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기타

[SFC] 택틱스 오우거 헌사

시북(허지수) 2010. 2. 17. 09:49

["희망과 같이 절망이 있고, 슬픔과 같이 영광이 있다." - 택틱스 오우거 이미지 하단 부의 글.]

 나는 커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른바 - 나이듬의 미덕 - 은 자신의 한계를 알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희망을 품고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또한 절망을 맛보는 날이 있다는 것을...
 슬픔 속에서도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견뎌내면서
 기어이 살아가는 그 끈질김은, 반드시 삶의 기쁨을 맛보는 날이 있다는 것을...

 오늘은 한가지 특별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언젠가 적어봐야겠다고 마음먹어왔지만, 그 언젠가 라는 날은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기에, 바로 지금, 제 생각과 기억들을 모두 담아서 몇 자라도 남겨볼까 합니다. 이야기 출발합니다.

 택틱스오우거는 슈퍼패미콤으로 1995년 발매된 작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전이군요.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해왔던 게임 중에 "단일작품"으로는 가장 많이 플레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봐야 플레이 했던 당시가 거진 90년대 중반~후반기였고, 사실 2000년대가 되면서는 게임할 시간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지금에 와서는 그 당시의 1/10도 시간을 제대로 못 내고 있습니다. 하하; 그 때에 비한다면 할 게 많아진게 이유라면 이유겠지요.

 여하튼 이 작품은 참으로 오랫동안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SRPG계에서 경이적이고, 압도적인 완성도를 자랑했기 때문입니다. 깊은 세계관, 절묘한 밸런스, 중후한 사운드,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그래픽, 행동에 따라 달라지는 파격적 시나리오 전개, 도전을 불태우는 100층 던전 등 걸출한 매력들이 가득 들어있는 보물과도 같았던 그야 말로 명작 중의 명작이었습니다. 며칠전, 웹서핑을 하다가 2008년 연말 패미통 결산 자료를 보다가 적잖게 충격을 먹었습니다. 독자가 선택한 Top20 게임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한 번 살펴볼까요.


 몬헌, 파판, 드퀘, 페르소나, 테일즈, 슈로대, 메기솔 등 그야말로 호화로운 타이틀들이 가득합니다만, 유독 SF(슈퍼패미콤)시절의 작품 하나가 떡 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택틱스오우거였지요. 발매된지 10년도 더 지난 타이틀이 PS3, Wii가 뛰고 있는 시대가 왔음에도 오랜시간 독자선정명작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그렇게 울림을 주고 있었습니다.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꼭 한 번 다시 해볼꺼야 라고 다짐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결국 지금에 와서도 다시 해보지는 못하고, 그저 이렇게 리뷰로서 추억을 정리할 수 있음에도 고마워 해야겠다 생각해 봅니다. 꽤 힘들게 정품을 구했었고, 몸이 아파서 잠조차 오지 않을 시절에, 정말 엄청난 몰입감으로 통증조차 잊게 해주었던 명작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더욱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편지에 선생님께 그런 말들을 썼었어요. "신기한 일이 있어요. 믿으실 지 모르겠지만, 진통제를 먹어도 아침까지 고통이 가라앉지 않아서 잠이 안 왔지만, 요즘 하는 게임을 하다보면 통증이 사라지고, 늦은 밤이 되면 어쨌든 잘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보면 좀 웃긴 편지 내용인데, 당시 하던 그 게임이 바로 지금 적고 있는 택틱스오우거 였습니다.

 월등히 뛰어나다 라는 말을 쓸 때, 종종 "절륜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적어도 택틱스오우거는 완성도 면에서는 - 지금까지 나온 숫자를 세기에도 힘든 수 많은 게임들 - 과 견주어봐도 정말 절륜한 작품입니다. 특히 택틱스오우거의 하나의 "상징"인 사자의 궁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최고레벨까지 유닛을 키우고 장비를 맞추었지만, 현기증 나는 난이도와 100층의 끝없는 길이, 그 특유의 웅장하고도 진득한 BGM. 지금 다시 들어봐도 생각이 날 만큼, 너무도 많이 들었던 배경음악이지요. BGM의 일부들은 팬블로그 (http://gamenaruwakimichi.seesaa.net/article/53919978.html) 에서 감상할 수 있으므로 참고. 게다가 50~60층까지 고생 끝에 내려갔다가 순간의 판단미스로 주요 캐릭터 사망... 앞이 하얘지는 멍한 기분의 진수를 맛보았습니다 (...) 마침내 사자의 궁전에서 나올 때는, 흡사 내가 지옥에서라도 나온 기분이었어요 (웃음)

 전술적 완성도도 지극히 뛰어나서, 지형, 시간, 무게, 높이, 속성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 있으며, 각 직업간의 밸런스와 전투의 긴장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 파격적으로 세련되었던 그래픽, 명품 사운드, 정답이 없는 멀티 시나리오... 제가 했던 말을 또 하는 듯 하군요 (...) 지금은 대게 30줄에 접어들었을, 당시 택틱스오우거를 접했던 유저들 중에 일부는, 지금까지도 "가장 최고의 명작을 꼽으라면 이 녀석이다"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대단히 현실적으로 인물을 묘사하기 때문에, 꽤나 충격적이기도 하고요. 이 작품에는 태초부터 타고난 훌륭한 주인공 따위는 없습니다. 즉, 주인공은 정의고 영웅이고 무적이다... 이런 건 없어요.
 
