적 : 칠레
국가대표 : 69시합 34득점
BAM BAM! 칠레특급 이반 사모라노 이야기
칠레는 남미의 손꼽히는 명수비수 피게로아가 은퇴한 이후, 한동안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1982년 이후, 남미의 강호들에게 밀려서 축구 약팀으로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지요. 게다가 이른바 로하스 사건이라는 불미스러운 일로 94년 월드컵에는 출장 정지를 먹었던 아픔도 있었고요. 여하튼 이런 약팀인 칠레를 90년대 후반 다시 한 번, 남미의 강자로 끌어올린 원동력의 중심에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반 사모라노가 있습니다.
칠레 현지팀에서 공을 차면서 축구인생을 시작한 사모라노는 1986년 10대 나이로 27골이라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줍니다. 이듬해에는 국가대표로도 발탁되었고요. 젊은이는 골을 넣을 기회도, 인생의 기회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1988년 스위스의 클럽 팀으로 이적했는데, 이 때도 발군의 존재감을 뿜어내며 23골을 기록! 득점왕을 차지! 이 뛰어난 포스를 인정받으며 드디어 스페인의 라리가로 이적하는데 성공합니다. 소속팀은 세비야FC! 큰 무대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던 사모라노는 드디어 1992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에 몸담게 되었습니다.
이 때 부터의 활약상은 매우 유명한 것이며, 사모라노 축구 인생의 절정기라 할 수 있습니다. 첫 시즌부터 엄청난 득점력을 선보이면서 26골이나 넣은 것입니다! 특히 당시 데포르티보에서 뛰고 있던 브라질의 인기스타 베베토와 득점왕 경쟁을 펼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합니다. (득점왕은 29골을 넣은 베베토가 차지)
사모라노는 2년 후, 1994-95시즌에서 다시 한 번 에이스 스트라이커의 포스를 휘날리면서 28골을 작렬! 명예로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피치치"에 빛나는 활약을 펼쳐줍니다. 레알 마드리드도 모처럼 리그우승을 따내었고요. 한 경기에 두 골씩을 넣기도 하고, 득점력이 뛰어났고, 공중전에 매우 강한 모습 때문에 헬리콥터라는 박력 넘치는 별명도 따라 붙습니다.
투쟁심 넘치는 모습과 타오르는 열정, 더욱이 훈남의 포스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도 높고, 팬도 많았지요. 이렇듯 뜨거운 공격수 사모라노는 섹시함을 어필하는 모습까지 갖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돈나가 인정하는 사모라노의 멋진 포스였으니 말 다했지요 :) 훌륭한 축구스타들이 그렇듯이 사모라노도 특유의 개성과 매력이 있던 선수였습니다.
세계에 이름을 날리던 뛰어난 스트라이커 사모라노는 1996년 레알 시대를 뒤로 하고, 세리에A의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토록 잘 나가던 사모라노도 30대가 넘어가면서 조금씩 빛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인테르에서 5시즌 동안 상당히 많은 시합을 출장하지만, 두 자리수 득점을 한 번도 기록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보고 맙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이야기로는, 공격수 "스트라이커"의 번호로 불리는 "9"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습니다.
처음 인터밀란 입단 시에는, 사모라노 9번, 호나우두 10번 이라는 나름의 인정을 받았으나, 이후 로베르토 바조가 이적해 오면서, 사모라노는 등번호 9번을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18번을 달고 뛰면서도 9번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 강해서 1과 8사이에 +를 붙여서 유니폼을 착용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1+8 이렇게 해서라도 9번으로 축구장에 뛰고 싶었던 겁니다. 과연 에이스 스트라이커의 마음가짐!
소속팀에서의 활약은 아쉬웠지만, 여전히 사모라노는 강력한 공격수였습니다. 98년월드컵 남미예선에서 살라스와 함께 23골을 몰아넣으며 본선진출을 이끌었으며, 비록 브라질에게 패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16강 진출까지 올라가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칠레의 월드컵 최고순위는 62년 3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도 와일드카드로 출장해서 6골을 기록, 득점왕에 오르면서, 팀을 동메달로 이끕니다.
이제 그의 축구인생의 후반기 여정입니다. 사모라노는 2001년 멕시코 클럽팀으로 이적합니다. 아무래도 노는 물이 다르다보니, 한층 수준 높은 실력을 보여주면서 인기도 얻고, 30대 중반에 18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모국 칠레의 팀으로 돌아와서 한 시즌을 보내고 현역은퇴를 하게 되었지요. 마지막 은퇴 시합에서는 산티아고에서 5만명의 관중이 모여서 한 시대의 영웅의 은퇴를 아쉬워 했습니다. 칠레에서는 피게로아와 함께 FIFA100에 선정된 선수이기도 합니다.
경건한 가톨릭 신자이고, 인격이 뛰어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은퇴 후, 제2의 인생의 출발로 유니세프의 친선대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그럼 오늘 준비한 이야기를 마칩니다. 독자님들께 늘 감사드립니다.
2010. 06. 16. 초안작성.
2020. 09. 08. 가독성 보완 및 동영상 업데이트 - 축구팬 시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