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Review]/영화

영화 <미스트> 리뷰 (Stephen King's The Mist, 2007)

시북(허지수) 2010. 7. 30. 00:10

 무더운 여름에, 잠은 쉽사리 안 오는 저녁이 되면, 영화가 방영되는 채널을 기웃거립니다. 간혹 의외의 영화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있고, 고화질로 영화를 시청하다 보면 더위가 달아나는 시원한(?) 감동도 맛볼 수 있습니다. 중간에 광고하는 시간들이 조금 마음에 불편함을 주긴 해도, 이런 우연한 기회로, 편안하게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다는 기쁨을 막을 수 없습니다 :) 그러고보면 참 좋은 시대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불과 15년전만 해도, 꽤나 먼 비디오가게까지 걸어가서 재밌는 거 없냐고 물어봐야 했고, 기대를 안고 봤다가 낭패를 본 적도 상당했으니까요. 이런이런, 서론 무지 깁니다. 어서 영화 미스트 이야기를 시작해야 겠습니다.

 쇼생크 탈출과 그린 마일을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았기에, 이번에도 스티븐 킹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미스트"라는 영화를 케이블에서 해준다니, 늦은 밤에도 꽤나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심야에는 긴장감 있는 스릴러 영화 좋잖아요. 하하. 그런데 처음 인상은 솔직히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의 내용은 영화 본편에 대한 누설이 담겨 있으므로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은 주의하시길.

 안개와 함께 갑작스러운 촉수괴물의 공격이라니!!! 처음에는 무슨 외계에서 온 "괴수영화"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 이런 식의 스릴러 였나 라는 느낌이 들었지요. 괴수와 싸우는 주인공의 영웅담! 이런 뻔한 영화가 아니길 바랐는데... 여하튼, 이 정체 불명의 괴수와 맞서서 - 주인공 데이빗과 일행들은 큰 마트에 갇힌 채, 살 길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역시 이 영화, 그리 단순하다거나,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의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는 장면과, 뒤통수 치는 맛이 상당합니다. 초반의 약간의 어색함(?)을 지나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긴장감 속에서 내달리기 시작합니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마트. 앞은 잘 보이지 않고, 함부로 나가려고 하니, 괴수들이 달려들 거 같아서 위험하고... 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이야기들!

 첫 번째 포인트는 "괴수 따위는 믿지 않아"가 되겠습니다. 이성적인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괴물따위 두렵지 않다면서 과감하게 마트 탈출을 시도합니다. 모르면 용감할 수 있다고 했던가요. 그들은 너무 자신의 이성을 믿었던 나머지, 정체 불명의 괴수들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간접적으로 그 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게 되지요. 바로 두려움과 공포 입니다. 인간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외부적인 두려움. 나가면 죽는다... 라는 느낌과 어떻게 해야할 지 행동을 결정할 수 없을 때... 그 무력감이 더해지면서 영화는 점점 긴장감을 높여갑니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포인트라면, 이후에 벌어지는 마트의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고,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떤 기독교 광신자가 종말이 왔다면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기 시작합니다. 평상시에는 이런 억지적 해석이 받아들여질리 없지만, 좀처럼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런 "종말의 메세지"는 기댈 곳 없는 나약한 마음을 사로잡고 맙니다. 급기야 그들은 종말의 때에, 죄인을 (괴수에게) 제물로 바쳐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눈빛... 이것이야 말로 "진짜 공포" 입니다. 인간은 평상 시에는 선한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선할 수 있는가? 게다가 독단의 생각에 갇혀 있는 인간이란 얼마나 잔혹한가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리 밝혀두지만, 저는 기독교인 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볼 무렵 - 중세 때의 프랑스 종교상황과 관련한 책을 읽고 있었지요. 그 때도 이와 약간 비슷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프로테스탄트(개신교)와 가톨릭은 서로 피비린내가 나는 화형과 마녀사냥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만이 옳다는 오만에 사로잡혀서 이단으로 낙인 찍으며, 종교재판을 하며, 학살하고... 또 학살하고... (중략) 예수님이 과연 이 중세시대에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오늘날까지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문제라면, 사랑과 희생 대신에, 타인을 향한 손가락질과 오만함이 가득하다는 것이 저를 안타깝게 합니다. 타인의 마음에 대해, 자신을 기준으로 해서 마구잡이로 난도질 해버리는 종교는, 종교의 이름으로 위장한 "정신적인 폭력"일 뿐이겠지요.