 그래요. 그렇게 간단하고 쉬운 게 우리네 삶이 겠습니까. 다시말해, 결국 인생에서는 선택으로 인해서, 괴로운 순간을 마주해야 하는 그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1번을 선택하든, 2번을 선택하든,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해서 결국 책임과 결과를 마주해야 하고요. 10년동안 꾸준히 1-2시간씩 책을 본 사람과, 10년동안 꾸준히 1-2시간씩 놀기 바빴던 사람은, 훗날 마주해야 할 현실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냉정하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전자의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직히 후자의 놀기 바빴던 사람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말입니다. 결국 그 선택이 낳은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도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존에 가보면 거의 절대적인 극찬이 많지만, 가장 추려내고 추려내서,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조금 더 언급해 보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인생에 대해 중요한 선택을 해야만 했을 때, 적절한 길을 선택할 수 있을까. 라고 하는 - 판단력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가...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알게 될 것입니다 (아마존 리뷰어)"
 흔히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로 판단력을 꼽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판단을 정확히 해내는 쪽이 결국 승리, 성공하는 쪽이 많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파악하고, 현실을 파악하고, 목표를 정해서, 하루를 정직하게 매진하는 쪽이, 결국 나날이 (그게 비록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조금일지라도)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나 갈등, 구조가 달라진다는 전개는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도 너무 흡사하지 않습니까. 성공하는 사람들은 1%가 다르다 라는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일반 사람들과 1%가 다른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을 믿고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여 습관이 되어, 훗날 사랑받고 존경받는 멋진 인생을 만드는 것이지요. 그것을 좋은 말로 인격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주인공이 선이 아닐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또한 악인이 없다는 충격적 세계관을 꼽겠습니다. 뻔한 악당 따위는 없습니다. 전개는 정의 VS 정의 입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고, 플레이어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하여 게임 이상의 - 깊은 세상에 대한 통찰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진짜 순수 악인이라 부를 만한 사람은 0.1%나 될까요. 다만 우리는 서로 세계관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랐던 것이지요. 그 정도의 깊이와 혜안이 택틱스오우거의 세계에 녹아있습니다.

 하여간에, 너무 뛰어난 작품을 접한 후유증 탓에, 이후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지요. FFT라는 명품을 하면서도, 느린 템포와 밝은 화풍에 하다가 손을 뗐고, FFTA, FFTA2 등도 왠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눈높이와 기대치를 미리 좀 낮췄어야 하는데... 오리지널 택틱스오우거가 너무 완성도가 높다보니... 쿨럭. 정통 후속작이 나올 가능성도 지금 시대에 없지야 않겠지만... (판권도 현재 스퀘어에닉스에 있고) 음... 되돌아본다면, 지금까지도 이 택틱스오우거를 작품성으로 능가할 수 있는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언급했듯이, 이 명작은 앞으로도 비디오게임사를 논할 때, 종종 언급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작품이기도 하고요.

 최근 시대에는 유저 편의성이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전략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어쩌면 점점 보기 힘들어 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계속 머리를 쓰면서 진행할 수 있게끔 세밀하게 난이도가 조절되어 있는 SRPG는 만들기가 어렵기도 하고요. SRPG계에서 명작이 드문 것은 밸런스 맞추기가 어려운 탓도 있을 겁니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습니다. 다른 작품은 몰라도 사실 택틱스오우거는 꼭 한 번 시간을 내어서, 10년도 더 지난 지금쯤 플레이를 다시 해보고 싶었습니다. 더 이상 사자의 궁전을 돌 수 있을 만큼의 긴 시간을 만들지도 못하지만, 누군가 1주일 간 긴 휴가를 주고 마음 껏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한다면, 뭐 돈이 좀 있다면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굳이 돈이 없다면, 한 번쯤 1주일 내내 택틱스오우거만 파보고 싶은 그런 바람은 아직도 못내 있네요. 리뷰도 한 번 써보고... 하하, 그러면 이쯤에서 명작에 대한 헌사를 마치겠습니다. (마치고 보니 새삼 더욱 그립네요. 틈틈히 하던 파판13 치우고, 택틱스오우거나 그냥 미친척 하고 다시 해볼까 -_-;;; 끙... 그럼 파판13이 너무 불쌍한가... 쿨럭) - 리뷰어 시북. 2010. 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