 영화로 돌아와서, 주인공 데이빗과 일행들은 이런 종말이라는 "무모한 일반화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살아나갈 길을 찾기 위해서 두려움의 안개와 맞서 싸우는 길을 선택합니다. 죽어가는 동료를 위해서 어렵사리 약을 구해오는 아찔한 장면은, 인간의 용기가 어디까지 빛날 수 있는지 알려주는 멋진 대목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을 각오하고 움직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종교의 모범이자, 인간의 근사함 임을 보여줍니다. 아쉽게도 약을 구해오지만, 끝내 죽어가는 이는 살릴 수 없었고, 슬픔과 두려움은 더해만 갑니다. 이제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서 어떻게든 탈출해야 합니다.

 이후부터는 충격의 15분이라 불리는 반전이 펼쳐집니다. 이 때의 반전은 매우 묘한 것이라 찬반양론도 있었고, 흥행에도 영향을 미쳐서, 미국에서는 개봉당시 그다지 높은 흥행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후반부는 원작과도 다른 것으로,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스토리지요. 이 결말은 스티븐 킹도 마음에 들어했다고 합니다. 안개의 괴물들에 맞서서 간신히 차에 올라탄 주인공 일행. 그 자욱한 안개 속을 헤쳐가면서 그들은 계속 계속 달려갑니다.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이 때, 영화에서 연료게이지를 클로즈업 해주는 장면이 있는데, 상당히 강렬했습니다. 그게 뭐랄까, 희망에너지 같다고 해야할까요. 끝까지 달려보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안개는 가득했고, 엄청나게 큰 괴수만이 그들 옆을 지나가고 있을 뿐... 인간은 의외로 참 약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망이 없는 인간, 내일이 완전히 망가져버리면, 다시 말해서 마음에 끝까지 절망만이 들어차면, 남은 것은 극단적인 선택, 죽음 밖에 없게 됩니다. 내일도 어둡고, 그 다음 날도 어둡고, 그렇게 희망 없는 어두운 오늘만이 반복되면, 인간의 마음은 부숴지고 말지요. 그렇기에 희망이란 참으로 소중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아무래도 직접 보시는 게 좋겠지요. 충격적 반전이라 함부로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바로는 완전한 절망의 순간에서라도 최악의 선택은 함부로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해서... 꽤나 인상적이었지요. 정말 포기하고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 어떻게든 버텨내는 사람이 강인한 사람인데... 사실, 거듭된 절망 속에서, 무기력함을 절실히 알게 된 주인공의 그 약함이 너무 인간적이라, 이렇게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이것만은 분명하겠지요. 사방이 막히고, 안개가 자욱하고,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 그 속에서 나는 최선이라고 선택한 것이, 실은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좋은 의도로 했던 일들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경험하게 되지요.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나을까요? 아닙니다. 두려움에 맞서서 움직이는 것이야 말로 진짜 중요한 것이지요. 상상과는 다른 현실에 깨지고 상처받고, 희망게이지는 바닥나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포기하는 순간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기 한참 전인, 오래 전부터 메신저에 이런 대화명을 써넣고 있습니다. - keep going. (그래도 계속 가라.) -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일을 마주해야 할 시기도 있겠지요. 그래도 부디 힘내세요. 오늘 리뷰는 여기에서 마칩니다.